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ogeun Mar 12. 2019

우린 젊지만 XX하지 않을 수도 있다

40일 동안, 8개 병원 여행기

너무도 당연한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것의 소중함을 여실히 느끼게 된다.
(노희경, '그들이 사는 세상' 중)
미세먼지로 공기는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아가고 있다.


두통과 어지러움증이 처음 날 찾아왔던 2019년 1월 31일부터 병원에서 괜찮다고 확진을 해준 2019년 3월 11일까지, 총 40일 동안 나는 자칫하면 당연하게 여기던 건강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빠져 있었다.


시작은 강렬했다. 태국 여행 도중 차에서 내리고 숙소까지 걸어가는데 미친 듯한 두통이 찾아왔다. 누군가 앞이마를 미친 듯이 찌르는 것 같았고 구토와 현기증으로 이어졌다. 숙소까지는 약 300m 정도 되었는데, 목적지가 그렇게 멀어 보였 던 것은 훈련소 시절 행군 이후 처음이었다.


특히 머리를 흔들 때 너무 아팠다


강렬했지만 평소에 아픈 곳 하나 없이 살아왔고 건강 하나에는 자신이 있었던 나였기에 단순 감기 몸살로 여겼다. 당시에는 이 고통이 40일이나 안고 살아가야 될지는 꿈에도 모르고 여행 중에 아픈 내 몸을 원망하기에 바빴다. 


이후 한국에 돌아오고 지금까지 8개의 병원을 불철주야 돌아다녔다. 처음에는 극심한 고통을 호소해도 아직 젊으니까 금방 나을 거라는 식으로 1분 만에 진료를 끝낸 의사도 있었고 (결국 이 분 때문에 적절한 치료가 가장 늦어졌다), 적극적으로 치료해주시고 다른 병원까지 알아봐 주시는 친절한 분도 있으셨다. 하지만 아직도 원인 불명이다. 


원인을 모른다는 건 답답하기 그지없다. 무슨 약을 먹어야 할지도, 평소에 무엇을 조심해야 할지도 몰랐다. 마치 긴 암흑의 터널에서 8개의 방향이 있는 교차로 한 중간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결국 40일 동안 한 방향마다 촛불을 밝히는 심정으로 온갖 것을 다 해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체한 것 아닌가 해서 위내시경을 받고 경미한 위염/식도염 진단을 받아 죽만 5일째 먹었던 적도 있었고, 뇌출혈이 아닌가 해서 생애 처음 CT 촬영도 했으며, 이후에는 어지러우니 빈혈이 아닌가 해서 혈액 검사도 하였다. 조금 괜찮아진 듯싶더니 다시 아파 이비인후과에 갔다가 큰 병원으로 가는 의사분의 말에 따라 서울대병원도 강북삼성병원도 다녀왔다. 이후 뇌 MRI도 찍었다. 의심되는 건 있었으나 3차 병원 특성상 빠르게 예약을 잡기 어려워서 다른 대학병원도 갔다 왔고 혹시 목디스크 아닌가 해서 정형외과도 다녀왔다.


결국, 40일 동안 8개 병원. "130일 동안 4대륙 15개국 방문" 같이 많은 여행자분들이 여행을 요약할 때 쓰는 문구처럼 고생했던 기간도 저렇게 압축되었다.


아팠던 나날에는 단순히 신체적 고통도 있었지만, 원하는 행동과 생각을 온전히 못한다는 점에서 존재가 부정되는 것만 같았다. 한 인간은 어떠한 행동이나 생각을 해서 존재의 의미를 찾아나간다. 최근 읽고 있는 세계사 책의 머리말에서 저자는 이렇게 서술하였다. "과연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과거의 기억을 다 잃는다면, 그분이 아직도 기존의 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역사를 안다는 것은 내가 속해 있는 인류의 과거의 행동과 생각을 아는 것이고, 이는 즉 나의 존재를 긍정하는 일이다." 말이 좀 어렵지만... 결국 아프면 나만의 역사를 써나가지 못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가기 힘들 수밖에 없다. 억울하기도 하고.





이제는 정말 아프지 말아야겠다. 건강은 당연한 게 아닌 것을. 모든 선택의 결과물이고, 건강도 쟁취하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가끔씩 귀찮다는 핑계로 손을 씻지 않았던 것도, 건강검진을 받지 않았던 것도, 때로는 너무 신나 과음을 할 때도 다 후회가 된다. 


사실 내 주변 많은 또래들은 아직까지 건강은 너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고, 이제야 조금이나마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걸 인지했을 뿐이다. 그래서 최근 친구들을 만날 때는 "건강해야 돼"를 미친 듯이 밟으면서 애늙은이 꼰대 역할을 자청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이 항상 건강했으면 좋겠다. 최근 처음으로 건강에 관한 책을 한 권 샀다. 대다수의 경영학 서적과 소수의 인문학 서적으로만 이루어진 나만의 책 포트폴리오에 새로운 장르가 처음으로 입성하였다.


아프면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걱정 없이 그저 걷기만 해도 소원이 없다. 그러니, 다들 아프지 않고 모든 하루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목을 구부정하게 하고 스마트폰을 보고 계실 수도. 밖을 다녀왔다가 손을 씻지 않으셨을 수도.  




우린 젊지만 건강하지 않을 수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