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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geun Jun 03. 2019

지루한 게 제일 싫어요

삶 속의 죽음


우리의 행동은 딱 세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의미 있는 것

의미 없는 것

아무것도 안 하는 것(do nothing)



아무것도 안 하는 건 도대체 뭘까?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숨쉬기 운동은 하는데요? 침대에 멍하니 있어도 누워있는 거 아닌가요? 우린 항상 뭔가를 하고 있는데요?라고 뺀질거리는 학생들에게 사랑의 매를 들며 할 수 있는 설명은, 너무 심심해서 온 몸이 근질근질하여 뭐라도 안 하면 죽어버릴 것 같은 상태라고 말할 수 있겠다. 즉 “지루한”상태다.




의미 있는 것과 의미 없는 것의 여부는 개인에게 달려있다. 넷플릭스를 보는 게 어떤 이에게는 타임 킬링용 일 수도 있지만, 영어를 배우는 중 일수도 연기를 연습할 수 있는 매체일 수도 있다. 이 행동들은 자신이 가치관을 형성하며 구분하는 것이기에 타인이 왈가왈부할 게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온 몸에 전기가 짜르르 흐르면서 무엇인가를 해야 될 것 같은 강박감을 준다. 이게 바로 지루함이고, 난 지루한 게 너무나도 싫다. 이 글도 지루함에서 잠깐이나마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쓰는 것뿐이다.




지루함이 하나의 공간이라서 부엌처럼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방이라 생각해보자. 우리는 이 방이 너무 무서워서 앞에 온갖 가구로 입구를 막고 자물쇠를 채워둔다. 여기서 입구를 가로막는 가구는 스마트폰이요, 자물쇠는 의미 없이 피시방에 가서 하는 롤이라고 할까.


"지루함" 방



이 방은 귀신 든 것도 아닌데 왜 이리 무서울까. 방에 들어가면 외로움이 미친 듯이 몸에 퍼져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이 느끼게 하기도 하고, 게으름을 피워 경쟁에서 탈락하는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이렇게 글로 쓰기에 이유가 나오는 것이지. 실제로는 우리가 이유를 떠오르기도 꺼려할 만큼 지루함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한다.




교환학생 중에는 여행이 있는 날에는 제외하고 하루가 텅 비어있다. 여유를 느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지루함을 느끼기에 최상의 조건이다. 더불어, 독일 대학 특성상 대부분의 수업은 출석을 하지 않아도 되고 우리 집엔 와이파이조차도 없으니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볼 수 도 없다. 그러니 딱히 계획 없이 침대에 멍하니 누워있다 보면 심심해 죽을 것 같은 건 필연적이다.




오늘도 그러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할 게 없었다. 지루했다. 밖에 나갈까 했으나 노동절이기에 베를린 가게들을 거의 문을 닫았었다. 넷플릭스를 켰다. 보고 있던 드라마도 시즌2 중반을 넘어가니 어김없이 예전의 긴장감을 주지 못하고 지루해졌다. 그러다가 낮잠을 잤다. 일어나 보니 오후 4시였다. 그때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이 날 눌러 뭉개버렸다. 부랴부랴 책을 챙겨 기숙사 앞 벤치에서 1시간가량 책을 읽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였는데 우주 위의 별들이 그냥 다 지루하게 느껴졌다. 바람이 많이 불기 시작하자 집에 들어와 요리를 준비했다. 딱히 먹을 게 없어 토마토 스파게티를 요리하기로 했다. 이 음식도 지루했다. 하루가 너무 지루했고 의미 없이 지나간 것 같아 죄책감마저 들었다.




지루함이 하루를 지배했을 때 벌어지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멍하니 있다가 지루함이 주는 위협을 참지 못하고 시간 죽이기를 하다가 나른해 낮잠을 자고. 자다가 일어나서 드는 죄책감에 어쩔 줄 모르다가 의미 있는 일을 조금 하다가 다시 현자 타임이 찾아온다. 결국 난 게으른 사람에 불과하다는 낙인을 찍고 맥주 한 잔을 먹고 잠을 청한다. 지루함이 주는 무게감을 참지 못하고 뛰어다니다가 우박을 맞고 실신당한 격이다.




이렇게 끝났으면 지루함에게 패배한 평소의 날과 다름없었겠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지루함"에 대해 알고 싶어 졌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호주에 어학연수를 갔을 때 처음 마주친 감정에서 난 지금까지 벗어나려고 온갖 짓을 했지만. 오늘은 이것과 대면해서 흠씬 꿀밤을 때려주고 싶었다. 구글에 지루함을 검색했고 <당신이 지루함이 필요하다>라는 책과 TED 강연들을 다운로드하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지루하거나 심심한 게 너무 싫다. 글을 쓰는 이 지금도 글 쓰는 게 끝나면 지루할 텐데 어떡하지?라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싫다. 그런데 왠지 지금이 아니면 이 지루함과 심심함은 먼 훗날에나 찾아올 것 같았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취업 준비에 열을 올리다가 취업 후에는 한동안 일에 붙잡혀 이 지루함을 느끼기는 너무 힘들 것 같았다. 어벤저스에서 타노스가 싫지만 또 없으면 재미없듯이, 지금 당장은 지루함을 붙잡아두고 싶었다.






우리 대부분은 보람찬 인생을 살기 위해 최대한 많은 계획으로 하루를 꽉 채운다. 하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의미와 충만함을 얻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지루함의 시간을 빼앗겼다. 이제 잊고 지냈던 지루함이란 감정을 삶에 다시 모셔올 때가 됐다. 한국은 이미 시간 채우기의 경지에 오른 나라다. 그렇기에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주는 이점을 이해하는 사람이 더 많다. 지루함이 힘을 발휘하기에 가장 완벽한 곳이 바로 한국이다.




<당신은 지루함이 필요하다>는 우리가 평소에 회피하려고 미친 듯이 노력하는 이 지루함이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지루함이야말로 넷플릭스나 유튜브 아니면 잠깐 하는 운동보다 더 좋은 휴식이고, 나를 재창조할 수 있는 기회인데. 우리는 인류 역사상 지루함을 잘 견뎌내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루함은 현대의 바쁜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신경을 흩트리는 것을 걷어내고, 우리 존재의 참된 본질을 응시하는 곳이다.



어렵지만 쉬운 말로 풀어보자. 지루하면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 그저 멍 때리고 있는 내가 방 안에서 존재할 뿐, 세계를 지배하는 논리인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무슨 소용이며 지금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순위는 아무 필요가 없다. 그냥 나는 방 안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멍 때리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마치 유체이탈을 한 것처럼 모든 의미에서 자유가 된다. 가장 심심하면서도 우리가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그토록 바라던 해방과 자유가 실현되는 것이다.



모든 것에서 벗어나면 우리는 다시 처음부터 게임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이게 생각보다 중요한 능력치군" 하면서 내팽개쳤던 것들을 다시 가져올 수 있다. 이건 돈, 가족, 사랑, 우정, 어제 먹은 피자 한 조각 등등 뭐든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내게 가장 필요한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이야말로 참된 휴식일 지도 모른다. 잠깐 쉬어가면서 나를 재정비하고 체력도 올리는 것. 우리가 잠깐 쉰다고 하는 sns 투어와 유튜브 시청이나 하루 종일 잠자기는 어찌 보면 지루함에서는 벗어날 수 있지만 나를 재정비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얕은" 휴식일 지도 모른다. 이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깊은" 휴식이 필요할 수도 있지 않은가.



이렇듯 지루함은 가장 자유로운 상태이자, 진정한 휴식이다. 우리가 불필요한 것을 걷어내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는 그런 상태.






이렇듯 지루함은 꽤 좋은 상태일지도 모른다. 온몸이 비틀리는 듯한 이 지루함이 알고 보면 진정한 휴식일 지도 모른다는 책의 내용은 비웃음이 나오지만 한편으로는 혹하기도 한다. 글을 처음 쓸 당시 나는 지루함에 미쳐버리는 지경에 빠져있었다. 그래서 몰입할 대상을 찾다가 지루함에 빠졌고 책을 읽고 글을 쓰다 보니 다시 나는 지루함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제는 할 것들이 많다. 지루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좋기도 하지만 책을 곱씹을수록 이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 지루함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말은 못 하겠다. 하지만, 다음에 지루함이 내게 찾아온다면, 그때는 지루함 위에 제대로 올라타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고 말 것이다.




세 줄 요약
1. 지루한 건 세상에서 제일 싫다.
2. 하지만 지루한 순간이 곧 진정한 자유일 때가 있다.
3. 그러니 한번쯤은 지루함에 몸을 푹 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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