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ogeun Dec 25. 2019

너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다


나의 시선은 항상 나 자신에게로 집중되어 있었다. 한두 번 호기심에 잠시나마 타인에게 관심을 가진 적은 있었으나, 결국 종점으로 돌아오는 버스처럼 시선은 저절로 원점으로 돌아왔다.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눈을 감고 있는 술래가 허공에 팔을 휘젓듯이, 나 또한 시선을 몸 안에 고정한 채로 주변 사람들을 더듬거렸다. 다만 손끝이 마주치는 정도의 가벼운 스킨십으로는 진정으로 상대방을 알 수 없었으며, 결국 나는 상대방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었다.



한 방향만을 바라보며 평생을 살아온 사람은 다른 방향을 알기가 어렵다. 난 나의 관계 형성에 문제가 있음을 인지 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많은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줄만 알았다. 그저 더듬거리기만 했는데 말이다.



관계에 있어 유일하게 힘을 들여온 건 상대방을 구별하는 것이었다. 서로를 알아가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아도 갈등 없이 순조롭게 흘러갈 것만 같은 사람을 애타게 찾아왔다. 하지만 상대방과 어떻게 더 좋은 관계를 맺어갈지 고민하거나 상대방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은 없었다. 그저 더 자주 만났을 뿐. 그뿐이었다.



관계라는 건 너와 내가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우리의 몸을 부풀리는 행위이지만, 난 너의 에너지까지 잡아먹어 몸을 키우기에 급급한 먹보에 불과했다. 상대방과 있을 때도 나에 대해 생각할 때가 많았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많은 것을 함께하지 못했다. 과거의 내가 부끄럽고 같이 시간을 함께했던 그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하다.



힘든 상황에서는 더욱 심해졌다. ‘내가 잘되는 것이 결국 관계에 좋을 것이다.’라는 핑계에 빠져 몸을 더욱 웅크리고 시선은 안을 향하여 고정했다. 진정으로 소중한 관계라면, 난 당신에게 순수히 더 관심을 가져야만 했다.



내 주변에 있어준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날 버텨왔나 싶었다. 태어났던 날부터 지금까지 함께 해주신 어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원래 난 이랬나요?’



‘아니야, 지금 네가 착각하고 있는 거야.’라고 말해주시기는커녕 ‘응 맞아. 그게 네 단점이지.’라고 말하시며 ‘또, 너는 표현을 잘하지 않잖아.’라고 단점을 1+1으로 얹어주셨다. 이렇게 단점이 많은 나를 지금까지 안고 와주신 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진심으로 미안하다. 많이 부족했었다. 사실 잘하고 있는지 알았다. 괘씸했겠다 정말로. 관계에 있어서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어린이였다.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다 보면 한 번씩 소리가 선명하게 들릴 때가 있다. 지지직 거리는 소리는 듣기 힘들지만 몰래 금고를 여는 도둑처럼 섬세한 손길로 주파수를 맞추는 건 차를 탈 때 얻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무디게 살아가는 나지만 지지직 거리는 잡음들을 넘어 이제는 정말로 네 주파수를 알아가고 싶다. 뭉툭한 마음으로 섬세하게 다가가는 건 꽤나 어렵겠지만, 그래도 난 진심으로 너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파리&런던 10박 11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