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詩
가을의 끝자락에서
나는 잠시 숨을 고른다.
달력 모서리가 괜히 더 날카롭게 느껴진다.
조급해진 마음을 살짝 접어
코트 안주머니에 넣어 둔다.
빛은 땅 가까이로 내려앉는다.
은행잎은 마지막 남은 황금빛을 다 털어 놓고,
나는 카메라를 들어
남겨진 노란 날들을 하나하나 담는다.
작은 상자, 오늘의 온도마저 그 안에 담긴다.
올해 겨울은 조금 다르게 맞이하려 한다.
문 밖엔 칼날 같은 찬바람을 세워 두고,
문턱엔 러그를 깔아둔다.
무딘 듯하면서도 감각은 살아 있고,
바람 소리를 가만히 듣는다.
너무 지나친 경계는 잠시 내려놓는다.
나는 뜨거운 물을 따라 마신다.
머그컵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얼어 있던 말들을 천천히 녹여 준다.
몸은 급히 움직이지 않고,
마음은 앞서 달리지 않는다.
긴장은 허리둘레에만 매고,
손끝은 조급함을 내려놓는다.
계획이란 것도 부드럽게 부른다.
달력 칸에 억지로 집어넣지 않고,
나와 함께 나란히 걷게 둔다.
아침엔 한 줄,
낮엔 한 걸음,
밤엔 깊은 한숨.
이 작은 루틴들이 오늘의 체온을 만든다.
올가을은 더 깊이 즐긴다.
낙엽의 바삭함을 입에 넣고,
늦은 오후 늘어진 그림자를 골라 담는다.
빛과 냄새, 소리를
하나씩 문장에 눕힌다.
겨울을 위한 이불을
지금 여기서 조금씩 짜 내려간다.
이번 겨울,
나는 칼날 대신 목도리를 고른다.
익숙해진 사람으로 서서
내 안의 소음을 낮춘다.
아픈 말들은 덜어내고
단단한 말만 남긴다.
흰 김처럼 금세 사라지는 걱정은
창가에 스치듯 두기로 한다.
첫눈이 내려와도
나는 서두르지 않는다.
거실엔 이미 너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 두었다.
낮은 온기의 진동,
끓는 주전자 소리,
책장 위에 살짝 올려둔 나만의 겨울.
겨울아,
올해는 안으로 들어와 나란히 앉아 줘.
나는 이제 막 견디는 사람이 아니라
너와 함께 살아갈 거야.
둔감하되 섬세하게,
긴장하되 흔들리지 않게.
밤이 깊어지면
나는 나를 조용히 덮는다.
검은 칼이 아니라
따뜻한 문장으로.
그리고 천천히 말한다.
오늘도 괜찮았다고.
내일은 더 부드럽게 맞이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