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4. ‘우리’라는 이름도 언젠가는 흐려진다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익숙한 듯, 낯선 목소리였다.
“나야…”
그 말 한 마디에
시간이 잠시 멈춘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 목소리, 그 톤,
그 사람의 이름마저 떠오르지 않았다.
미안했다.
당황했고,
무언가 놓쳐버린 느낌에
마음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전화를 끊고,
몇 초쯤,
기억을 더듬어봤다.
하지만 그 얼굴은 흐릿했고
그때의 감정은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곧,
다시 잊어버렸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나 역시,
누군가의 연락처에서 지워졌겠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이름 없이 사라져갔겠지.
그리고 그건
당연한 일이라는 걸 안다.
살아간다는 건
새로운 것을 채워 넣기 위해
무언가를 비워내는 일이니까.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그 당연함이
때론 참 서글프다.
아무 말 없이 멀어진 인연,
다시 이름조차 꺼낼 수 없는 ‘우리’라는 이름.
분명히 존재했던 사이였는데,
지금은
서로의 생에 아무 영향도 주지 않는 관계가 되었다는 것.
그게…
조금은 쓸쓸하다.
그래도,
그렇게 지나간 사람들 덕분에
나는 지금의 내가 된 거겠지.
우리였던 시간은
이제 내 마음의 그림자로 남아,
문득 문득 날 따라온다.
흐려져도 괜찮아.
완전히 지워지지 않으니까.
그게 ‘우리’라는 이름이 가지는
아름다운 유통기한인지도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