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의 사랑
#1 그녀의 상처를 대신 앓던 남자

1. 그녀의 상처를 대신 앓던 남자

by 박동욱

그 사람은 아픈 과거를 가진 사람이었다.
사람들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고,
때때로 눈빛이 멍하니 허공을 헤맬 때면
나는 묘한 책임감을 느꼈다.
마치 내가 그녀를 구해줘야 할 사람인 것처럼.
아니, 구해내고 싶었다.
그래야 내 마음도 존재 이유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왜인지 모르게 내 가슴이 먹먹해졌다.
지금 내 일이 아닌데도,
그녀가 겪었던 고통이 마치 내 일처럼 느껴졌다.
그건 사랑이었을까?
아니면... 어쩌면
내가 위로해 주는 사람이라는 착각 속에서
스스로를 사랑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녀 곁에는 나 말고도
위로해 줄 사람들이 많았다.
나보다 잘생기고,
나보다 부유하고,
나보다 센스 있고,
나보다... 그녀가 좋아할 만한 사람들이.

나는 그 모든 이들 중에
딱히 연락할 사람이 없을 때,
심심하거나 외로울 때,
지금은 너무 밝게 웃긴 힘드니까
살짝 기대고 가기 좋은 사람으로 존재했다.

호구.
딱, 그 단어가 나였다.

그런데 더 슬픈 건,
그렇게라도 그녀가 날 불러주면
고마웠다.

내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잠깐이라도 나를 찾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존재 의미를 부여하며
나는 그녀 옆에 있었다.
바보처럼.

그녀는 언젠가
조금씩 웃는 법을 배워갔고,
사람들 틈에 섞여
예쁘게 웃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곁엔 내가 아니었고,
늘 새로운 누군가였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과거를 짊어지고
현재를 건너와
미래엔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의 상처를 핑계 삼아
내 감정을 정당화했던
한심하고 지질한 사랑의 조연으로 남았다.

하지만 말이야—
그게 내 사랑이었다.
그래서 더럽게 아프고,
치사하게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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