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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다음에, 아픔 다음에

<서평> 겨울을 지나가다 by 조해진

by 우희연do

우리는 안다. 겨울이 지나가면 봄이 온다는 것을. 『겨울을 지나가다』는 암으로 죽어가는 명순과 딸 정연의 이야기를 통해 삶과 죽음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사람의 몸은 시간이 담긴 그릇 같”(p13)고 “시곗바늘은 없지만 타이머는 내장된, 그러나 그 타이머가 언제 멈추는지는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시계”(p131)라 한다.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겨울이라는 계절이 주는 시간에 기대어 어둠이 길어지는 만큼 정연이 죽은 명순에 대한 그리움과 애도는 깊어진다.


조해진 작가는 2004년 등단한 이래 사회 주변부로 밀려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녀만의 작품을 통해 펼쳐왔다. 여섯 권의 장편과 다섯 권의 소설집을 통해 신동엽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대산문학상, 동인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조해진 작가가 보여온 타인의 고통과 상처를 보듬는 시선은 여전하지만, 『겨울을 지나가다』를 통해 삶 그 너머까지를 아우르는 한층 더 깊어진 사유와 정밀하게 세공된 문체로 보다 따스한 희망을 빛을 선사하고 있다.

잠과 꿈은 시곗바늘이 되어 정연은 환상의 시간으로 흘러간다. 정연의 꿈은 잃어버린 엄마의 기억을 소환한다. 엄마의 기억은 영화필름이 되어 정연의 시네마천국이 된다. 칠십일 년 동안 엄마의 몸 안에 축적된 시간이 재생된다. 정연은 배우처럼 엄마의 옷과 화장품으로 엄마가 되어 칼국수를 만든다. 정연은 엄마의 부재에 대한 외로움의 시간을 엄마와 함께 한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정연은 타인을 돌봄으로 인해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받는다. 정연은 엄마가 없는 이번 겨울을 통해 “부재하면서 존재한다는 것, 부재로써 현존하는 방식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명순은 정연에게 말했다. “모든 건 잊힌다고, 세상에 잊히지 않는 것은 없다고”(p89) 정연은 엄마가 없는 시골집에서 슬픔이 만들어지는 계절에 다섯 달을 지냈다. 정미, 영준, 외할머니를 닮은 옆집 할머니, 혜란 아줌마와 J읍이 주는 신비로운 안개를 통해 “슬픔을 여과하는 마음의 근육과 뼈가 만들”(p50) 어지는 따뜻한 시간을 보낸다. 흘러가는 시간은 우리의 아픔을 치유하는 약이다. 자연의 시간 앞에서 안개가 사라지듯 우리는 아픔을 잊고 치유의 시간을 보낸다.

이 소설은 죽음을 맞이하는 우리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송병기 교수의 『각자도사 사회』에서 생애 말기와 죽음의 현실에 대해 던지는 묵직한 질문들과 이 소설의 이야기와 겹친다. 정연과 영준은 각각 가정과 일터에서 ‘우연히’ 우리의 일상에 들이닥친 죽음의 문제를 경험한다. 정연은 “아직 오지도 않은 내 미래를 근심하느라 엄마가 직면한 현재의 불안과 고통을 자꾸만 잊는”(p68) 자신의 모습과 “엄마의 목숨 값으로 나올 사망보험금이라는 안전한 보루에 기대어 타인의 노동을 산 것”(p67)에 대한 죄책감을 느낀다. 영준은 본의 아니게 한 생애의 끝을 가장 처음 목격해야 할 때도 있었고 20대 다현이의 죽음으로 퇴사한다.


정연은 영준과 함께 다현이가 살았던 청운 아파트를 방문한다. 장식장에 든 모과주를 꺼내 다현이에게 선물한다. 현실이라는 프레임 바깥에서 까만 그곳에 하나의 초로 어둠을 밝히며 엄마와 다현이가 가는 길을 밝혀준다. “닫혀가는 겨울과 열리는 봄”(p132)을 보면서 엄마의 마당에 모과나무와 개구리의 울음소리로 겨울 다음에, 아픔 다음에 “세상은 다시 순환과 반복이라는 레일 위에서”(p135) 고통과 상처가 잊힌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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