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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젤 퍼퓨머 제1권 빛의 물

3. 2부 오래된 이끼(1)

2부 오래된 이끼     

동양에서는 사람과 향기가 한 공간이 서로 노니는 것이 진정한 자유란다.

향에 있어서 공간은 바로 그런 것이다.    

 

# 조어산수(釣魚山水)   

이세는 부모님을 잃고 7살 때 서울 세검정에서 한의원을 하는 외할아버지 밑에서 동양 향과 약재를 공부하며 성장기를 보냈다. 그러다 18살이 되었을 때 할아버지의 가업을 잇기 위해 그라스로 가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유일한 혈육인 이세의 체계적인 조향 공부를 위해 베르사유에 있는 이집카 향수 학교로 보냈고, 방학 때에는 할아버지 향수회사에서 향을 배우게 하셨다. 그래서 이세는 동서양의 향을 모두 공부한 유일한 사람이 되어 외할아버지께 온 것이다.     


외조부 최림은 타고난 동양 향의 대가로 당시 조선의 마지막 내의원 제조였던 할아버지에게 약재와 향재를 체계적으로 배운 몇 안 되는 동양 향 전문가였다. 그에게 외딸이었던 이세의 어머니가 실종되면서 이제 이세가 최 씨 가문의 단 하나의 혈육으로 남게 된 것이다. 이세의 어머니가 프랑스 유학 중에 이세의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려고 했을 때 외조부께서 반대를 심하게 했던 것도 딸을 너무 사랑해 곁에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때가 되어 이세가 부모님을 찾아서 함께 행복하게 살 것이라는 믿음이 외롭게 살고 있는 그의 생명을 지탱시키고 있는 것이다.     

1년 만에 세검정 집으로 돌아가는 이세의 발걸음은 빨랐다. 외조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그의 모습은 언제나 밝고 씩씩하며 사람들을 위하며 살아가는 삶이 몸에 배어 있었다. 집이 가까워지자 이세는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였다.   

  

집에 도착하자 대문에서부터 소리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급히 현관문을 힘껏 밀치고, 달려 나오며 목이 잠긴 목소리로 외치신다.

“이세야! 이세야!”

이세는 외할아버지를 꼭 안으며 그동안 싸였던 그리움과 아픔을 눈물로 대신하였다. 이세는 할아버지에게 지금껏 일어난 얘기를 말하니 이미 알고 있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외할아버지는 최근에 한국에서도 이상한 일이 계속 일어난다고 하였다. 향긋한 향기가 곳곳에 풍기며 냄새를 맡은 사람들은 마치 마약 중독자처럼 멍한 상태가 되는데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꼭 큰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이세는 할아버지에게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외벽에 쓰여 있던 아버지의 흔적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할아버지, 도서관 외벽에서 보았던 그 글씨가 하나의 그림으로 보이던데요?”

“ 마치 오래전에 보았던 그림처럼 말이에요”

" 이세야! 네가 말하는 그 그림은 본 적이 있지 “

“잠깐만 기다려봐 "     

외할아버지는 서재에 딸려 있는 작은 약재 방에서 한 장의 그림을 가지고 나왔다.  최 씨 가문의 선조이신 최북 선생님이 그리신 그림 ‘조어 산수(釣魚山水)’였다.


이 그림은 족자 종이에 담아놓은 그림으로 조선 숙종에서 영조 때의 화가 최북(1712년 ~ 1760년)의 작품이다. 스스로 눈을 찔러 한 눈으로 그림을 그렸기에 한국의 반 고흐라 불린다. 조어산수는 여름날의 낚시 풍경을 화폭에 담은 작품으로, 거침없이 죽죽 내려 그은 산 그림자 아래에 버드나무가 흩날리고 있고, 꾸밈없는 초가 정자와 그곳에서 바라보면 좀 비뚜름하게 조각배 하나가 넘실대는 물결 따라 흔들리며 선비가 한가로이 낚시를 하고 있다. 바로 여름날 강가에서 세월을 낚는 그림이다.

이세는 소리쳤다.

“바로 이 그림이에요. 여름과 강과 세월이 있는...”

“오래전에 네 아버지가 이곳에 왔을 때 이 그림을 무척 좋아했었지”     

이세가 궁금했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외벽에 있던 상징이 하나둘씩 퍼즐처럼 맞춰져 갔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남긴 흔적을 찾았다는 안도감이 이세를 긴장의 끈에서 잠시 풀려나게 하였다. 찬찬히 그림을 살펴보던 이세는 그림을 뒤집어 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한지로 만들어진 쪽지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이세는 쪽지를 펼쳐보았다.

“毬子香, 銀白茶, 香雪海,  龜苓膏,  眞熟結, 吳酒, *光” 그리고 마지막 글자는 급히 쓴 것 같은데 광이라는 단어 외에는 알아볼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 여기에 쪽지가 있어요”

할아버지는 글자를 하나하나씩 읽기 시작했다.

“구자향, 은백차, 향설해, 구령고, 진숙결, 오주, *광”

외할아버지는 크게 놀라시며 이 향 재에 대해 무엇인가 아시는 눈치였다. 잠시 침묵에 잠기시더니 천천히 설명을 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적혀있는 향 재는 동양의 전설적인 향 재로 실제로 존재하는지 조차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구자향은 조선의 규합총서(1809년 빙허각(憑虛閣) 이 씨(李氏)가 엮은 가정살림에 관한 내용의 책)에 나와 있는 향이며, 은백차는 말레이시아 카메론 하일랜드의 밀림 속에 1,000년에 한 번 나타나는 차이며, 향설해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 향으로 현재 이 향설해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구령고는 500년이 넘은 거북이와 오래된 복령을 달여 만든 젤리 같은 것으로 싱가포르 어디에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한다.

진숙결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침향의 하나인 숙결의 흑침으로 이것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베트남 북부 밀림지역으로 모여들고 있다 하였다.

오주는 베트남 최초의 왕조를 세운 응오 꾸옌(오권)이 콩으로 담근 발효주라는데 어떤 것 하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에 지워져 한자만 보이는 광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하였다.     

우선할 수 있는 것은 할아버지가 익히 알고 있는 구자향을 먼저 만드는 것인데 여기서도 문제가 있었다. 毬子香(구자향)의 제조법에 관한 것으로 구자향에 들어가는 향재는 먼저 애눌(100년 묵은 소나무 등걸에 피는 푸른 이끼) 한 근, 정향 반냥, 멧대추 찐 기름 한 종지, 단향 반냥, 향부자 반냥, 백지 반냥, 모향 반냥, 초두 한 매, 구거피 한 매, 용뇌 향 약간 넣은 것을 대추를 고아 졸인 물에 알맞게 섞어 절구에 넣고 찧는다. 그리고 오동 씨 크기로 환을 만들어야 한다. 다른 것은 할아버지가 가지고 계신 한약재에서 구할 수 있지만 애눌은 구할 수가 없다.

소나무 등걸에 핀 이끼도 문제지만 먼저 백 년이 넘은 소나무가 군락으로 있는 곳을 아는 것이 시급한 일이었다.     

할아버지는 이세에게 쪽지를 건네주시며 깊은 한숨을 쉬시며 말씀하셨다.

“이세야! 어느 하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없어”

“이스트 포뮬러는 전설 속의 향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말이야”

“할아버지! 쉽진 않겠지만 제가 꼭 만들고 말 거예요”

잠시 후 할아버지는 어디론가 전화를 하시더니 내일 아침 일찍 울진으로 가서 방 선생을 만나보라 하셨다.

“이세야, 방 선생은 울진 금강소나무 숲을 관리하시는 소나무 전문가인데 그를 만나면 방법이 있을 것이야”

“예 할아버지”


피곤해 지친 이세는 깜빡 잠이 들었고 잠결에 무슨 소리와 함께 낯익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꿈 인가하고 있다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는 어떤 느낌에 잠에서 깨어났다. 온 집에 기차에서 올리비에가 맡게 했던 향수 냄새가 코를 찌른다. 소름 끼친 이 냄새가 이세를 할아버지가 계신 방으로 이끌고 갔다.

“할아버지!”

이미 숨이 끊어지셨다.

“할아버지! 엉 엉”이세는 소리치며 오랫동안 울었다. 한참을 울고 난 이세는 할아버지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라 상태로 할아버지는 누워 계셨다. 이해할 수 없었다. 단 시간에 몸에 존재하는 모든 물기가 빠지고 마치 오래된 무덤에서 발견되는 미라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셨는지 머리맡의 작은 항아리에는 타다만 조어산수가 있었다. 그들이 올 것이라는 미리 알고 모든 단서를 없애려고 하신 것이다.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모든 의욕을 상실한 채 집으로 돌아온 이세 앞에 택배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안에는 편지 한 통과 작은 주머니 하나가 있었는데, 편지는 외할아버지가 이세에게 남긴 한 통의 유서였다. 거기에는 평상시 침향을 거래해왔던 베트남에 사는 트란과 말라카의 뇨냐 박물관장 찬 꾸어 그리고 카메룬 하일랜드의 하부에 살고 있는 푸우 목사의 연락처가 적혀있었고, 외조부가 평상시 즐겨 말하시는 “最迅疾而無邪僞者 其惟鼻臭乎(최신질이무사위자 기유비취호)”란 글귀도 함께 있었다. “세상의 모든 일 가운데 가장 빠르고 거짓됨이 없는 것은 오직 코로 냄새 맡는 것이야” 할아버지의 말씀이 향기가 되어 코끝에 머물렀다.     

그리고 편지의 끝에는 향기 천사 이세를 사랑한다는 것과 외조부의 호인 구세(救世)라는 낙관으로 마무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작은 주머니 하나를 남기셨는데 이 주머니는 외조부께서 직접 여러 가지 향을 섞어 만들어 조합한 구세향이 들어 있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사용하라는 향이다.

     

이세는 외할아버지를 가슴에 묻고 서둘러 울진으로 향한다.

이제 어둠의 그림자는 온 세상을 덮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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