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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족

10. 3부 말라카의 눈물(6)

전족(纏足)


“전족(纏足)… 여인의 발을 인위적으로 작게 만들던 풍습이지.”
찬관장의 목소리는 마치 오래된 비밀을 꺼내는 듯 낮고 조심스러웠다.
“이 기괴한 관습이 말라카에서 아직까지 이어졌다는 건, 이 지역에 숨겨진 뭔가가 있다는 뜻이야.”

이세는 찬관장이 건넨 오래된 문서를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에서도 이미 사라졌다는 전족화가… 왜 여기에선 살아남은 걸까요?”

“북송 말기부터 상류층 여인들 사이에서 유행했지. 특히 말라카의 뇨냐들은 전족을 신분의 상징으로 삼았어. 그리고—”


찬관장은 주저했다.
“그 전족화들에는, 특정한 향이 배어 있었대. 나무 냄새. 마치… 향설해처럼.”

“향설해?”
루잉이 중얼거렸다.
“혹시 그 향이, 우리가 찾는 바로 그 향!?”

“확신할 순 없어.” 찬관장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단서가 필요하잖아. 박물관 옆집, 콩아저씨한테 가봐. 전족 제작의 마지막 전수자야.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몰라.”


이세와 루잉은 골목길을 돌아 허름한 나무 대문 앞에 섰다.
“이 안이야.” 루잉이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작은 체구에 은빛 머리를 지닌 노인이 그들을 맞이했다.

“전족을 보러 왔다고?”
그의 눈빛은 의심과 호기심이 뒤섞여 있었다.

이세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향설해라는 이름을 아십니까?”

콩아저씨의 손이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향은 전족화의 바닥에서 나는 거야. 15년 전에도 누군가 그 향을 찾았지.”


이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누구였죠?”

노인은 작업대를 정리하고, 손님용 찻잔 두 개를 꺼내왔다.
“너희 부모님 말이다. 그들이 말라카에 처음 도착했을 때, 무척 초조해 보였어.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지. 바바뇨냐박물관이 공사 중이라 내 집으로 들어왔고…”

그는 기억을 더듬듯 말을 이었다.
“그러다 붉은 바지에 황금색 상의를 입은 남자와 부하들이 들이닥쳤어. 그들이 네 부모를 차에 태워 어딘가로 데려갔지. 난 그 뒤로 그분들을 보지 못했어.”


이세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런데… 그들이 여기에 다시 나타났다고요?”

“맞아. 몇 달 전, 살루드라는 향기 바를 연 뒤 길에서 우연히 마주쳤지.”
그는 서랍을 열어 낡은 비단 꾸러미 하나를 꺼냈다.
“네 부모가 이걸 사려고 했어. 정화장군의 딸이 신었다는 전족화야. 돈은 받았지만, 물건은 주지 못했어.”

그가 꾸러미를 건넸다.
“이제… 너에게 줄 시간이야.”

이세는 천을 풀었다. 순간, 강한 나무 향이 피어올랐다.
익숙한 향이다.
“아! 이건… 향설해야.”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 찬관장이 다가와 속삭였다.
“구령고의 흔적이 싱가포르 차이나타운에 있다는 정보가 있어. 약재상들을 뒤져봐.”

그 말에 이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거운 비밀과 함께 떠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잘 다녀오렴.”
루잉의 목소리는 떨렸고, 눈가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루잉… 나 돌아올게.”

“그 말을… 믿을게.”
그녀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세는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봤다.


루잉의 모습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그 눈빛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좋아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멈출 수 없다.
향설해는 그의 손에, 구령고는 안개 속 어딘가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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