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4부 사자의 울음(1)
“냄새는 결코 단일한 얼굴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것은 겹겹의 시간과 감정, 기억을 덧씌운 채,
우리 안의 통로를 타고 은밀히 침투한다.”
이세는 버스 창 너머로 희미한 수평선을 바라보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말라카에서 출발한 지 네 시간. 도착한 곳은 국경 도시 조호르바루.
여기서 싱가포르로 넘어가려면 출국장을 지나 조호르 해협을 건너야 한다.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몇 번 지나친 적이 있는 익숙한 길이지만, 이번만큼은 예사롭지 않았다.
출국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이세는 짐작할 수 없는 불안에 사로잡혔다. 어깨에 맨 가방 하나, 손에는 여권과 티켓. 줄에 서려던 찰나, 공항 직원 하나가 그를 향해 손짓했다.
“여기요, 이쪽으로 오세요.”
그 낯익은 목소리.
그리고 목덜미 아래로 어른거리는 뱀의 문신.
‘시아이탄...!’
이세의 심장은 쿵 내려앉았다. 아몬의 아시아 지부 조직원.
그들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직원의 뒤를 따라 작은 철문 안으로 들어선 순간, 문은 스르르 닫히고 말았다.
철제 벽, 금속 바닥, 환기구 하나 없는 완전 밀폐된 방.
이세는 순식간에 덫에 걸린 짐승이 되었다.
“나가게 해! 누구냐고!”
그의 외침은 금속 벽에 튕겨 사라졌다.
그때, 벽에 부착된 모니터가 켜지며 낯익은 얼굴이 떠올랐다.
발아크.
향기 바 '살루드'의 주인이자, 아몬의 사제. 그가 화면 너머로 이세를 노려보고 있었다.
“살루드를 훼손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발아크의 말은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그는 징벌을 받은 듯, 얼굴엔 상처가 어른거렸다.
“넌 이제 더 이상 빛의 물을 찾을 수 없어.
이 방에서 살아 나갈 가능성은… 없다.”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숨조차 탁해져 가는 밀폐 공간. 이세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목은 타들어가고, 정신은 흐릿해졌다.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들은 내가 냄새를 잃는 순간, 무력해진다는 걸 알고 있었어…”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세는 가방을 열었다.
그 안엔 지금까지 모아온 향료들이 있었다.
‘구자향.’
‘은백차.’
‘향설해.’
그리고, 키릴루스 주교가 건넸던 웨스트 포뮬라.
“완성은 아니지만… 빛의 물을 흉내 낼 수 있을지도 몰라.”
그는 조심스레 세 향을 섞어 포뮬라에 떨어뜨렸다.
그러자 갑자기, 용해되듯 하나로 녹아드는 순간—빛이 피어올랐다.
가느다란 실선 같은 광선이 향에서 솟아올랐다.
그 빛은 점점 굵어지고, 강렬한 레이저처럼 문손잡이를 향해 뻗었다.
문이 녹고, 밀봉된 공간에서 미세한 기류가 일었다.
그때였다.
이세는 그 냄새를 맡았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냄새.
무언가 신성하고 강렬한 향기,
빛이 실체를 갖는 순간의 향기.
이세의 시야에 우주의 소용돌이가 펼쳐졌다.
그는 자신이 향기로 된 기차에 올라타 은하를 질주하는 환상을 보았다.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빛의 물이 만들어낸 초월적 체험.
완성이 된다면… 그건 어떤 세상의 문을 열게 될까?
철문이 무너지고, 이세는 무너지듯 문밖으로 나왔다.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방.
그는 곧장 우드랜즈역으로 달려갔다.
MRT를 타려는 찰나, 개찰구 앞의 티켓을 보며 멈춰 섰다.
그는 그제야 하루가 완전히 지나간 걸 알아차렸다.
시간은 짧다.
빛의 물을 완성하기까지, 남은 날은 이제 15일.
그러나 이세는 다시 일어섰다.
그의 눈엔 더 이상 흔들림이 없었다.
"사자의 울음소라는 들리지 않지만,
그 향기는 이미 전장을 덮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