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3부 말라카의 눈물(5)
머지않은 미래, 인간은 모니터 앞에서 베네치아의 거리 냄새를 맡고, 게임 속 화약과 여인의 향기까지 감지하게 될 것이다. 현실은 점점 감각의 감옥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거리는 커피숍 대신 향기를 파는 바들로 채워지고, 향은 쾌락과 중독, 치유의 이름으로 팔려 나갔다. 사람들은 향에 웃고, 향에 울며, 자신도 모르게 그 속에 잠겨간다.
그날 밤, 이세와 루잉은 ‘살루드’ 앞에 섰다. 외관은 스페인풍의 세련된 건축이었지만, 안에서는 무언가 불길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괜찮겠어요?" 루잉이 이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이미 여기까지 왔어요. 우리가 찾아야 할 건... 그 안에 있어요."
문을 여는 순간, 현란한 조명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음악과 향기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향기라고 부르기엔 무언가 날카롭고 중독적인 냄새. 사람들의 눈은 풀려 있었고, 웃음은 기이했다. 입술은 빈낭 열매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건… 지옥이에요." 루잉이 속삭였다.
벽의 화면에선 환호하는 젊은이들이 외쳤다. “당신은 당신이 선택한 것을 느끼지 않고는 이곳을 나갈 수 없습니다!”
퍼퓸 바텐더가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오늘은 ‘천국’을 추천드려요. 아주 특별한 날이니까요."
그 순간, 붉은 바지와 황금 상의를 입은 남자가 무대를 가르며 다가왔다. 그의 눈은 심연처럼 깊었다.
"환영합니다. 저는 발아크. 이 공간의 주인이자… 조향사입니다."
그는 손짓했고, 유리잔 두 개가 테이블에 놓였다.
"천국을... 느껴보시죠."
루잉이 손을 떨었다. 이세가 먼저 잔을 들어 코에 가져갔다. 향이 밀려들었다. 쥬니퍼, 시프러스, 아이리스, 바닐라, 몰약... 그리고 한 여인의 형상이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포근하고, 따뜻한 그 품은 천국 같았다. 그러나 순간 여인의 눈동자가 검게 번지고, 뱀처럼 길게 뻗은 혀가 그의 목을 핥았다.
이세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 발아크가 코웃음을 치며 다가왔다.
"놀라운 분이군요. 당신에겐 향이 통하지 않다니. 하지만... 루잉은 달라요."
이세가 주위를 둘러봤지만 그녀는 없었다.
"어딨어?!"
"향에 취한 그녀는... 붉은 방에 있죠. 실종된 여인들과 함께. 그들은 모두 이곳의 향기 중독자입니다."
이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놈... 그녀를 돌려줘."
"그 전에, 게임을 하죠." 발아크는 녹색 불빛이 깜빡이는 방을 가리켰다. "소리를 조향하는 방입니다. 그 안에서 ‘빛’을 조향하세요. 성공하면 루잉과 여인들을 돌려드리죠. 실패하면... 당신의 목숨을 받겠습니다."
"모두를 돌려보내라. 그렇다면 하겠소."
발아크는 웃었다. "좋아요. 승부합시다."
이세는 녹색 방으로 들어섰다. 벽면에는 수백 개의 금속 원반이 꽂혀 있었다.
방 안은 무언가 살아 있는 듯, 끊임없는 웅웅거림과 진동으로 가득했다.
발아크의 목소리가 스피커로 울렸다. "‘빛’을 만들어보세요. 단,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조향하셔야 합니다."
이세는 숨을 고르며 외조부의 말이 떠올랐다.
‘향은, 들을 수도 있다. 문향(聞香).’
그는 눈을 감고 금속 원반을 코 가까이에 댔다. ‘와르르’, ‘바람’, ‘아이들 웃음’... 그러나 그것은 소리가 아니었다. 그 안에는 재스민의 향기, 히야신스의 잔향, 시칠리아의 햇살 같은 과일의 달콤함이 숨어 있었다.
이세는 원반을 하나씩 분리했다. 재스민, 프리지아, 그레이프, 마린, 머스크... 그리고 마지막 우디 향까지. 그의 손끝에서 하나의 조합이 완성됐다.
발아크가 그것을 들어 귀에 댔다. 순간, 그의 눈이 크게 열렸다. 그가 무릎을 꿇었다. 빛의 향이 공간을 가르고, 음향처럼 방 전체에 퍼졌다.
빛은 향이 되고, 소리가 되어 속삭였다.
“빛은 언제나 어둠을 뚫고 온다. 그리고 잃어버린 것을 찾아주지.”
살루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붉은 방이 열리고, 루잉과 여인들이 하나둘 걸어나왔다. 이세는 그녀를 껴안았다. 그녀는 의식이 돌아온 듯 이세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 목소리가 들렸어요. 어둠 속에서도... 향이 말해줬어요."
발아크와 시아이탄은 빛 속으로 사라지고, 살루드는 흉가처럼 텅 비었다. 이세와 루잉은 박물관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세는 안다. 향설해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아몬의 어둠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우린, 이제 시작이에요.”
루잉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향의 비밀을 밝히기 전까지... 끝난 게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