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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창이

13. 4부 사자의 울음(3)

굿바이 창이


시각적 단서와 마찬가지로, 언어 또한 냄새의 지각에 강력하고 묘한 영향을 미친다.
냄새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눈으로 세상의 사물을 확인해야 안심하는 존재이기에, 낯선 냄새를 맡으면 본능적으로 단어와 상황에 도움을 청한다.
그리고 냄새만으로 좋고 나쁨을 판단하기보다는, 그럴듯한 설명이 주어지면 그 이야기를 믿는 쪽을 택한다.
인간은 그렇게 언어와 냄새 사이를 오가며 스스로를 설득한다.


창이공항.
싱가포르 중심부에서 동쪽으로 약 20킬로미터 떨어진,
하얀 유리빛의 공항은 여전히 냉철하고 완벽했다.

이세는 전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왕쉬 노인이 들려준 ‘동양의 향’ 이야기가 너무도 깊었기 때문이다.
노인은 오랜 조향의 기억을 꺼내며 말했다.
“좋은 향은 아름답지만, 독한 향은 진실을 드러내지.”
그의 목소리는 바람처럼 느리게 흘렀다.
이세는 그 말을 품은 채, 공항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창밖의 빛을 바라보았다.

공항에 도착한 그는 베트남항공 카운터에서 수속을 마쳤다.
출국장으로 들어서며 중얼거렸다.
“이제 두 가지 향만 찾으면, ‘빛의 물’을 완성할 수 있어… 그리고 부모님의 행방도 알 수 있을 거야.”


VN140편, 하노이행.
이세는 트란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내일 하노이에 도착합니다.”
잠시 후 답이 왔다.
숙소로 사람을 보내겠네. 조심하게.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며 몸을 들었다.
이세는 간밤의 피로에 눈을 감았다.
“조금만… 눈을 붙이자.”

얼마나 지났을까.
요란한 소리와 함께 기내가 술렁였다.
승무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사 계십니까? 기장과 부기장이 정신을 잃었습니다!”

이세는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이죠?”
승무원이 사색이 된 얼굴로 대답했다.
“이륙 후 음료를 마시자마자 이런 일이… 자동운항 중이지만 위험해요.”

이세의 눈이 좁혀졌다.
음료 병을 살펴보던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이 문양… 뱀이다. 또 아몬의 짓이군.”

비행기는 안정된 듯 보였지만,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세는 결심했다.
“제가 시도해볼게요. 조종사들을 깨울 방법이 있어요.”
승무원은 머뭇거리다 그를 조종실로 안내했다.

닫힌 문 안에서,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왕쉬 할아버지가 그랬지… 각시향은 죽은 자도 깨운다고.”
가방에서 주석병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끈적한 엿처럼 달라붙은 향.
공기를 가르는 건 향기가 아니라, 썩은 나무의 숨결이었다.

“부디…”
그는 기장의 코 앞에 향을 들이밀었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순간, 기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제트기류를 만난 비행기는 급속히 하강했다.
이세는 주석병을 통째로 쏟아 손에 바르고, 조종실 구석구석에 문질렀다.
순식간에 악취가 퍼졌다.
그건 세상 어떤 냄새보다 강했고,
비위가 뒤집힐 정도로 역겨웠다.

그러나 그 냄새 속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기장이 눈을 떴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자리로 돌아가 조종간을 잡았다.
부기장 역시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 된 거죠…?”
“냄새가… 너무 독해서…”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비행기는 곧 안정모드로 전환되었다.
기내엔 안도와 환호가 터졌다.

이세는 무릎을 쳤다.
“그래, 이 각시향은 죽은 자를 깨우는 향이었어.
그 냄새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만큼 끔찍했기 때문이야.”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세상의 향은, 좋은 것만이 유익한 것은 아니다.
악취조차 때로는 생명을 되돌리는 힘이 된다.


비행기가 하늘을 가르며 베트남 북부의 하늘로 진입했다.
구름 아래로 펼쳐진 초록빛 논과 강줄기가 점점 선명해졌다.
이세는 창문 밖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이 냄새, 낯설지 않아… 흙과 바람, 그리고 오래된 약속의 냄새야.”

그의 가슴 속엔 아직 각시향의 잔향이 남아 있었다.
그 독한 냄새가 되살린 생명처럼,
지금 이 순간의 공기도 새로운 시작을 예고하고 있었다.

하노이.
그 이름만으로도 향기가 느껴지는 도시. 하노이
그곳에서 이세는, 또 한 번 운명의 향기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향기 속에는 한 여인의 미소와
세상을 바꿀 빛의 비밀이 숨어 있었다.


비행기가 노이바이 국제공항에 착륙했을 때,
승객들은 박수로 그를 맞았다.
“감사합니다!”
이세는 웃으며 인사했다.
“저야말로, 함께 살아남아줘서 고마워요.”

공항 출국장으로 걸어나오며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굿바이, 창이.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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