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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14. 5부 하노이의 사랑(1)

산책


후각을 여는 순간, 기억의 냄새가 스며들었다.

특별한 빛이 깨어나며 이세는 과거의 공간 속으로 천천히 빠져들었다.
“이 냄새는… 어디서 맡아봤던 것 같아.”
그의 속삭임 속에서, 냄새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원초적 감각의 세계로 그를 데려갔다.


하노이 호안끼엠 호수 근처의 스페이스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오후였다.
이세는 긴 여행에 지쳐 짐을 풀자마자 침대에 쓰러졌다.
얼마나 잤을까, 요란한 전화벨이 울렸다.

“선생님, 로비에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이요? 혹시 트란 선생님이 보내신 분인가요?”

로비로 내려가자, 젊은 여인이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하노이대학에 다니는 쓰엉이에요. 트란 선생님이 보내셨어요.”

이세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 미소 지었다.
“마침 잘 됐네요. 저녁 식사 같이 하실래요? 앞으로 물어볼 것도 많거든요.”
“좋아요. 블루 버터플라이라는 식당이 괜찮아요. 마메이 거리에 있죠.”
그녀의 대답은 맑고 단호했다.

식사 자리에서 쓰엉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부모님은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형제도 없고요. 트란 선생님이 저를 데려다 키워주셨어요.
공부도 다 그분 덕분이에요.”
이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잔잔히 말했다.
“당신 이야기, 왠지 낯설지가 않네요. 나도… 비슷한 과거가 있거든요.”


그들의 시선이 잠시 마주쳤다. 말없이 서로를 이해하는 순간이었다.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호안끼엠 호수를 산책했다.
거리 공연의 음악이 바람에 흩날리고, 호수 위로 네온의 빛이 일렁였다.
쓰엉이 말했다.
“하노이는 밤이 참 아름다워요. 사람들 웃음소리도, 바람 냄새도요.”
“그래요. 그런데 당신에게서 나는 향기… 이상하네요. 어머니를 떠올리게 해요.”
“어머니의 향기라…” 쓰엉이 살짝 미소 지었다.
“그건 아마 평온함이겠죠.”
이세는 그 미소에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건…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고 했지.
아마… 그녀를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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