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5부 하노이의 사랑(2)
다음 날 아침, 하노이의 햇살이 커튼 틈으로 비쳤다.
이세는 간단히 오믈렛과 바게트를 먹고 로비로 내려왔다.
밖에서 경적 소리가 울리더니 쓰엉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녀 옆에는 트란이 서 있었다.
“이세, 드디어 만났군!” 트란이 반갑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당신 외조부와는 오래된 인연이지. 그분은 늘 나에게 침향을 사러 오셨지.”
“그분의 죽음을 들었소. 안타깝네. 하지만 그분이 찾던 숙결을,
당신이 이어 찾아야 할 때가 왔소. 어둠의 세력을 막으려면 말이오.”
이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빛은 반드시 함께할 겁니다.”
트란은 길을 안내하며 말했다.
“북부엔 좋은 침향이 거의 없어. 일본인들이 독점했거든.
그래서 우리는 꾹푸엉 국립공원으로 간다. 그곳 밀림 깊은 곳엔 오래된 침향이 있다네.”
“꾹푸엉… 이름이 예쁘네요.” 쓰엉이 조용히 말했다.
트란이 설명을 이어갔다.
“하노이에서 두 시간 거리야. 1960년에 지정된 베트남 최초의 국립공원이죠.
12월에서 4월 건기 때가 제일 좋아. 그때 침향의 향이 잘 퍼지거든.”
그들은 땀꼭에서 작은 배를 타고 밀림으로 들어갔다.
“육지의 하롱베이 같네요.” 이세가 감탄했다.
“그래, 이 풍경이 전설이지.” 트란은 웃었다.
밀림 안은 눅눅하고 벌레 소리가 요란했다.
쓰엉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투덜거렸다.
“땅이 질척거려요. 걸을 때마다 빠질 것 같아요.”
“침향은 물을 좋아하지. 늪 근처에 자라거든.” 트란이 대답했다.
잠시 후, 트란은 손가락만 한 조각을 꺼냈다.
“이건 오래전 내가 발견한 침향의 생결이야.
그 덕에 돈을 벌어 쓰엉을 공부시킬 수 있었지.”
그가 건네자 이세가 코에 대고 향을 맡았다.
“와… 가슴이 뚫리는 향이에요. 이렇게 강렬한 침향은 처음이에요.”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자, 잘려나간 침향나무들이 보였다.
쓰엉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들이 이렇게 무분별하게 베어가요?”
트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돈이 된다면 아무도 멈추지 않지. 침향 사냥꾼들은 숲을 파괴하면서까지 캐가거든.”
이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최신질이무사위자 기유비취호(最迅疾而無邪僞者 其惟鼻臭乎)"…
가장 빠르고 거짓 없는 것은, 오직 코의 냄새뿐이라 하셨지.”
그는 외조부의 글귀를 되새기며 향기를 좇았다.
“이쪽이에요.” 쓰엉이 가리킨 곳에는 웅덩이와 함께 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 있었다.
트란이 나무를 살피며 말했다.
“썩지 않았고, 인위적 자국도 없군. 숙결 맞아. 그리고 이 검은 윤기… 흑침이야.”
이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한 만큼만 자르죠. 욕심을 내면 향이 사라져요.”
트란은 그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래, 천사란 바로 그런 거야.”
숲을 빠져나오려는 순간, 낯선 무리의 그림자가 다가왔다.
칼을 찬 남자들이었다.
“배낭을 내놔!” 우두머리가 외쳤다.
“길을 묻고 싶을 뿐인데…” 이세가 말하자, 그들은 칼을 휘둘렀다.
트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침향 사냥꾼들이야. 뱀 문신을 봐. 아몬의 부하들이지.”
그들은 세 사람을 무릎 꿇리고 배낭을 뒤졌다.
트란이 말했다.
“마지막 소원이 있어. 향 하나만 피우게 해주게.”
우두머리가 비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트란은 이세에게서 생결을 받아 불을 붙였다.
순간, 공기 속에 오미(五味)가 흩어졌다.
단맛, 짠맛, 쓴맛, 매운맛, 신맛이 어우러진 향이 소리처럼 퍼졌다.
“이 냄새는…” 쓰엉이 숨을 삼켰다.
“이건 죽음이 두렵지 않은 향이에요.”
그 순간, 숲 저편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멈춰라!”
침향 채취업자들이었다. 그들의 도끼와 톱이 반짝였다.
포위된 사냥꾼들은 순식간에 도망쳤다.
트란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이 사람들은 조합이야. 무분별 채취를 막고 정해진 양만 캐지.
우리가 피운 향을 보고 위험을 눈치챘던 거지.”
이세는 고개 숙여 감사했다.
“당신들이 아니었다면 우린 여기 없었을 겁니다.”
세 사람은 살아 돌아왔다.
쓰엉이 차 안에서 졸고 있는 이세의 어깨에 기대며 속삭였다.
“이제 정말… 당신을 사랑하게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