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향기가 열리고
이제 향기는 우리에게 일상으로 다가왔다.
다만 우리의 향이 아닌 서구의 향기가 이 땅을 뒤덮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과연 우리에게도 향 문화는 존재했을까?
이러한 의문은 나를 역사의 한 페이지로 몰아간다. 묻혀버리고, 잊혀졌던 우리의 향 문화와 역사를 찾기 위해서 말이다.
여행은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이 글을 남긴 까닭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오랜 여정이기때문이다.
그리고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성경의 '창세기'에 이런 말이 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11-12)
이는 천지 창조의 셋째 날에 하신 것으로, 여섯째 날에 만드신 인간보다도 향기 가득한 에덴동산을 먼저 만드신 것이다. 다시 말한다면 인류는 자연스럽게 향을 사용하였으며, 이것은 향이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함을 의미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록되어 있는 고조선(古朝鮮)에 대한 글을 살펴보면, 고대의 한국인들 역시 향을 신성하게 생각했고, 향과 더불어 살았음을 추측케 한다.
환웅이 무리 3천을 거느리고 태백산(지금의 묘향산)꼭대기 신단수(神檀樹) 아래 내려오니 여기를 신시(神市)라 이르고, 그를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했다.
환웅신은 영험 있는 쑥 한 타래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 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 날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쉽사리 사람의 형체로 될 수 있으리라'고 하였다.
우리 민족의 첫 근거지가 태백산 신단수 아래라면, 단순히 큰 나무가 있는 제사 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제왕운기(帝王韻紀)』주1)에는 단(壇)이 단(檀)으로 쓰인 것으로 보아, 단(壇)과 단(檀)은 하나의 의미로서, 박달나무인 자단(紫檀), 백단(白檀)의 향나무를 말하며, 단향(檀香)을 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단군왕검(檀君王儉)이나 그가 사용한 단궁(檀弓)은 모두 향나무에서 나온 것으로, 당연히 우리 민족의 시작 터인 묘향산(妙香山)은 야릇한 향나무의 향기에 뒤덮여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마늘과 쑥은 향이 강하고 약효가 뛰어난 식물로서 이를 사용하였다면, 우리 민족은 처음부터 향을 생활에 응용하였거나 향의 신성함을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민족에게 향나무는 오래 전부터 깊은 연관을 맺어 왔지만, 자연 상태의 나무나 풀을 사용했을 뿐 이것을 상품이나 향료로 구체화시키지는 못한 듯하다. 그것은 고조선 이후 삼국 시대에 이르기까지 문헌상에 향에 대한 언급이 많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상품화된 향은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
향은 본래 중국을 비롯한 인도 등 동양에서 일찍부터 신성한 것으로 취급되어 사원의 제단에서 분향되었고 약재로서 매우 귀중한 것이었다. 특히 불교의 전래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어 우리나라에는 중국을 통하여 불교와 함께 전해온 것이 아닌가 한다.
『삼국유사』권 제3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신라본기(新羅本紀)」제4에 이르기를 '제19대 눌지왕 때에 중 묵호자(墨胡子)가 고구려로부터 일선군에 이르니, 그 고을 사람 모례(毛禮)가 집 안에 땅굴 집을 짓고 묵호자를 모셔두었다.
이때에 양나라가 사신을 시켜 의복과 향을 보내왔는데, 임금이나 신하가 그 향의 이름과 용처를 몰라서 사람을 시켜 향을 가지고 전국을 두루 찾아다니며 묻게 하였더니, 묵호자가 이것을 보고 말하기를 '이것은 향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을 태우면 꽃다운 향기가 무럭무럭 나는 까닭에, 그 정성이 거룩한 신에게 사무치게 되는 것이다. 거룩한 신으로서는 3보(三寶)보다 더 나은 것이 없으니, 만일 이것을 태워서 소원을 빌면 반드시 영험이 있으리라.' 했다.
이때에 왕녀가 병이 위독하여 묵호자를 불러서 분향(焚香)하고, 발원케 하였더니 왕녀의 병이 곧 나았다.
이와 같은 기록에 비추어, 우리나라에 향료가 보급된 것은 신라 눌지왕 때(450년)에 본격화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불교가 고구려, 백제를 거쳐 신라에 전해진 것으로 보아, 이보다 훨씬 앞서 고구려에는 중국으로부터 향료가 전래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고구려의 쌍영총(4세기 말~5세기 초) 고분 벽화 동쪽 벽에 아홉 사람이 걸어가는 장면이 있는데, 맨 앞에 선 소녀가 향로를 머리에 이고 두 손으로 받친 장면이 있다. 그 향로에서 세 줄기의 향연(香煙)이 피어오르고 있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문헌에 기록된 삼국 시대의 향에 대한 언급은 주로, 향을 사찰의 제사나 의식 등에 사용했다고 함으로써 불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게 하였다. 때로는 자연의 신기한 현상에도 향기로운 냄새가 있음을 기록한 것으로 보아 단순히 향료로서 뿐만 아니라 향기가 가지고 있는 영혼과 철학까지도 표현하고자 하였던 것 같다.
사찰의 제사나 의식 등에 사용된 향의 기록을 살펴보자.
35년 2월에 왕흥사가 낙성되었다.
왕흥사는 강수(江水)에 임하고 채식(菜飾)을 장려하였는데 왕(백제 흥왕.634년)이 매양 배를 타고 절에 가서 행향(行香)하였다.
(『삼국사기』전 제 27)
진평왕 9년 붉은 비단으로 씌운 큰 돌 하나가 하늘로 부터 산꼭대기로 떨어졌다.
바위 옆에 절을 세우고 이절을 대승사(大乘寺)라 하였다.
연경 (법화경)을 외우는 중을 청하여 절 주지로 삼아 공양 돌을 깨끗이 쓸고 분향을 끊지 않았으며‥‥,(『삼국유사』권 제3)
경덕왕 천보 12년(757년) 계사 여름에 크게 가물어 왕이 대궐 내전으로 대현을 불러들여 금강경을 강연하여 단비가 오도록 하였다.
재를 올리는 첫날에 바리때를 펴놓고 한참 되었으나 정화수 바치기를 더디하였다.
이에, 일을 보는 관리가 심부름하는 자를 나무라니 심부름하는 자가 말하기를 '대궐 우물이 말라서 멀리서 걸어오기 때문에 늦다'고 했더니, 대현(大賢)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왜 진작 말하지 않느냐?' 하고, 낮 강연을 할 때가 되어 향로를 들고 잠자코 있으니, 조금 있다가 우물물이 솟아올라‥‥,
(『삼국유사』 권 제4)
재 끝난 불당 앞에 지팡이 한가할 새, 향로를 차려놓고 향불이나 피울까나 남은 불경 읽고 나니 다른 일 더 없으매, 부처님 빚어 두고 합장하고 뵈오니
(『삼국유사』 권 제4 「양지장석(良志杖錫)」편)
5월 15일 낭(부예랑 : 夫禮郞)의 양친이 백률사(栢栗寺) 관세음상 앞으로 가서 여러 날 저녁을 두고 정성 어린 기도를 드렸더니, 갑자기 향탁(香卓) 위에서 가야금과 젓대, 두 가지 보물을 얻게 되고, 낭과 안상 두 사람은 불상 뒤에 와 있었다.
(『삼국유사』 권 제4 「백률사」편)
이것을 보면, 단순히 향료뿐만 아니라 향로, 향탁 등 향을 사용하는 도구에 대하여 수차 언급한 바, 향과 함께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 발굴된 향유병이나 향로를 보면 중국에서 전래되었지만, 우리 민족의 독자적인 것이 많을뿐더러, 그 아름다움이 중국 것에 비해 손색이 없으며, 또한 신비한 현상이나 영험한 일에는 늘 향기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명 7년 신사 5월 15일에 제석(帝釋)이 절 왼쪽에 있는 불경 쌓아 둔 누각에 내려와서 열흘 동안 머물매, 전각과 탑, 풀, 나무, 흙, 돌 할 것 없이 다 이상한 향기를 풍기고 5색 구름이 집을 덮으며
(『삼국유사』 권 제3)
-또 진신사리 네 개 이외에 변신사리가 모래처럼 부서 져서 돌솥 밖에 흩어져 있었는데, 이상한 향기 (異香)가 여러 날 동안 그치지 않고 풍길 때가 가끔 있었다.
(『삼국유사』 권 제 3)
부득(夫得)은 미륵부처의 도를 열심히 탐구하고, 박박(朴朴)은 미타 부처를 정성스레 염불하여, 3년이 못차서 경룡 9년, 즉 성덕왕 즉위 8년 기유 4월 8일 해질 무렵에 나이 스무 살쯤 된 색시가 있어 , 자태가 절묘하고 몸이 고귀한 향기를 풍기면서‥‥ 노흘 부득이 일변 부끄럽고 두려웠으나 불쌍한 생각이 더할 뿐, 다시 함지박을 가져다 놓고 색시를 그 속에 앉히고 물을 끓여 목욕시켰다.
조금 있자 통 속의 물에서 향기가 무럭무럭 풍기고‥‥‥
(『삼국유사』 권 제3)
이상의 사례는 향기가 현상에 있어서 판단의 기준이 되었음과 후각의 중요성을 알린 것이다. 따라서 삼국시대 에 우리 민족은 향을 늘 가까이했으며, 향이 단순한 기호품이 아닌 생활이었으며, 종교와 철학 그리고 정신세계의 한 부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
Olfactory Director
1) 고려 때 이승유가 7언시와 5언시로 지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