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각 지식채널 Season.2

2. 여인의 향기

고대로부터 여인들은 아름다움을 위하여 몸과 주변을 늘 향기롭게 하기를 원했다. 왜냐하면 남자보다 더 뛰어난 후각을 가지고 있어, 좋은 냄새를 쉽게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향신료를 이용하여 요리하고, 향기로운 꽃과 풀에서 더욱더 많은 즐거움을 느껴왔던 것이다.

전통적으로 여인들은 향기에 민감했고 좋은 냄새를 사랑하였다. 누군가 여인에게 '당신에게는 아름다운 향기가 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녀는 그날 밤 내내 잠 못 이룰 것이다. 왜냐하면, 여자에게 향기가 있다는 것은 최고의 찬사니까말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향녀(香女)라 불리는 여인 궁중에 있었다. 주로 페르시아 여인으로, 몸에서 늘 향기가 났으며, 왕의 부름이 있으면 언제나 자신의 향기로 왕을 즐겁게 해주었다고 한다. 이 향녀는 저절로 몸에서 향기가 난 것은 아니었다. 향을 먹고 바르는 등 인위적인 방법으로 몸에서 향기가 나도록 가꾼 것이다.

『삼국유사』권 제1의 「도화녀(桃花女)와 비형랑(鼻荊郞)」편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신라의 진지왕이 도화녀의 미색에 반해 궁정으로 불러 상관하려고 하니 , 여자가 지킬 도리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 것이라고 하여 왕의 청을 거절하였다. 그러다 왕이 죽었다. 그후 남편이 죽자, 죽은 진지왕은 귀신으로 화하여 도화녀와 이레간 방에 머물렀다. 왕이 머무는 동안 항상 오색구름이 집을 덮고 향기가 방 안에 가득하였다' 그때 잉태한 자식이 바로 비형랑이다.

또 『삼국사기』에 의하면, 평강공주가 온달의 집을 찾아갔을 때, 온달의 노모가 그녀를 맞으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 그대를 보니 향취가 이상하고, 그대의 손목을 잡으니 부드럽기가 솜과 같소‥‥.“

여인의 향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일화는 끝이 없는 것 같다.


『아라비안나이트(천일야화)』에, 페르시아 여인이 남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매일 복숭아를 세 개씩 먹어 몸을 향기롭게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렇다면 중국의 향녀도 페르시아 여인이었기에 복숭아를 먹어 몸을 향기롭게 하지 않았을까. 도화녀의 경우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녀의 이름 또한 복숭아꽃인 것을 보면, 언제나 복숭아를 먹어 몸을 향기롭게 했을 것이고, 이레 동안 머문 방에도 향기가 가득한 것을 보면, 복숭아의 마법에 의한 당연한 결과라고 추측하는 것은 지나친 것일까.


이상의 사례로 보아, 고대의 우리나라의 여인들은 음식이나 과실, 꽃 등 자연의 향기로운 물질을 이용하여 몸이나 주변을 항상 향기롭게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꽃잎 혹은 향료 물질을 저장하여 얻은 화정유(花精油), 또는 향료 식물을 압착시켜 만든 향수를 담은 작은 향유병이 출토됨으로써 확인되었다.

특히 토기 향유병 중에는 선사시대에 진혼을 따로 접착시킨 것이 있어, 일찍이 향유를 제조하여 사용한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는 셈이다.


고려는 신라의 문화를 거의 그대로 답습하여 발전시켰는데, 향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고려 여인들은 지나친 사치보다는 보수적인 아름다움을 가지려 했던 것 같다. 향의사용은 귀족 또는 궁중의 여인에게 한정되며 일반 서민들은 쉽게 향을 사용하거나 구할 수 없었음을 문헌을 통해 알 수 있다.


『선화봉사 고려도경』에 부인의 화장법과 향주머니에 대한 글을 보면,

진주장식 고려 향낭
부인의 화장은 향유(香油) 바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분을 바르되 연지는 칠하지 아니하고, 눈썹은 넓고, 검은 비단으로 된 너울을 쓰는데, 세 폭으로 만들었다. 폭의 길이는 8척이고, 정수리에서부터 내려뜨려 다만 얼굴과 눈만 내놓고 끝이 땅에 끌리게 한다.
흰 모시로 포(袍)를 만들어 입는데 거의 남자의 포와 같으며, 무늬가 있는 비단으로 넓은 바지를 만들어 입었는데 안을 생명주로 받치니, 이는 넉넉하게 하여 옷이 몸에 붙지 않게 함이다.

감람(橄欖: 올리브)빛 넓은 허리띠(革帶)를 띠고, 채색 끈에 금방울(金鐸)을 달고, 비단(錦)으로 만든 향낭(香囊)을 차는데, 이것이 많은 것을 귀하게 여긴다.

또, 고려도경에 박산로(博山爐)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이는 끓는 물을 담아 놓아 옷에 향기를 쐬는 용도로 썼다고 한다. 그것은 공기 중 습기와 향기가 접합되어 연기가 흩어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이는 온도와 습도와 바람의 모양새가 향기의 지속과 관계가 있음을 생활에서 터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향로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고려 여인들은 향유를 몸에 바르기보다는 향을 패용하고 옷에 향기가 스미게 하는 등 직접적인 향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늘 자신의 주변에 향기로 가득하게 하기를 바라며, 은은한 향을 즐기는 편이었다고 생각된다.

백자박산향로, 간송미술관, 12세기 고려
“박산로는 본래 한대(漢代)의 기물이다. 바다 안에 박산이란 이름의 산이 있는데, 그 형상이 연꽃 같기 때문에 향로에 그 형상을 본따 쓴 것이다. 아래에 분(盆)이 있는데, 거기에 산과 바다에 파도치고 물고기와 용이 출몰하는 형상을 만들어서 끓는 물을 담아 옷에 향기를 쏘이는 용도에 쓴다. 그것은 습기와 향기가 서로 붙어서 연기가 흩어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고려 사람이 만든 것은 그 꼭대기는 비록 박산의 형상을 본떴다고는 하지만 그 아래는 세 발이어서 원래의 만듦새와는 아주 다르다. 다만 재치 있는 솜씨는 취할 만하다.” 주3)


여인의 향기로 사향을 빼놓을 수 없다. 당본 초에 이르길 중대계곡에서 나며 옹주, 익주에도 이것이 있다고 하였다. 은거하며 질그릇을 굽는 이들이 말하길 모양이 노루와 비슷하며 늘 측백나무 잎을 먹거나 뱀을 잡아 먹는다고 하였다. 5월에 얻는 것에는 종종 뱀 껍질과 뼈가 나오기도 한다고 한다. 악귀를 물리치는 것을 주관하고 악성중독을 다스리며 상처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하였다.

하나의 향을 나누어 3∼4개의 종자를 만들고 깎으면 혈막(血膜)을 얻는다. 나머지 것들은 섞여 있어 대부분 정교하고 굵은 것이 있는데 모피를 파괴한다. 속에 있는 것은 모두 뛰어나고 여름에 뱀을 많이 먹은 것은 겨울까지 향이 가득 차있다. 뱀가죽에 붙어있는 미향(彌香)이라는 향내가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봄이 되면 그 부분에 통증을 느껴 제 발톱으로 떼어내어 해마다 같은 곳에 묻는다. 스스로 도려내진 사향을 상등품으로 해서, 생포해서 떼어낸 것을 중품으로, 죽여서 떼어낸 것을 하품으로 친다.

또한, 사향(麝香)은 射香이라고도 하는데 냄새가 하도 지독해 사람을 쏘는듯하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 사향이 묻힌 땅엔 근처 식물이 말라죽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원래의 사향은 강한 암모니아 냄새가 난다. 그래서 일단 채취 후 곧 물에 개서 젤리 상태로 보관을 하여 거래를 한다고 한다. 희석되면 좋은 냄새로 바뀌는데 가격 때문이라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50g 정도의 하품사향이 수천만 원을 호가하니 말이다. 한 마리의 사향노루에서 얻어지는 분량은 30∼40g정도이다.


고려 가요 '만전춘(滿殿春)'주4)중에 '사향(麝香)각시'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 중에 사향각시가 나오는 구절을 살펴보면

남산에 자리 보아 옥산을 벼여 누어
금수산 니불 안에 사향각시를 아나 누어
남산에 자리 보아 옥산을 벼여 누어
금수산 니불 안해 사향각시를 아나 누어
약든 가삼을 맛초압사이다.
맛초압사이다.

여기서 사향각시는 신분과는 상관없이 단순히 아름답고 젊은 여인을 말하고 있으나, 사실 그 당시에는 사향노루의 향낭을 소지할 수 있었던 신분은 궁중이나 귀족인 상층 여인에 한 하였다. 그래서 사향은 단순히 향기로운 것만이 아니라, 규방이나 침실에서 회춘과 최음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바, 향낭은 임에 대한 애정의 응축체이며, 그 향은 애정의 표현물임을 알 수 있다.


옛날 중국의 부잣집 여인들은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등 오감의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려고 했지만 유독 화장실에서만은 그 아름다움을 나타낼 수가 없기에 그들은 사향을 조금씩 복용함으로써 나쁜 냄새를 없앴고, 배설물에 묘한 향기가 나게 하였다. 더군다나 그런 여성은 정력 또한 절륜하게 되었음으로 사향의 인기는 과히 폭발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향의 주 생산지인 인도, 중국을 통해 입수한 이슬람교들은 뛰어난 향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신전에 사용하였고 할렘의 여인들에게는 성적 도구로서 비싼 값으로 거래되었으며 전파시켰던 것이다. 서양에서의 사향은 약효보다는 뛰어난 향기의 아름다움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향수의 대부분에 머스크가 들어가지 않는 제품이 없는 것을 보면 말이다.

장 자크 루소는 "규방의 부드러운 향기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약한 덫이 아니다. 나는 사람들이 가슴에 꽃을 달고 있는 여주인 앞에서 결코 마음 졸인 적이 없는 현명하거나 다소 둔한 남자를 동정할지 축하해 줄지 알 수 없다." 라고 하였다.


그러나 사향노루는 1996년 10월 (CITES) 멸종동물보호협약 발효에 따라 더 이상 무질서한 채취와 포획을 당하지 않음으로써 사향의 국제간 거래는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다.(이것 때문에 엠므씨를 자살하게 만들긴 하였지만) 물론 밀렵에 의한 밀수도 있기는 하지만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공급은 그 가격을 천정부지로 뛰게 만들었고 이는 곧 사향의 대체 물질인 합성 머스크의 개발로 연결되어 졌다. 우리나라의 향료와 약재로써 사향의 수입은 연간 2,000만불을 넘어섰으며, 제약회사, 화장품회사, 한의원들의 수요증가 등을 고려 해 볼 때 그 시장 규모는 훨씬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엘 무스콘" 등 사향 대체물질이 속속 개발되어 대신 사용되고 있지만 -엠므씨의 경우를 보더라도- 합성은 천연 머스크와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남북한이 천연 기념물로 지정, 보호하고 있는 사향노루를 1980년대부터 북한에 사육시설을 갖추고 사향성분을 조사 연구한다고 하니 남북이 통일 된다면 북한으로 진짜 사향을 찾아 떠나봄이 어떨지 모르겠다.

사향은 천연 동물 향료의 네 가지 중 하나이다. 그 외, 용연향주5), 영묘향주6), 해리향주7)이 있다. 이러한 향료는 일찍이 조선의 선비도 사용하였던 기록이 있다. 신흠의 상촌집을 보면 그가 용연향을 애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동짓날 지봉에게 부치다[至日寄芝峯] 2수 주8)

簷溜泠響欲殘 / 처마에 뚝뚝 떨어지는 물소리 들릴락 말락
小春天氣未全寒 / 소춘의 하늘 기운 아직 차지 않는데
香添睡鴨龍涎逗 / 수압 주9)에서 피어나는 용연 향기 맴돌고
茗潑風爐蠏眼團 / 풍로에 끊는 차 거품 해안 주10) 이 둥글둥글
休遣此生牽俗累 / 이 생애를 세속 사에 이끌리게 하지 말자
每愁浮世少淸歡 / 뜬세상에 맑은 기쁨 적음을 항상 시름해
南枝定有花消息 / 남쪽 향한 매화가지 꽃소식이 있을 텐데
歲暮何人共我看 / 세밑에 어느 누가 나와 함께 구경 할꼬


태초 이래 향과 향수는 사람의 마음을 유혹하는 수단에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향은 자신의 외적 아름다움과 함께 내면의 정서까지도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로 이용되었던 것 같다.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향은 궁중과 귀족의 한정된 여인들만 사용되던 것이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서민들에게까지 광범위하게 퍼졌다.

부부의 침실에 향을 사르고, 향 물에 목욕을 하고, 난향 의 촛불을 켜는가 하면 혼례 때나 차를 마실 때도 향을 애용하였다. 궁중 여인이나 귀부인은 줄향과 향낭을 패용했는데, 기방 여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또한 향은 단순히 바르고, 사르고, 뿌리는 것만이 아니라, 의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먹기도 하였다. 한 예로, 상궁이 차고 있는 줄향은 여러 개의 향 환으로 만들어졌는데, 토사곽란 등 위급한 환자가 있을 때 줄향의 환을 먹여 치료하였다고 한다.

향료는 일부 상품화되어 시전(市廛)에서 사거나 수입하여 사용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자가 생산을 했다. 궁중에 서는 향장(香匠)이라는 전문 조향사에 의해서 생산되었고, 특히 민간에서는 부인들에 의해 제조되었다.


『규합총서 (閨閤叢書)』주11)에 향 만드는 법이 기록되어 있는 데, 그것을 보면, 부인네들이 쉽게 향을 만들어 애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구자향이나 향 병자, 애납 향 만드는 법에 대하여 언급하였고, 또한 옷장 속에 넣어두는 향 만드는 법과 몸을 향기롭게 하는 방법도 기록되어 있다.

“모향(募香)과 이삭 잎을 달여 영릉 향을 한데 섞어 먹고 멱을 감으면 몹시 더워 땀이 나도 사나운 냄새가 없어 향기롭다.”

고 한 것을 보면, 목욕용 젤이나 오일을 이용하는 오늘날 여인들은 조상들에게 깊이 고개를 숙여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 여인들은 삶에 향을 접목시켜, 생활의 지혜와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한, 진정 향을 사랑한 여인들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서양의 향수 문화 속에 우리 것을 잊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이 우리 자신을 부끄럽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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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고려도경(高麗圖經)은 송나라의 사신 서긍(徐兢, 1091년 ~ 1153년)이 1123년에 고려를 방문하여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보고서다. 원명은 송 휘종의 연호인 선화(宣和, 1119년~1125년)를 넣어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이라고 하며, 줄여서 《고려도경》이라고 한다.

2) 서긍(徐兢).『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차주환 외 역. 민족문화추진회, 1977.

20권 부인(婦人)편 귀부(貴婦).

3) Ibid. 제 30권 기명(器皿) 1편 박산로(博山爐).

4) 고려가요(高麗歌謠)로《만전춘별사(滿殿春別詞)》라고도 한다. 이는 조선시대에 윤회(尹淮)가 지은《만전춘과 구별하기 위함이다. 작자·연대는 미상이며, 일종의 노래 가사이다.《악장가사(樂章歌詞)》와《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에 수록되어 있다.

5) 엠버그리스(Ambergris): 향유고래의 장내에 덩어리 형태(일종의 결석)로 존재하며, 향수에 휘발억제제로 사용된다. 바다에 떠있거나 파도에 밀려오는데 이것의 비릿한 역겨운 냄새가 엠버그리스의 향이다. 순수한 알코올 속에 수개월간 담그기 과정을 거쳐 사용하며, 엄청난 가격으로 바다에서 이것을 만나면 정말 행운이다.

송인갑.『향수(The Story of Perfume)』. 한길사, 2004. p23.

6) 시벳(Civet): 사향고양이과에 속하는 매우 작은 고양이다. 에티오피아 남서지역에 서식하며 갈색의 매우 자극적인 그러나 부드러운 Viverreum을 분비하는 생식선 가까운 곳에 초승달 모양의 주머니를 가지고 있다. 다른 재료와 섞이면 특유의 자극적인 냄새는 사라지고 지속성이 강한 관능적인 느낌과 동물향조를 부여한다.

Ibid., pp23-24.

7) 캐스토레움(Castoreum): 비버의 생식선에서 분비되는 향기로운 물질로 기름기가 있고 광택이 난다. 주로 북미와 러시아에 서식하고 있다. Ibid., p23.

8) 신흠.『국역 상촌집(象村集)』. 임정기 외 역. 민족문화추진회, 1994-1996. 13권 칠언율시(七言律詩) 110 수에 나오는 시구.

9) 수압(睡鴨): 조는 오리 모양의 향로. 속이 비어 있어 그 안에 향을 피우면 연기가 입으로 피어나오므로 청한(淸閑)을 즐기는 사람의 애용물이다.

10) 해안(蠏眼): 게 눈알로, 물이 막 끓기 시작할 때의 작은 거품을 형용한 것이다.

11) 1809년(순종 9) 빙허각(憑虛閣) 이씨(李氏)가 엮은 가정살림에 관한 내용의 책.『규합총서』는 3부 11책으로 구성된『빙허각전서(憑虛閣全書)』의 1부에 해당되며 4권 5책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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