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진기한 나무, 눈측백
등위산의 왼쪽에는 네 그루의 늙은 측백(側柏) 나무가 있다. 이 나무들은 '맑은 나무', '진기한 나무', '예스런 나무', '괴팍한 나무' 란 이름이 각각 붙어 있었다.
'맑은 나무'는 한줄기로 곧게 서서 비취색 양산을 받친 것처럼 잎이 무성하고, '진기한 나무'는 땅바닥에 갈지자로 누워있고, '예스런 나무'는 뭉툭한 정수리가 벗겨지고 반 넘어 썩어서 손가락 같이 보이고, '괴팍한 나무'는 밑동에서부터 가지 끝까지 나선형으로 비비 꼬여 있다. 전해져 오는 말에 따르면 모두 한(漢, 기원전 202~서기 220) 나라 이전 것이라 한다. 주1)
내가 이 진기한 나무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우연한 일이었다. 향에 대한 다큐멘터리 촬영차 정선을 방문한 오래전 1월의 가리왕산에서다. 땅에서 기어 다니는 뱀처럼 가지를 뻗어 쉽게 볼 수 없는 나무, 눈 속에 묻혀 시원하고 상큼하여 톡 쏘는 강렬한 향기로 우리를 맞이하던 눈측백은 이제 생강나무, 구절초, 독활 등 약초와 근피의 향과 함께 풍경이란 향기로 태어났지만 오래지 않아 우리 곁을 떠나버렸다.
『왕조실록』이나『산림경제』,『신 증 동국여지승람』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향재에 대하여 알 수 있다. 모향은 함경도 안변, 사향은 충주, 옥천, 횡성, 거창 등에서 생산되었고, 자단향은 진도, 강릉, 삼척, 정선, 영월, 평창, 횡성, 울릉도에서, 치자향은 거제, 장흥, 남원, 순천, 구례, 제주 등 남쪽의 따뜻한 곳에서, 영릉향은 제주에서, 안식향은 전국 각지에서 생산되었다고 한다. 특히 조선시대 세종 때에는 변계량 등에게 전국 각지의 향식물에 대한 재배와 관리에 대하여 지시한 바 있고, 실록 곳곳에 그것에 대한 기록도 전해진다.
그 예로 세종 때 전의감 제조 황자후(黃子厚)가 상언하기를 '제주에서 나는 영릉향을 간조 시키는 법이 아마도 미진한 것 같사오니, 비옵건대 7월이 되거든 훌륭한 의원을 파견하여 법에 의해 간조하오면 중국에서 구하지 않고도 무궁무진하게 쓸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이런 일례를 볼 때, 향식물의 재배지, 관리 및 수매, 제조 방법 등이 책자 등 사료로 기록되어 있을 법한데, 오늘날 이러한 기록서가 존재하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의문이 꼬리를 문다.
조선 초기에는 대마도나 왜국으로부터 향재를 조공으로 받고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남번(南蕃: 옛날 동남아시아에 있었던 나라)의 조와국爪蛙國주2) 등에서 보내지기도 했다. 또한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그 답례품으로 중국으로부터 편뇌, 침향, 사향, 단향, 유향, 몰약, 곽향, 영릉향, 소합유, 감송향 등을 받기도 하였다.
남번(南蕃)의 조와국 사신 진언상(陳彦祥)이 전라도(全羅道) 군산도(群山島)에 이르러 왜구(倭寇)에게 약탈을 당했다.
배 속에 실었던 화계·공작(孔雀)·앵무(鸚鵡)·앵가(鸚哥)·침향(沈香)·용뇌(龍腦)·호초(胡椒)·소목(蘇木)·향(香) 등 여러 가지 약재와 번포(蕃布)를 모두 겁탈당하고, 피로(被虜)된 자가 60인, 전사자(戰死者)가 21인이었으며, 오직 남부(男婦) 를 합해 40인만이 죽음을 면하여 해안으로 올라왔다.
주3)
조선은 향재의 원산지와 직접 무역하기보다는 조공, 또는 일본과 중국을 통해서 남방의 향재를 구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조선 초 이후 향재는 수요가 늘고 공급이 딸림으로써 민간적인 교역이 이루어지고, 중국으로부터 들여온 원료는 값비싸게 거래되었던 것이다.
또한 언제부터 인지 왜국은 더 이상 향재를 조공하지 않고, 일찍이 남방과의 교역으로 원료를 다량 확보할 수 있어서, 오히려 물량을 조절해가며 조선에 값비싸게 팔았다는 기록이 여기저기에 나타나 있다.
내의원이 아뢰기를,
"평시 왜인들에게서 무역하는 용뇌와 침향의 품질이 매우 양호하므로, 왜인을 개유(開諭)하여 무역하도록 하는 일을 이미 입계 하여 경상 감사에게 하유하였습니다. 지금 감사의 장계를 보건대, 관소에 머물고 있는 왜인의 처소에 과연 용뇌와 침향이 있기에, 값을 주고 무역하겠다는 뜻을 이미 개유했다고 하니, 본원의 관원 견후민(堅後閔) 및 일을 하는 하인 1명에게 모두 말을 주어 내려 보내 엄선해 무역하여 오도록 하고, 그 값을 본도 감사에게 지급하라고 하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용뇌와 침향을 계속 가지고 나오도록 왜인에게 동래부사가 잘 개유하라고 하유하라"
하였다. "
주4)
임금이 예조판서 신상(申商)에게 이르기를,
"주사와 용뇌는 비록 귀한 약이라 해도 중국에 가서 구하면 얻을 수 있으나, 침향으로 말하면 중국에서도 쉽사리 얻지 못할 것이다. 지난번 왜인들이 가져오는 침향이 흔히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 값 깎기를 너무 헐하게 하여 다시는 가지고 오지 않는다. 침향은 왜나라에서도 나지 않는지라 갑절을 준다 하더라도 가하니, 예조에서는 그것을 논하여 아뢰어라"
하였다.
주5)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그것은 왜국의 장난에 놀아나면서도 조선은 직접 남방과의 교역을 하지 않았을까 라는 것이다.
오늘날의 일본은 세계적인 향료 회사를 여럿 두고 동남아시아의 침향 산지를 통째로 사들였고, 특히 베트남 현지에 침향을 대량 재배까지 하면서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이것뿐만 아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향수와 방향제, 화장품 그리고 음료와 식품에 들어가는 향료의 50퍼센트 이상을 일본 향료 회사가 공급하고 있다.
조선이 그러했듯이 아직도 일본에 의존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또한 지금 누구 하나도 향 산업이 21세기의 떠오르는 산업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라도 늦지 않으니, 후세들을 위하여 깨우쳐야 한다
향 식물에 대한 조사 연구를 통하여서 자생하는 향 식물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을 정립과 대단위 재배를 하여야 한다. 또 향재의 원산지와 직접 교역하거나, 현지화를 통해 값싼 원료로 향을 만들어서 국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또한 지나간 우리의 역사를 바로잡아 향 문화를 정립시키고, 교육과 기술개발을 통하여 전문가를 육성하며, 정부의 아낌없는 투자로 미래 향료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훗날 우리의 후손은 또다시 일본에게 머리 숙여 향을 구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Olfactory Director
1) 심복(心腹).『부생 육기(浮生六記)』. 지영재 역. 을유문화사, 1999. p150.
2) 레바논 인근 지역 또는 중동 지역으로, 증보 문헌 비고에 의하면 조와국(爪哇國)은 파사국(波斯國)이라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 동남아시아의 자바라고도 한다. 그 이유는 침향은 동남아시아에서만 생산되기 때문이다.
3) 『왕조실록』 태종 6년 8월 11일(정유).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
4)『왕조실록』「광해군」 편. Ibid.
5) 『왕조실록』「세종」 편. Ib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