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문방오우(文房五友)
깊은 산중에 고상하게 길들여져 살자니, 화로에 향 사르는 일을 빼놓을 수 없다.
벼슬에서 물러나온 지도 오래되었으니, 쓸만한 물건이란 하나도 없다.
늙은 소나무와 잣나무 뿌리와 가지, 잎과 열매를 취하여 절구에 찧은 것에
송진을 깎아 긁어 한데 섞어서 진을 만들어 두었다가
한 알씩 사르면 청고함을 얻을 것이다. 주1)
조선의 선비는 독서할 때 단정히 옷을 입고 향로에 향을 지펴, 심신을 안정시키며 정결케 하였다고 한다. 선비의 방에는 붓과 벼루, 먹, 종이 이외에 언제나 작은 향꽃이가 놓여 있었던 것을 보아 향이 그들의 가까운 벗이었음에 틀림없는 것 같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섭생(攝生)」편 열두 시간의 정취(情趣)에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오시(午時)에는 선향(線香) 한 개비를 피우고 일정한 곳을 맴돌아
기(氣)와 신(神)을 안정시키고 나서 비로소
‥‥‥‥
유시(酉時)에는 선향 한 개비를 피우고 동(動) 과 정(靜)을 마음에 맞도록 하며,
‥‥‥‥
해자시(亥子時) 에는 일신의 원기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발생하므로,
그 시각에 있거나 이불을 두르고 앉아서
마음이 자만하지 않고 항상 안정되게 하여 무위로써 진행되며,
선향 한 개비쯤 피우고 명문(命門)을 단단히 보호하면
정신이 날로 유여해지고 원기가 길이 충만해질 것이니,
이 시각에 일어나 이를 수행하면 아무리 늙었어도 이내 보존할 수 있다. 주2)
또한 묘시(卯時) 첫새벽에 일어나 향을 피우고 차나 달이며 성에 올라 산을 관망하고 뜻을 바둑에 붙이기도 한다 했다. 이는 향이 세상의 온갖 번뇌를 제거하고 성(聖)을 배우며 선(善)을 바랄 수 있는 좋은 매개체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 우리네 선비들은 지식을 쌓기 전, 먼저 몸과 마음의 안정을 위해 향을 피우고 맡기를 일상으로 즐겼던 것 같다.
이러한 애향 풍습은 단순히 사사로운 일이나 개인에게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궁중의 의식이나 주요한 행사에는 항상 향이 피워져 올랐다. 향실(香室)이라 하여 궁중의 제례나 의식에 필요한 향을 관장하는 기관이 있었고, 전향별감(傳香別監), 행향별감(行香別監)이라 하여 향을 전하고 피우는 직책이 있었다. 이는 주로 충찬위 (忠贊尉)와 충의위(忠義衛)가 하는데, 때로는 그보다 벼슬이 높은 경우도 있었다. 전향별감, 행향별감에 대해서는 『왕조실록』에 수차 언급하고 있는 바,
『왕조실록』「성종」 편을 살펴보면
전향 별감으로 경상도에 가는 병조좌랑 목철경(睦哲卿), 전라도에 가는 예조정랑 박처륜(朴處綸), 영안도에 가는 예빈시 첨정 최옥순(崔玉筍), 평안도에 가는 의빈부 경력 이의(李誼)가 사조(辭朝)하였다. 그 사목은 이러하였다.
1. 도내 여러 고을 민간의 질고를 조사해 묻고, 지나가는 여러 고을 수령의 불법을 아울러 검거한다.
1. 여러 고을의 불법을 아울러 검거한다.
1. 향을 전한 뒤에는 문폐경차관(問幣敬差官)이라 칭호한다.
그러나 전향별감은 단순히 향만 전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민폐를 끼치는 폐단이 많아 크게 우려한 일이 수차례 기록되어 있으며, 그 도의 관찰사로 하여금 향을 전하는 날짜와 시간을 보고하도록 하고 노정(路程)을 계산하여 어기는 자는 과죄(科罪)하도록 하였다.
행향별감은 향을 받아 의식을 진행하는 직책이다.
행향사(行香社)는 고유의 업무에 따라 비를 내리게 하는 기우제를 위한 기우 행향사(祈雨行香社), 종묘 의식을 위한 종묘 행향사(宗廟行香社) , 계성전에 있는 계성전 행향사(啓聖殿行香使) 등 장소와 때에 따라 다양하게 있었다.
향실은 궁중의 제례나 의식에 따른 향을 관장하는 기구로서, 향실별감(香室別監)은 주요한 직책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직책을 소홀히 하여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고, 그때마다 중죄로 다스린 것을 보면, 향이 의식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를 추측케 한다.
『왕조실록』「세종」 편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사헌부(司憲府)에서 아뢰기를 '향실별감 문손찬(文孫纘)은 오로지 향합(香盒)을 봉(封)하는 일을 맡았는데, 문소전(文昭殿) 및 혼궁(魂宮)의 향을 빈 합으로 봉하였사오니, 율에 따라 곤장 90대를 치고, 우승지 조극관(趙克寬)도 직책이 향합을 관장하는 것인데도 점검을 행하지 않았사오니, 또한 율에 따라 논죄하기를 청하옵니다. 하니 임금이 손찬 만을 죄주고 극관은 용서하였다
조선 시대의 향은 귀하고 비싼 것으로 취급되었다. 그 예로 향을 훔치는 자도 많았으며, 향으로 극도의 사치를 일삼아 왕명으로 훈계하거나 치죄하였다고 한다. 비싼 침향의 대용으로 자단향을 산기도 하고, 왕후의 승하(昇遐)로 향을 올릴 때 대군들이 서로 다투어 화려하게 하여 극도로 사치하자, 임금이 칙서로 타이르기까지 한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내용보다는 형식을 중히 여겨 사치한 것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마음이 아름다워야지, 구릿한 마음이 향기로운 냄새로 치장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진정 향기로운 자는 스스로 향기를 뿜거늘.
주1) 신흠.『국역 상촌집(象村集)』. 임정기 외 역. 민족문화추진회, 1994-1996.
주2)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