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문향
겐지 모노가타리의 향은 대개 인물과 상응하며 대상 인물의 교양과 성격 내면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스에쓰무하나의 경우에는 이와 같은 상관관계에서 벗어나 있으며
내면화되지 못한 외부의 힘에 의한 향이 갖는 기능의 한계를 보여 주고 있다.
반면 카오루의 태생적인 향은 인물과 상응하는 향의 범주를 초월하여
그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내면을 폭로하는 향으로
후각 표현이 다다를 수 있는 궁극적인 기능과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
- 김병숙, “源氏物語 의 感覺表現硏究”
주1)
일본에서 초기 향 문화는 왕과 귀족 등 상류계급의 전유물이었다.
고대 일본의 향 문화는 향기를 옷에 배게 하는 훈의(薰衣)에서 비롯된다.
옷을 펴서 걸친 다음 그 아래 향을 피워 향기를 배도록 한 뒤에 입는 방식이다.
특히 화려한 귀족문화가 꽃을 피운 10세기 이후 헤이안 왕조는 종교적 의미로 향을 공향(恭香)하는 유행과 함께 훈물(薰物)을 유희의 세계와 접목시켰다.
이것을 '다키모노아와세 '(薫物合せ)라고 하는데 이러한 향 문화는 동아시아 3국 중에서도 일본의 유일하고 독특한 전통이다.주2)
헤이안 귀족들은 공간의 악취를 차단하고 자신의 생활공간의 방향(芳香)을 유지하기 위해 향을 향유하고 있었다. 여기엔 귀족과 서민이라는 신분의 차이에서 오는 대비적 특이성과도 연결된다.
헤이안 귀족은 향을 피워 실내공간을 좋은 향으로 가득 채우고 훌륭한 향이 배인 의복을 착용해 주위의 악취를 차단함으로써 귀족만의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주3)
향은 때로는 맡지 않고 듣는다(聞香)라고 한다.
향이 일본에 소개된 것은 6세기경 백제로부터 불교와 함께 전래되면서부터이다.
초기에는 종교적 의미로 사용되어, 향이 불전을 정화시키는 작용이 있음을 알게 된다.
특히 불공을 드릴 때에 사용하는 향을 공향(供香)이라 하며, 여기에 자극받은 나라 시대 후기의 귀족들은 향을 자신의 저택에 피워 즐기는 습관을 만들었다. 이 경우에 피운 것을 공훈(空薰)이라 했다.
공향의 경우는 대상이 부처지만, 공훈의 경우는 대상이 인간이고, 자기 자신인 점이 큰 차이였다.
이것은 곧 공향은 종교적이고 의식적인 데에 비해, 공훈은 실생활용으로 개성적이고 의식적 행위를 동반하지 않으며, 방 한구석에 살짝 피워 놓으면 그것으로 충분하였다.
또한 공훈물이 활발히 사용됨으로써 단순히 향목을 태우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향목을 비롯해 여러 가지 물질을 섞어서 조제해 낸 일종의 새로운 조향 향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는 중국에서 도입된 향과 향 제조 기법 그리고 일찍부터 동남아와의 무역으로 얻어낸 다양한 향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귀족 문화가 꽃을 피운 10세기 이후 헤이안(平安) 시대에는 공훈의 유행과 함께 훈물(薰物)을 유희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것이 행해졌다. 그것이 훈물합주4)이다.
다시 말하면 향을 놀이 문화로 계승, 발전시켰음을 의미한다. 이 놀이 문화는 한 중 일 삼국에서 유일한 일본의 향 문화인데, 헤이안 시대의 궁정을 그린 고전 소설인 무라사키 시키부의 『겐지 모노가타리(原氏物語)』주5)를 살펴보면 상세히 알 수 있다.주6)
입궐하는 날이 되자, 주작원은 수많은 선물들을 보내왔다. 의복이나 빗의 상자, 그에 따르는 세간, 향을 담는 항아리를 넣은 상자 등 어느 것이나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또 여러 가지 종류의 훈물도 일찍이 유례가 없을 정도로, 백 보 밖에서도 향기가 나도록 공을 들여 조제했다.주7)
......
본처는 향로(의복에 향기가 배어들게 하는 향로)를 가까이 끌어당겨서 수흑 대장의 옷에 향을 쬐었다.‥수흑 대장은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작은 향로를 소매 속에 넣어 향을 쪼였다.주8)
......
정월 그믐께 한가한 시기에, 겐지는 훈물을 조제하였다. 대재대이가 헌상한 향목들을 보니, 아무래도 옛날보다 질이 떨어지는 것 같아, 당에서 온 물건들을 여럿 가져오게 했다. 겐지는 혼자 침전에 가서 승화제(承和帝)의 비법에 따라 두 종류의 훈물을 조제했다. 자의상은 동쪽 대옥에 장막을 치고, 특별히 깊숙한 곳에 설비를 하여, 팔조의 식부경궁에게서 전수받은 조제법으로 겐지와 경쟁하듯 조제했다. 그동안 아주 비밀을 지키고 있었다. '훈물의 향내가 깊고 얕은 차이로도 우열이 판정되겠지요.' 겐지 가 말했다.주9)
......
머리에 꽂은 꽃은 침향이나 자단으로 대를 만들었는데, 같은 금속 제품이라도 훌륭하게 도안하고, 색을 잘 다룬 것이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주10)
......
박래의 백보의 향을 태워놓았다. 하엽(荷葉)의 방법으로 조합한 명향을 꿀과 섞어서 분말을 만들어 향내를 내었는데, 꽃이 향과 어우러져 말할 수 없이 훌륭한 향기가 흐르고 있었다.주11)
일본에서는 華道(화도), 茶道(다도)와 아울러 香道(향도)라는 것이 있는데, 다른 두 가지에 비해서 향도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덜 친숙하다.
향수나 허브(花草類)의 붐으로 '주어지는 향기'에 대한 정보가 증대하는 가운데, 일본인이 옛날부터 독자적으로 지녀온 '스스로의 감성이 찾아낸 향기'를 현대 생활과 문화의 현장에 되살려 보는 시도이기도 하다.
정보량의 비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느 의미에서는 '향기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한다.
시각에 의한 비주얼 문화, 청각에 의한 오디오 문화, 그리고 미각을 즐기는 미식문화가 성행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은 성숙한 문화의 증거로 '향기의 문화'를 찾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헤이안 시대 귀족들이 향기를 사랑한 것도, 향기가 마음을 풍요롭게 해 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풍요로움은 향의 덕이다. 향에 대한 덕론(德論)도, 가마쿠라 시대(13~14세기) 무렵부터 송(宋)의 영향으로 지식 계급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 헤이안 시대와는 다른 해석이 생겨난다.
이러한 해석은 서민들 사이에 전해져서 종장(宗匠 : 향도를 진행하는 자)이 생기자, 그들은 문향의 명덕(聞香明德)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제자를 지도하기 시작했다.
15세기 후반이 되자 훈물합은 향목으로 행해지게 되었는데, 향목이 보통의 물품이면 단순히 향합(香合)이라 하고, 명품인 경우에는 명향합(名香合)이라고 칭했다.
16세기 후반에 접어들자 향의 십덕(十德)이라 하여 열항목에 걸친 향의 효능이 정립되고, 향도제법(香道制法)이 제정되어, 향도는 점차 학예적 영역의 한 분야로 자리 잡게 된다.
17세기는 일본에서 르네상스라고 불릴 만큼 향도의 전성기를 맞아, 지식 계급의 문인들이 나타남으로써 향이 도(道)로서 확립된 것이다. 개인의 이름을 딴 향 가게가 생긴 것도 이때쯤이다.
18세기가 되자, 향합이 행해지지 않고 놀이의 방법이 바뀐다. 주로 조합 형식에 의한 것으로, 두 종류 이상의 향을 사용하여 하나의 주제를 후각으로 표현하려고 한 것이다.주12)
침향은 인도의 동부, 아샘 지방, 베트남, 보르네오, 말레이 반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열대 지역에서 나는 아퀼라리아(Aquilaria)에 속한 식물로, 썩거나 병들어 수지가 흘러나와 향이 된 것을 말한다.
침향은 만들어지는 방법에 따라 상품(上品) 순으로 생결(生結 : 인위적으로 나무를 베어 수지가 생기는 것), 숙결(熟結 : 저절로 썩어서 생기는 것), 탈락(脫落 : 물에 의해 썩어서 생기는 것), 충루(蟲漏 : 병충해에 의해서 생기는 것)로 구분되며, 검고 윤이 나는 각침(角沈), 노랗고 윤이 나는 황침(黃沈), 옆으로 줄무늬가 있는 혁침(革沈)이 모두 상품이다. 일본의 문헌을 보면, 에도(江戶) 시대부터 본격적인 향의 분류가 시작되었으며 , 침향 외에는 향으로 취급하지 않았고, 당시『육국 열향 지변』이라는 책을 편찬하면서 향도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 분류는 종장(宗匠: 향도를 이끌어가는 향 전문가)의 주관적 판단에 많이 좌우되었는데 육국열전에 의한 분류를 상품(上品) 순으로 나열해 보면,
가라(伽羅)주13), 라국(羅國)주14), 진나하(眞那賀)주15), 진남만(眞南蠻)주16), 촌문다라(寸門多羅)주17), 좌회라(左會羅)주18)로 나뉘는데 이 중에서도 주목해 보아야 하는 것이 진나하이다. 말레이 반도 말라카가 원산지인데, 물론 말라카가 재배지역은 아닐 것이고 말레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을 이곳으로 집하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왜 일본에서는 말라카의 침향을 마치 뇨냐의 가슴에 서려있는 눈물처럼‘여지의 한’이라고 비유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주19) 마치 위안부의 눈물을 미리 예정하고 있듯이 말이다. 그것이 일본의 본모습일 것이다.
1) 김병숙(2010), “源氏物語 의 感覺表現硏究”, 한국외대 박사학위논문, 223.
2) 김영(2015), “향(香)과 헤이안 왕조(平安王朝)”, 日本文化學報 第66輯, 109.
3) 김영, 앞의 책 110-111.
4) 薰物合(다키모노아와세): 훈물을 서로 내놓으면서 노는 놀이.
5) 여류작가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978∼1016]가 지은 것으로 황자(皇子)이면서 수려한 용모와 재능을 겸비한 주인공 히카루 겐지[光源氏]의 일생과 그를 둘러싼 일족들의 생애를 서술한 54권의 대작이다.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 .
6) 송인갑, "후각을 열다", 220-221.
7) 무라사키, 시키부.『겐지 이야기(源氏物語)』. 전용신 역. 나남 출판사, 1999.「회합(繪合)」편.
8) 앞의 책.「진목 주(眞木主」 편.
9) 앞의 책.「매지(梅枝)」편.
10) 앞의 책.「봄나물」 편.
11) 앞의 책, 「청귀 뚜라미」 편.
12) 송인갑, 앞의 책 223-224.
13) 인도어로 방향이란 뜻을 가졌으며, 그 모양이 우아하고 쓴맛을 내는 것을 상품으로 친다. 자연스럽고 우아한 아름다움이 있어 궁인(宮人)에 해당하며, 유일하게 오미가 풍부하다
14) 샴 왕국의 일부인 나국을 말한다. 자연스러운 향과 백 단의 맛이 있어 주로 쓴 향을 말하며, 무사(武士)와 같다.
15) 말레이 반도의 말라카항. 가볍고 향기가 빨리 옅어지는 것을 상품으로 치며 , 향기가 삐뚤어진 데가 있어 비유하자면 여자의 한과 같다.
16) 인도 동쪽 해안 지역인 말라바르(Malabar). 단맛이 많고 수지가 풍부하다. 백성에 해당한다.
17) 남태평양 수마트라 섬을 말한다. 신맛이 많고 가려와 비슷하다. 품격은 지하인(地下人)에 해당된다
18) 남태평양의 소로 또는 인도 서부(서인도제도)의 삿소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차갑고 신맛이 많으며 , 진향이 풍부해, 그 품격은 스님에 해당한다.
19) 송인갑, 앞의 책, 253-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