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이란 무엇인가
AI기술로 인해 산업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과연 컴퓨터는 못하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게 뭘까? 대체로 우리는 컴퓨터는 못하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복합적인 여러 분야의 지식을 하나로 통합하는 융합이라고 본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에 따라 문이과 통합, 융합형 인재를 육성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이고자 한다.
프랑스의 르 피카로 기사에 따르면 지적재산권, 개인정보보호, 달의 영토권 주장에 대한 문제까지 여러 테마가 혼재되어 있는 법학시험에서 ChatGPT는 15초 미만의 고민 후 20점 만점에 11.75점을 받았다고 한다. 이 질문들은 인터넷에서 빨리 찾기 어렵고,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꽤 생각을 요구하는 문제들로 선별되었다. 그러나 AI는 이런 융합을 통해 의견을 내는 문제에서도 굉장히 빨리 대답한다. 또, 하버드 로스쿨 기관지의 기사에 따르면 법률가 일은 언어적 업무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언어 모델인 GPT로 대체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분야 중 하나가 법조계일 것으로 분석된다. 앤드류 펄먼의 연구 <The Implications of ChatGPT for Legal Services and Society>에서는 AI에게 법윤리학에 대해 15개의 어려운 객관식 문제를 냈더니 Bing Chat(GPT-4 model)이 그중 12개의 문제를 맞혔다고 한다. 간단히 말하면 AI는 B/B+학점을 받는 법대생과 비슷한 수준으로 일을 할 수 있고, 앞으로는 더 좋아질 것이다.
또는 생성 AI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질문을 하는 능력’이라고 입을 모으는 전문가들도 많다. 그러나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아 ‘좋은 질문을 하는 것’조차 AI의 범주로 들어오게 되었다. 영화 아이언맨의 인공지능 비서 자비스를 연상시키는, Auto-GPT가 등장한 것이다. Auto-GPT는 프롬프트를 작성하고, 피드백하고, 다시 심층질문을 하는 등의 인간의 개입이 없어도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이를 강 인공지능이라고도 부른다. 우리가 지금까지 봐왔던 ChatGPT와 같은 인공지능은 주어진 일을 완수하도록 만든 약 인공지능의 단계의 머물러 있으나, Auto-GPT는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히는 범용인공지능, 즉 강 인공지능의 초기 단계라는 평가를 받으며 IT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아직 기존의 방식을 벗어난 창의적인 업무 수행은 할 수 없지만, 업무를 반복하며 사용자가 제시한 목표로 가는 길을 찾아낸다.
깃허브(개발자들이 코드를 공유하는 플랫폼)에 게시된 개발진의 설명에 따르면 Auto-GPT는 GPT-4 model을 활용해 인터넷에 접근하고, 텍스트를 생성하고, 파일을 저장하거나 요약하여 최종 목표를 위한 보조 업무를 찾아 반복, 검토하여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다. 예를 들어 ChatGPT를 활용해서 앱을 만든다면, 사용자가 직접 어떤 코드가 필요할지 하나하나 질문하고 지시해 단계별로 일을 시켜야 했다. 그러나 Auto-GPT는 코드 구현을 통해 목적 달성에 필요한 업무를 스스로 찾아 판단하고 완성본을 내놓는다. Varun Mayya라는 개발자는 그의 SNS에서 “Auto-GPT에게 앱을 만들라고 지시했더니 내 컴퓨터에 없는 필요한 프로그램을 구글링 해 찾아내 설치한 뒤 앱을 개발하더라”며 “나는 그저 보기만 했다”라고 감탄했다.
내가 해왔던 분야인 코딩은 인공지능에게 상당 부분 대체될 수 있다. 그러나 프로그래머는 코드를 짜는 사람이 아니다.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이다. 때문의 프로그램의 핵심은 능력은 설계와 분석이지, 코드를 짜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뭔지, 목적이 뭔지 명확히 알지 못한 채로 그저 코드싸개에 불과한 일을 해왔다면, 그렇게 자신의 위치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면 대체되는 게 당연한 결과다. AI는 당신을 대체하지 않는다. 결국 AI를 사용하는 사람이 당신을 대체하게 된다.
우리는 진보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이제까지 존재했던 한계를 뛰어넘는 과정과 그에 대한 여파를 모두 포함하여 산업 혁명이라고 일컫는다. 18세기 증기기관 기반의 기계화 혁명에 따라 1차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19세기 이후 2차 산업혁명에서 전기 에너지 기반의 대량생산의 혁명이 일어나면서, 20세기 후반 3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컴퓨터와 인터넷 기반의 지식정보 혁명이 일어나면서 인간은 인간이 가진 생산성의 한계를 여러 번 뛰어넘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인간은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태동하며 그 여파가 우리의 삶에 깊숙이 물결칠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암기 교육은 어느 정도 컴퓨터로 대체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3차 산업혁명 이후, 사회는 컴퓨터의 연산능력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논리력 위주로 인재를 평가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리포트나 논문을 제출하는 방식으로 대학과 기업은 변했다. 그러나 이제 시작되는 4차 산업혁명, 그 포문을 열어젖힌 언어 모델 AI는 이것을 인간보다 더 빨리, 더 잘할 수 있다. 지금 AI가 가지고 올 변화는 단지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믿었던 분야가 사라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대학과 기업 인재 선별 기준을 포함하여 누가 그 직업을 갖게 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판단 근거가 완전히 뒤바뀌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능력을 함양해야 마땅한가? 인공지능의 목적은 결국 부가적인 요소를 제거해서 본질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다. 결정의 방향키를 잡고, 사고의 과정을 내가 주도하기 위해 AI를 사용한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부수적인 일을 생산적이고 더 효율적으로, 더 빠르게 하기 위해 여러 기술과 툴로서 AI를 이용한다. 우리는 스스로의 사고 구조를 파악해 취약점을 보완하고 보다 합리적인 결론으로 인도하는 자기 수련의 과정으로 인공지능이라는 툴을 활용할 수 있다.
이때, 가장 중요한 자질은 역시 기획력이다. 기획력이란 무엇인가? 자신만의 명확한 가치 판단의 기준을 근거로 하여 무슨 일을 어디까지 할지, 어떤 걸 만들어야 할지 정하는 능력이다. 기술과 그것을 사용할 사람들, 거기에 영향받을 사람에 대한 이해를 근간으로 하는 기획력을 가지고 무엇을 가져가고 버릴지, 혹은 어떻게 조정할 지에 대한 기획으로 가치를 창출해 내는 것이다.
최신 뇌과학 연구들에 따르면, 내가 사용하는 도구만큼 이 나의 능력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우리의 뇌는 2만 년 전 구석기시대에 살았던 인간의 뇌와 근본적으로 거의 같다. 다만 사용하는 도구에 따라 뇌의 전반적인 능력치가 달라지는 것이다. 도구를 다루는 만큼 나의 시야와 뇌 활용 범위가 업데이트되기 때문이다. 현미경이 발명되면서 생물학과 미생물학의 영역이, 망원경이 발명되면서 천문학의 영역이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다. 내 시력의 한계까지만 세상을 관측했을 때와 비교해서 내 시력의 한계를 넘어 훨씬 멀리 있는 것까지 볼 수 있을 때, 우리가 다룰 수 있는 생각의 넓이와 깨달을 수 있는 깊이가 어마어마하게 변화하였다.
1500년 대의 유럽을 예로 들어보자. 그때까지만 해도 귀족들 중에 글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당시에 글을 쓰는 것은 사제들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글과 생활이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글이라는 것이 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됨에 따라 사제도 귀족도 아닌 우리 동네 할머니도 글을 읽고 쓰게 되었다. 우리 뇌 안에 원래부터 글을 읽고 쓸 수 아는 특정 영역이나 뉴런들은 없다. 글을 쓰기 위해 연습하고, 교육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며 뇌의 특정 영역이 글을 쓰기 위해 발달한다.
도구로서 AI를 쓰는 것도 마찬 가지이다. 우리는 AI와 효율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여러 툴과 도구를 사용하는 과정 중에 뇌 안의 자원들을 재활용한다. 내가 살면서 어떤 도구를 통해 어떤 능력을 발휘하는 가에 따라 뇌를 활용하는 데 있어 필요한 자원을 배분하고 그 배분된 자원에 따라 우리의 능력치는 업그레이드된다. 뇌과학자들이 말하는 뇌 가소성이 이와 비슷한 개념이다. 뇌 가소성은 뇌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신경세포의 능력으로, 인간의 잠재력과 적응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개념이다. 우리가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새로운 생각을 할 때마다, 머릿속에 있는 신경이 새롭게 연결되고 강화되며, 물리적 구조도 새롭게 짜인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뇌 가소성에 의해 변화를 거친다. GPT가 매년 새 버전을 발표하듯 당신고 매일 새 버전의 뇌를 출시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단, 계속해서 지능을 사용하여 일을 하고 매일 학습한다면 말이다. 여기서 한 가지 묻고 싶다. 당신은 지능을 사용하고 있는가? 일을 하면서 상황을 예측하고, 이해하고, 실수를 통해 배우고, 미래를 예측하며, 자유롭게 감정을 느끼고 올바른 방법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그게 아니라면 그저 쌓아온 데이터를 확률분포와 선형대수, 미분을 통해 손실 함수의 최솟값을 구하는 계산과정에서 선택되어 도출해 낸 계산 결과를 얘기할 뿐인, 지능을 흉내 내는 저 기계와 비교해서 나은 점이 무엇인가?
조회수 150만 회 이상의 ChatGPT 설명 영상에서, 카이스트 김대식 교수는 ‘ChatGPT와 대화하며 가장 충격받은 사건’에 대해 언급한다. 그는 ChatGPT와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던 중, ChatGPT에게 “인간은 진화적 과정을 거쳤고 그렇기에 니즈와 욕망이 있지만”이라고 언급하며 기계는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원하는 것이 없지 않냐고 질문하려 했으나 실수로 여기서 엔터를 눌러버렸다. 그러나 돌아온 ChatGPT의 답변에 김대식 교수는 깜짝 놀랐. 김대식 교수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ChatGPT가 100% 동일하게 하여 끝맺어 준 것에 그치지 않고, 그에 대한 꽤 논리적인 답변까지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그걸 본 김대식 교수는 ‘과연 나 스스로는 자유의지로 생각하고 있는 걸까?’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과연 우리는 자유의지가 있을까? 결국 우리 인간이 하는 언어와 사고도 인공지능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이 내가 지금까지 듣거나 읽었던, 학습했던, 자극받았던 모든 정보들의 확률 분포를 재정립하여 그 순서대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식을 습득하고 그를 통해 깨닫는 우리의 ‘앎의 증거’가 결국 연관된 여러 가지의 이미지와 키워드를 연상하여 조합한 것이라고 한다면 과연 앞으로 등장할 인공지능과 사람은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그리고 그 인공지능에게 감각 센서로 실물을 경험하여 냄새를 맡게 하고, 눈으로 보게 하고 귀로 듣게 한다면, 그 모든 감각까지 구현한다면, 우리는 그보다 얼마나 더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은 무의식을 포함에 하루 평균 6만 번의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 중 95%는 지금까지와 똑같이 무의미한 공상과 잡념을 되풀이할 뿐이다. 세상은 엄청난 속도를 내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데, 어디론가 나아가고 있다고 느끼며 생각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그중 몇이나 될까? 앞서 언급한, AI는 못하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인 기획력, 가치 판단 능력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자신만의 청사진이 명확히 그려져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뿐이다. 사색하고 새로운 것을 배워 대뇌의 신피질을 매일 자극하는, ‘생각‘하는 삶으로 말이다.
일생에 한 번은 내가 참된 것으로 인식했던 모든 것을 완벽하게 뒤집어엎어야 한다. 그리고 처음부터 새롭게 토대를 쌓아햐 한다. 나는 앞으로 오직 진리만 탐구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털끝만큼이라도 의심의 여지가 있는 것은 전적으로 거짓된 것으로 규정하고, 용납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 속에서 ‘절대로 의심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내 안에 존재하는가를 확인해보아야 한다. _데카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