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탈과 복통의 상관관계
그룹장과의 퇴사 면담을 마치고 나니 '9부 능선'을 넘은 것 같은, '이제 거의 다 됐다.'싶은 마음이 들었다. 물론 만나야 할 사람들과 절차들은 더 남아 있었지만, 그만큼 그룹장과의 면담이 내겐 큰 산과도 같은 것이었다. 부서와 인연을 맺을 당시 만났던 사람이 인연을 끊을 때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줄은 전혀 몰랐다. '잘 아는'사람과 어떠한 인연을 끊는 것에 대해 상의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편하진 않을 것이다.
편치만은 않았던 그룹장과의 면담 후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들은 다음과 같다.
1. 팀 내 ER 과의 면담
2. 팀 내 서무와의 서류 작업(퇴사 면담 기록, 퇴직금 정산)
3. 인사과 면담
4. 1,2,3차 결재
5. 결재 완료 후 인사과 서류 제출
6. PC 반납
이렇게 총 6단계가 더 남아 있었다. 거의 다 됐다 싶었었는데, 그렇지만도 않았다. 생각보다 퇴사는 넘어야 할 산이 많은 작업이었다.
팀 내 ER(Employee Resource)은 부서원들의 건의사항이나 애로사항들을 듣고 반영하는 등의 업무를 하는, 일종의 상담창구와 같은 역할이었다. 면담, 부서 이동, 신입사원 배치 등에 많은 관여를 하였고, 퇴사 과정에도 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었다.(다른 역할을 더 갖고 있을지는 모르나, 내가 알고 있는 건 여기까지다.)
팀 내 ER과 면담 시간을 잡은 후 시간 맞춰 그를 찾아갔다. 가자마자 내게 한 말은, '얘기는 그룹장님께 들었다.'라는 것이었다. 별일 아니라는 듯한 표정을 한 그는
"어차피 그룹장선에서 OK 된 거면, 그 이후 과정은 그냥 형식적인 거라고 보면 돼요. 대신에 결재를 그룹장부터 다시 받고, 저랑 팀장한테도 받아야 하는데, 면담이랑 결재 절차를 나눠놓은 건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라는 그런 의미예요."
라고 말했다. 회사 입장에서 직원이 줄어든다는 것은 지출 항목 중에 하나인 인건비가 줄어드는, 비용절감의 효과가 있으나, 여태 키워 온 일꾼이 줄어든다는, 손해의 의미도 있다. 그리고 거기엔 새로운 사람을 받아 육성하는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기에, 인력 유출 방지를 위해서 퇴사 절차를 고의적으로 복잡하게 만들어놓은 것 같았다.
ER 과의 면담은 면담이라기보다는 '절차 안내'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모든 건 그룹장의 의견을 따른다는 자세를 취했고, 내가 이후에 거쳐야 할 관문들(위에 나열한 2~6번 절차)을 설명해 주었다. 한두 번 하는 일이 아니니 그에겐 이미 무뎌질 대로 무뎌진 일 일수도 있다. 내 퇴사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부서 동료들과는 확연히 다른, 감정적이기보다는 사무적인 모습이었다.
다음날, 난 본격적으로 절차들을 밟기 위해 팀 내 서무부터 찾았다. 필요한 서류, 퇴직금 정산, 인사과 면담 등을 안내받았고, 안내에 따라 움직였다. 그때 이미 난 부서 업무와는 멀어져 있었다. 아침에 미팅을 하고 나면 나에게 할당되는 업무도 별로 없었고, 어렵지 않은 어떤 일 하나 끝내게 되면 그날 하루가 다 간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그리고 나의 메인 업무인 퇴사 절차를 밟는 데 주력했다.
우선 면담 기록부를 들고 인사과에 찾아갔다. 인사 담당자는 별 표정 없이 나를 맞이했고 퇴사 이유에 대해 물었다. 담당자가 나와 비슷한 또래여서 그런지 뭔가 부러움 섞인 말투로 물어본다고 생각했으나, 동종업계로의 이직, 영업 비밀 누설 등에 대해서 설명하기 전에 의례 적으로 하는 멘트였을 뿐이었다. 경쟁사로의 이직으로 인한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일종의 교육 같은 것이었다. 나는 간부들에게 이야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의류사업을 하러 간다고 말하자 '동대문 쪽으로 가느냐?', '그쪽 사업이 호황이라서 가는 거냐?' 등의 질문을 했다. 그리고 부서에서 힘들었던 점이 있었냐는 질문 또한 했는데, 그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힘들었던 걸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일이 또 커질 것 같아 별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 자리에서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퇴사 후 영업비밀을 꼭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서류를 받아 왔는데, 퇴사를 승인하는 결재 서류였다.
총 3명의 결재가 필요했던 나는 그들이 자리에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메신저를 통해 로그인 여부를 확인하고, 로그인이 안 되어 있을 경우 자리에 한 번씩 찾아가 보는 등의 '하나도 어렵지 않은' 행동들을 반복했다. 오히려 견디기 어려웠던 건 별로 하는 것 없이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나마 옆자리의 책임이 주는 수율 확인 등의 업무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잘못 처리한다 하여도 사고로 이어지는 일이 아닌, 그래프 한번 그려보는 그런 업무들이었기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됐고, 이 또한 퇴사하는 나에 대한 배려 섞인 업무 할당이라 느껴졌다. 그렇게 사무실에 앉아 한가하게 있다 보니 문득 '아... 이렇게 있어보니 회사가 또 편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세한 수준의 조건 변경, 클릭 한 번으로 이뤄지는 전산 처리, 매 교대 때마다 이뤄지는 불량 확인 등, 그렇게 크지 않아 보이는 업무들이 대형 불량 사고로 이어진다는 데에 큰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을 해왔었고, 그 스트레스들은 알게 모르게 나의 행동 양식과 생각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퇴근 후 기숙사로 가면서, 혹은 잠자기 전에 갑자기 '아... 제대로 한 거 맞나?'하는 생각이 들어 다음 근무자에게 전화를 걸어 재차 확인을 시키는 경우가 많았고, 퇴근하기 위해 사무실을 나간 후 출구로 가지 않고 라인으로 들어가 내가 손댄 설비들을 다시 한번 보고 나오는 등의 '안심을 위한 확인'을 종종하곤 했다.
아침에 출근을 하면서도 '뭐 사고 난 거 없겠지?'라는 걱정이 늘 앞섰다. 그런데 이보다 스트레스가 더 큰 경우는 아무런 걱정 없이 출근을 한 날 '어제 그거 어떻게 해놓고 간 거야?'라는 말과 함께 사고 소식을 접하게 되는 경우였다. 그 사고의 주인공이 나일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생기게 된 버릇 중에 하나가 늘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출근하는 것이었다. '오늘은 아침에 가자마자 털리는 거 아냐?', '어제 조건 변경해 놓은 거 이미 사고 보고 다 되어있는 거 아닌가?'라는 식의 생각들을 미리 머릿속에 넣어놓고, 야간 근무자들에게 '별일 없어?'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별거 없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편안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최악의 상황을 상상한 후, 보통 정도 되는 상황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는, 부정적이고 방어적인 마인드가 어느새 내 머리에 탑재되어 있었다. 그리고 만약에 사고가 터져 있을 경우, 적어도 그 주인공이 나는 아니길 바라는, 그런 생각들이 나의 매일 아침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복통을 늘 달고 살았던 것 같다. 워낙에 장의 기능이 약한 것도 있었지만 회사생활의 마지막 1~2년 정도는 변의 80%가 설사인 것처럼 느껴졌다(정확한 수치는 아니다.). 그래서 대장 내시경을 추가로 해봐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을 갖기도 했었다.
하지만 퇴사 준비가 나의 메인 업무였던 말년 시절, 복통이 사라진 아침을 맞이했던 걸로 보아 그동안의 통증은 그저 '신경성' 복통이었다는 걸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을 불변의 진리처럼 여기게 됐던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