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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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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lee Sep 13. 2016

퇴사 일기 16. 아무도 모르게

왜 그랬는지 잘은 모르겠으나...

퇴사 결재 절차를 모두 마친 다음날 소지품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회사로부터 보급받은 PC를 반납하는 게 가장 첫 번째였고, 서랍장에 들어있던 소지품들을 정리하는 게 두 번째였다.

PC 반납은 면담이나 결재와 마찬가지로 사전에 관련 부서와 반납 시간을 조율한 뒤 그 시간에 맞춰 가야 했다. 오후에 반납하기로 약속을 잡고 그전까진 또 다른 것들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동기를 만나 커피를 한잔 마시면서, 혹은 메신저로 한 명 한 명 말을 걸어 퇴사 사실을 알리며 시간을 보냈다. 모두들 놀라는 눈치였고 '큰 결심 했네', '멋있네' 등의 이야기들을 해 주었다.

점심을 먹고 오후부터는 서서히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선 PC를 차례차례 정리했다. 전선들을 다 뽑고 대차에 차곡차곡 쌓아놓았다.  PC가 사라지자 내 자리는 휑 해졌지만, 자리 곳곳은 먼지로 가득했다. 평소에 내 자리와 주변을 나름 닦긴 했던 것 같은데, PC를 치워놓고 나니 또 다른 모습이었다.

대차에 가득 실은 PC를 반납하러 사무실 밖을 나섰다. 반납하는 곳은 PC 및 노트북으로 가득한 사무실이었다. 아니, 사무실보단 창고에 가까웠으며 구석 한편의 일부분만이 사무실스러운 분위기를 냈다. 사무실스러운 부분에 있던 직원이 장부를 주며 성명, 부서, PC 일련번호 등을 직접 적으라고 했으며, 시킨 대로 장부의 빈칸들을 하나씩 채워나갔다. 사유를 적는 칸이 있었는데, '퇴사'라는 두 글자를 쓰며 다른 사람들은 어떤 사유였는지 한번 훑어보게 됐다. 나와 같은 사유인 사람들을 찾게 되면 반갑기라도 했을까? 어딜 가든 나와 공통점이 있는 사람을 찾는 건 일종의 본능인 것 같다.

반납을 모두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서랍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교육 혹은 미팅 시간에 쓰던 노트들이 서랍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신입 교육 시절 필기했던 노트부터 부서의 지도선배가 그림 하나하나 그려주며 기초적인 것들을 교육해주던 노트, 미팅 때마다 적은 그날그날의 이슈와 라인에서 평가하며 적어 내려 갔던 데이터들이 가득했던 노트 등, 내 회사 생활의 기록들로 가득한 몇 권씩 되는 노트들을 보니 '그래도 꽤 다니긴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나간다면 아무짝에 쓸모없는 것들이고 보안상 회사 밖으로 가져갈 수도 없는 물건들이었지만, 내 흔적들이 사라져 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참 이상했다.

노트 이외의 물품들 - 노트 받침 혹은 펜, 쓰지 않은 수첩 등등- 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 줄 수 있는 것들이었다. 동기 혹은 후배에게 '야 너 이거 쓸래?'하며 호의 섞인 말투로 다가갔다. 그럴 때마다 '아 이제 진짜 가는구만.', '아 잘 쓰겠습니다.' 등의 말을 들었다. 하나씩 나눠주다 보니 군 제대할 때 대대로 내려오던 깔깔이 바지를 후임에게 주고 나오던 생각이 났다.

앞으로 내가 쓸 물건들 또한 하나씩 챙겨놨다. 다 쓰지 않은 치약, 사무실에서 신던 슬리퍼 등등의 물건을 쇼핑백에 담았고, 빈 서랍장에 열쇠를 꽂아놓고 나니 정리가 마무리되었다. 이로써 퇴사에 필요한 모든 절차들은 끝이 났고, 나의 마지막 출근도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정식 퇴사 일은 3월 15일이지만 남은 연차를 사용하여 3월은 출근을 안 하는 걸로 계획을 했기 때문에 2월의 마지막 날이었던 이날이 나의 마지막 출근이었다.

회사를 나와 서울 집으로 가기 위해 퇴근 버스를 탔다. 주말은 서울에서 보내고 월요일에 다시 내려와 기숙사에서 퇴사 예정일까지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뭐 하러 기숙사에 다시 오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지만, 혼자 있기엔 기숙사에 있는 게 최고였고, 기숙사에서 시간 보내며 간간이 사람들을 만날 계획이었다.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 안에서 사람들한테 퇴사 인사를 어떻게 할지 생각했다. 직접 만날 사람들을 선별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메일을 보낼 생각이었다. 메일 보낼 생각을 하다 보니 단체 메일 하나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 끝에 보낼 메일의 개수는 총 5개였다. 부서원, 동기들, 그룹장, 나와 알지만 별 교류가 없거나 잠시 업무로 인해 스친 인연들, 얼굴은 모르지만 메신저 상으로 5년 넘게 함께 일하던 제조부서의 여사원들.

수신자별로 보낼 메일의 내용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부서원들에겐 그동안 도와줘서 감사하다는 내용을 주로 쓰기로 했다.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고 나로 인해 잘못된 일을 수습해주던 사람들도 많았기에 감사의 인사가 가장 앞서야 된다고 생각했다. 동기들에겐 처음 만나던 순간의 시간과 장소를 우선 묘사하며 추억 위주로 쓰기로 했다. 그룹장에겐 마지막에 나에게 했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던 미안함과 존경의 마음을 표현하기로 했고, 나와 스쳐간 인연들에겐 그냥 소식을 알리는 정도로만 적기로 했다.

제조부서의 여사원들에게 메일을 보내는 건 조금 다르게 느껴졌었다. 6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얼굴 하나 모르는 상태로 메신저로만 일했던 이들에게 업무 외적인 내용의 메일을 보낸다는 사실 자체가 특이했다. '굳이'보내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메신저상으로만 친한 사이라도 인사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사원들에게 보낼 메일의 내용을 생각하다 보니 시간이 흐르며 나도 많이 변해왔다는 게 느껴졌다. 입사 초기에 내가 4년제를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더 먼저 입사한 여사원들이 나에게 해주던 선배 대우가 참 어색하곤 했다. 고졸, 초대졸, 대졸 등 여러 출신 성분이 모인 제조는 호칭의 정리가 필요한 곳이었다. 회사에 먼저 왔다 하더라도 출신에 따른 급의 차이 때문에 서먹한 경우가 매우 많았다. 오랜 군 생활을 한 50대 나이의 원사가 학군단을 마치고 온 20대 중반의 소위에게 경례를 해야 하는 그런 경우라고나 할까.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내게 선배, 선배 하며 날아오는 메신저들은 정말 민망하고 미안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니 '선배'라는 호칭을 하지 않는 여사원에겐 '어 얜 뭐지?'라는 반응을 보이는 내가 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입사 연도가 언제인지 확인하기 위해 사번을 찾아보고 있었고, 그들이 요청하는 일들은 괜히 해주기 싫었다. '나도 회사 밥 좀 먹었다.', '나이는 분명 내가 너보다 더 많다.'라는 마음들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변해버린 마음들 또한 퇴사를 앞두게 되니 한심하게 느껴졌고, 그런 마음을 품은 것 자체가 미안하게 느껴졌다. 이런 내용들을 메일에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퇴사 인사 메일의 내용들을 계속 생각하다 보니 어느 순간 울컥하게 되었다. 그 울컥하는 마음이 정확히 어느 시점에, 어떤 생각을 하며 들었던 것인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이상하게 나의 눈가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서울로 향하는 퇴근 버스는 2월의 오후 6시가 넘은 시각이라 이미 어둠 속을 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내 눈가의 눈물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내 옆자리는 비어있었다. 내가 울어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상황이 되니 마음 놓고 눈물을 흘릴 수가 있었다. 회사를 떠나는 게 슬퍼서? 회사를 떠나 또 다른 사회로 나간다는 것이 무서워서? 사람들과 헤어지는 게 슬퍼서? 어떤 감정이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쫓겨나는 것도 아니고 내 선택으로 회사를 박차고 나가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눈물이 계속 났다. 소리 내며 서럽게 울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참지 않았던 나는, 눈물이 차츰 줄어들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내 퇴사 회식은 안 해야겠다.' 남들 앞에서 눈물 참을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버스가 서울에 도착하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하철을 타기 위해 강남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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