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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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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lee Sep 13. 2016

퇴사 일기 17. 퇴사의 조건

결국 나 혼자 한 건 아니었구나.

마지막 출근을 했던 날, 제조 부서의 한 여사원 친구와 커피를 한잔하게 되었다. 원래 메신저상으로만 함께 일을 하는 제조 부서의 여사원들과 말을 놓는 편은 아니었으나, 그녀는 내가 유일하게 말을 놓고 지내는 친구였다. 그녀에게만 말을 놨던 이유는 그녀가 먼저 나에게 별명 붙이고 말을 놓았기 때문. 그렇게 나오니 나도 계속 존대할 수 없어 말을 놓기 시작했다. 제조의 다른 친구들과 말을 놓지 않았던 이유는 한번 말을 놓고 편하게 대하기 시작하면 편한 걸 넘어 '막' 대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앞서 말했듯이 먼저 말을 놓고 별명을 만들어 줄 정도로 명랑한 친구였다. 대인관계도 좋아서 회사 안을 같이 걷다 보면 아는 사람이 너무 많아 인사하기에 바빴고, 멀리 있어도 유독 잘 보이고, 잘 들리는 존재감 강한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굳이 시간 내서 보자고 하니 나로서는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회사 내의 카페에서 음료 한 잔씩을 사들고 자리에 앉았다. 내가 그녀에게 받은 질문들은 그동안 수없이 받았던 것들이었다. '왜?', '언제부터?', '뭐할 거야?' 등등. 그리고 '부럽다.'라는 흔한 반응 또한 질문들 뒤에 이어졌다. 그 반응에 난 이렇게 대답했다.

"원래 다 마음은 똑같은 거 아니겠냐. 다 회사 그만두고 싶지 뭐. 다만 내가 이렇게 그만둘 수 있는 건, 처자식 없고, 갚을 빚 없고, 부모님이 아직 경제활동을 하시고, 집에 아픈 사람 없고... 뭐 이런 상황이니 가능한 거지. 다들 이 중에 한 가지라도 걸리니까 퇴사 못하는 거지 뭐."

이렇게 퇴사 가능 조건을 하나씩 나열하던 나의 말을 듣던 그녀는 '집에 아픈 사람 없고' 이 대목에 유독 반응을 보였다. 아버지 수술 때문에 거액의 비용을 부담했던 일이 얼마 전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동생 3명의 학비도 조금씩 보탠다고 했다. 마냥 천방지축처럼 가벼워 보였던 친구가 한 가정의 기둥 같은 묵직한 느낌을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련 없이 회사를 떠나는 나의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주진 않았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집안 이야기를 하며 조금은 어두워진, 아니 어둡다기보단 평소보다 가라앉은 느낌으로 대화가 오가다 자연스레 주제가 바뀌었는데, 바로 그녀의 업무에 관한 것이었다.

그녀는 원래 제조 부서의 일선에서 활동하던 친구였다. 여기서 일선이라 함은, 실시간으로 생산의 흐름을 조절하거나 생산 방해 요소 등을 발굴하여 원활한 생산이 유지되도록 하는 업무였다. 이외에도 하는 일이 더 많았겠지만 내가 했던 업무가 아니라 더 자세히는 모르겠다. 아무튼, 생산라인의 일부분이 잘 흘러갈 수 있도록 하는 업무였다. 이 부분의 업무가 막히기 시작하면 전체 생산량에 막대한 손실이 오기에 일선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듯하다.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회사로 온 그녀는 이 업무를 7년 가까이한 후 다른 업무를 하게 되었다. 바로 ER 업무였다. 부서원들의 고충처리, 간담회 운영, 업무 환경 개선 등의 업무를 하는 자리였다. 워낙에 대인관계가 좋아 적성에 딱 맞는 자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새로운 업무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의 목소리 톤은 한층 더 다운되는 느낌이었다.

"몰라도 되는 걸 너무 많이 알아버렸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한창 인원 감축을 해야 했던 회사의 상황, 여기에서 그녀는 알고 싶지 않은 사실들을 알아버린 것이다. 회사의 정책들은 뭔가 새로운 지향점을 찾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다른 이유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2014년 정부에서 담뱃값 인상을 할 때 내걸었던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표면적인 이유에 숨겨진, '세수 확보'라는 다른 속내가 있었던 것처럼, 회사의 많은 정책들 또한 '숨겨진 이유'들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알아버린 것도 모자라 시행하거나 설명해줘야 하는 위치였다. 때때로 이에 대해 따지고 드는 사원들의 이야기도 그냥 듣고만 있어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난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계속 회사를 다녀야 했다. 퇴사를 할 수 있는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많은 회사원들이 고통 속에서 억지로, 좀비처럼('부산행'의 좀비들처럼 빠르진 않은) 회사를 계속 다니고 있다. 바로 내가 별생각 없이 뱉어낸 저 4가지의 퇴사 가능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회사 입사 연수를 받던 시절, 부모님께 편지를 쓰는 시간이 있었다. 단순히 '자 지금부터 부모님께 편지 쓰세요~'로 시작된 시간이 아니었고, 생일자들에게 깜짝 생일파티를 해주며 틀어 준 생일자 가족들의 영상편지로부터 시작된 시간이었다. 입사한 지 며칠 안된 시점에 한창 연수에서 고생하다 갑작스레 가족들의 생일, 입사 축하 영상을 받게 된 당사자들은 하나둘씩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잔잔한 배경음악과 함께 편지 쓰는 시간으로 자연스레 넘어가게 되니 가족 생각에 훌쩍 거리며 편지를 쓰는 동기들이 마치 전염병 퍼지듯이 늘어났다. 물론 나도 그중에 하나였고. 이때 사회를 보던 회사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자 여러분. 이 회사에 여러분 혼자의 힘으로 들어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거 아닙니다. 다 부모님이 뒷바라지해서 보내주신 겁니다."

6년이 지난 지금에도 저 멘트가 기억나는 거 보면, 당시에 정말 감동하고 공감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저 멘트를 다시 생각해보면 '아프지 않고 경제활동을 아직도 하시는 부모님'덕에 퇴사도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퇴사의 조건 중 반을 나의 부모님이 충족시켜주고 있었다. 결국에 입사도, 퇴사도 나 혼자가 아닌 부모님 덕에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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