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퇴사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elee Sep 12. 2016

퇴사 일기 15. 메인 업무는 퇴사준비(3)

희망...

팀 내에서의 모든 절차를 마친 다음날, 인사과에 서류를 제출할 일만이 남아있었던 나는 담당자에게 메신저를 보냈다. 오후에 만나기로 일정을 잡았고, 사무실에서 소소한 업무들을 하고 있었다. 소소한 업무란, 실수하더라도 당장의 생산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업무들이었다. 시간 보내기도 좋았고 바쁜 동료들에게 그나마 덜 미안하기도 했다. 정말 열 일하는 사람의 눈엔 '일하는 척'으로 보일 수도 있을 만한 업무들이었다. 회사 다니는 내내 그런 업무만 했다면 어땠을까? 과연 그랬다면 회사 생활을 행복하게 했을지 궁금하지만, 그렇다면 그 상황에 대한 또 다른 불만을 갖고 있었을 것 같다. 매일 똑같은 일만 한다며 투덜댔을 것이고, 스스로에게 발전이 없네 어쩌네 하며 현실을 비난했을 것이다. 그만큼 난 내 생활에 자부심이 없고 불만만 가득했다.

그렇게 어렵지 않은 업무들과 점심 식사 등으로 시간을 보낸 후 인사과를 찾아갔다. 3개의 결재란을 착실하게 채웠는지, 서류에 누락이 된 부분은 없는지를 확인받은 후 절차가 다 끝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퇴직금은 퇴직 후 2주가 지난 시점에 들어올 것이라고 했으며 퇴직 관련 전산 입력에 대한 추가 안내를 받았다.

'다 끝났다!'는 해방감과는 별개로 내 마음속엔 깨끗이 지워지지 않은 하얀 옷의 얼룩처럼 남아 있는 무언가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희망퇴직'에 관한 '희망'이었다.

희망퇴직이란 법률이 정한 퇴직금 외에 추가적으로 위로금 형식의 돈을 받고 나오는 것으로, 회사의 사정이 어려워 인원 감축이 필요할 경우에 주로 시행하게 된다. 장기적으로 발생할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다.

내가 퇴사할 무렵엔 희망퇴직에 대한 많은 소문들이 있었다. '누구는 희망퇴직 처리가 되어서 퇴직금 더 받고 나갔다더라.', '누구한테 희망퇴직 권고 전화가 왔었다더라.' 등등... 돈 더 받고 나갔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런저런 루트로 내 귀에 들어오게 되니, 나 또한 욕심이 생겼던 것이 사실이다. 기왕 나갈 거 더 받고 나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직접적으로 내가 확인했던 것은 없었다. 육아 등의 문제로 인해 여성 직원들에게 희망퇴직이 실시된 것 말고는 다른 희망퇴직의 케이스를 찾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 부서의 누구는 희망퇴직으로 나갔어~' 이런 말이 들려올 때마다 직접 당사자를 찾아가 만나보고 싶었지만, 이미 퇴사한 상태라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소문만 무성할 뿐 실체는 확인할 수 없었다. 상황이 그렇게 되니 '누구는 희망퇴직 처리돼서 돈 더 받았는데, 넌 왜 그렇게 못했어?'라는 소리가 들릴 것 같기도 했고, 그 소리를 듣기 전에 남들보다 더 적은 퇴직금을 받는다는 생각부터가 짜증 났다. 돈이란 게 참 사람 치사하고 옹졸하게 만드는 역할을 아주 잘한다.

인사과에서 모든 퇴직 절차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지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그 미련이 가시지 않아서 내가 만났던 담당자에게 희망퇴직에 관한 질문을 메신저로 보냈다. 약간의 뜸을 들인 후 내게 돌아온 대답은 난 대상이 아니라는 것. 예상한 대답이었지만 예상이 정확하게 들어맞아 아쉬울 따름이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라는 어느 노래의 가사가 떠올랐다.

그 대답을 들은 후로 희망퇴직에 대한 희망은 완전히 접었다. 물론 미련은 남았지만. 그런데 퇴사를 한 지 4개월 만에 만난 동기에게 그런 질문을 듣게 됐다.

"형 희망퇴직 처리된 거 아니었어?"
"어... 회사가 제 발로 나간다는 사람한테 돈 더 얹어서 내보낼 이유가 있겠냐?"
"그렇긴 하지..."

저렇게 묻는 걸 보니, 회사에선 내가 희망퇴직 처리됐다는 소문이 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희망퇴직을 받았을 거란 생각을 안 했다면 저런 질문을 과연 나에게 했을까? 나란 존재가 사람들의 입을 거치고 거쳐 어느새 희망퇴직을 받아 나간, '소문의 실체'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영화 '품행제로'에 나오는 부풀려지고 변질된 소문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느낌을 순간 받았다.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니 퇴직 전에 내가 그렇게도 보고 싶어 했던 희망퇴직 대상의 실체는, 어쩌면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제야 희망퇴직에 대한 미련을 놓을 수 있었다. 4개월 만에 만난 내 동기의 우연한 질문 덕분에 말이다. 이 글을 빌어 별생각 없이 질문을 던져 준 내 동기에게 큰 감사를 표한다. 역시, 동기밖에 없구나.

매거진의 이전글 퇴사 일기 14. 메인 업무는 퇴사준비(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