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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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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lee Sep 03. 2016

퇴사 일기 6. 한 명씩, 한 명씩...

이제 곧 모두가 알겠지

2015년 12월에 있었던 고과 면담에서 부서의 책임에게 '퇴사 가능성'을 이야기한 후, 부서의 어느 누구에게도 퇴사 의지를 표명한 적은 없다. 정확한 시기를 잡은 것도 아니었기에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다. 우스갯소리로도 퇴사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퇴사 의지가 없을 땐 '때려치워야지'라는 말을 많이 했던 것 같은데, 진짜 마음을 먹게 되니 그런 말은 오히려 안 하게 됐던 것 같다. 입에 '퇴사'라는 말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퇴사 안 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진짜 마음에 품으면 함부로 입에 담지 못하는 단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해가 바뀌어 2016년이 되었고 어느덧 난 34살이 되었다. 30대 초반이라고 우기지도 못할 나이가 되었고 야간 근무 후 몸의 회복 속도는 더 느려진 시점이었다.


회복력이 느려진 몸을 이끌고 1월 10일 전후의 시점에 난 6일간의 야간 근무를 하게 되었다. 새해의 첫 야간 근무였고, 마지막일 줄은 몰랐던 야간 근무였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야간 근무였다. 머릿속에 '퇴사'란 글자가 예전보다 더 빼곡하게 가득 찼다는 것, 그리고 퇴사 예정자인 후배가 오후 근무자로서 나에게 야간 업무 인계를 계속해 줬다는 것. 이 두 가지가 평소와 다른 점이었다.


그 후배는 '잘 하고 있는 애가 갑자기 왜 퇴사 해?'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회사 생활에 별 문제가 없는 친구였다. 부서 내에서 업무를 몇 번 바꿨는데, 적응을 못해서 바꾼 게 아니고 인력이 필요하게 된 업무 영역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 후배는 상부의 업무 변경 지시에 별 불만 없이 응했고 바뀐 업무에서도 적응을 잘 해나갔다. 흔히 말하는 '센스'가 있는 친구였고 성격도 둥글둥글하여 사람들과 트러블도 없는 편이었다.


아무튼 그런 그와 야간 업무 관련 미팅을 마친 후 퇴사 관련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주제가 그쪽으로 흘러갔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와 그 후배는 가장 큰 관심사를 잠깐이나마 공유하게 되었다.


학교 선생님이 꿈이었다는 그는, 그 꿈을 되찾기 위해 다시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미 퇴근 후에는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뭔가 확실한 꿈이 있다는 것에 대해 부럽기도 했고 별 준비 없이 퇴사를 생각하는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도 참 궁금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나도 한마디 했다.


"사실은... 나도 퇴사할 거야... 2월까지만 다니고..."


그 친구는 굉장히 놀란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나 또한 질렀다는 느낌이 들어 스스로에게 놀랐다. 내 입으로 이야기해놓고 스스로 흥분되는 느낌이었다. 부서 내의 다른 누군가에게 '퇴사할지도 모르겠다'가 아닌 '퇴사하겠다'라고 이야기한 게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후배는 금세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는 3월 15일에 퇴사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퇴사 시기 선택의 이유를 나에게 설명해 주었으며, 그 얘기를 좀 듣다 보니 나도 2월 말이 아닌 3월 15일에 퇴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로부터 받을 수 있는 건 받고 나가자는 게 퇴사일 선정의 목적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이런저런 퇴사 관련 정보를 듣다 보니 든든한 전우가 생긴 듯한 느낌이었다. 3년 후배인 그를 '퇴사 선배'로 임명하고, 그의 퇴사 관련 정보는 무엇이든 믿었다. 그러면서도 그 후배의 입이 무거울 것이라는 생각은 안 했는지, '이제 슬슬 한 명씩 알아가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경험상 회사 내에 비밀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 후배에게 퇴사를 이야기한 후, 한 2주간은 아무에게도 퇴사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별 말없이 회사를 다니던 중, 가장 친했던 선배와 생산 라인을 갔다 오는 길에 문득 퇴사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인에서 나와 사무실 문까지 걸어가던 3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할까 말까 몇 번이나 고민했는지 모른다. 고민을 반복하다 사무실 문 거의 앞까지 간 선배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잠깐 얘기 좀 하자고 했다.


그 선배는 내가 회사 생활 적응하는 데 있어 정말 큰 도움을 줬었다. 다른 선배들도 많은 도움을 줬지만, 그 선배는 내가 부서 사람들과 잘 섞이게 해 준 사람이었다.


성격은 유한 편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하나 있었다. 부서 내에는 고졸, 초대졸, 대졸 출신 그리고 석사, 박사 출신 등, 여러 부류가 있었는데, 이 부류들 간에는 유리벽과 같이 안 보이는 장벽이 있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출신이 다양하기에 회사 경력은 더 위지만 직급이나 나이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 이런 장벽이 있음에도 서로 좀 친해지게 되면 나이순으로 형, 동생이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렇게 되는 과정은 '술'이란 존재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쳤다. 그런데 나는 술도 안(못) 마시는 사람이었고 28살에 입사한 나이 많은 대졸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나이가 적다며 '형이라고 부를게요'라며 선뜻 먼저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물론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 라고 할 순 없지만, 어느 것이 나한테 편했다고는 쉽게 말할 수 있다. 나름 민감한 사안이었다. 적어도 개개인에게는 중요한 문제였고, 남자들 사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술 못하고, 먼저 싹싹하게 다가가지 못한 나로선 굉장히 경직된 관계를 많이 경험하게 되었다. 그 경직된 관계들은 업무 처리에도 영향을 줬다. 사무실에서 라인으로 업무 요청을 하는 경우, "야 이것 좀 해줘~"가 아닌, "저... 이런 게 있는데요... 이것 좀 지금 해주실 수 있을까요?ㅎㅎ"처럼, 일단 타이핑부터 몇 글자 더 해야 하는 불편을 겪곤 했다. 그러면서 '바빠 죽겠는데 이거 저거 해달래!'란 불만을 갖지는 않을지 걱정하며 스스로 가슴 졸이는 '을'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나중에 든 생각이, 우선 친해지면 업무도 편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위에 말한 그 선배가 나에게 이 방면으로 큰 도움을 줬다.


그 선배는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모두가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운동, 게임 등 다 잘하는 편이어서 여기저기서 찾는 편이었고, 술도 잘 마시고 말도 잘해서 분위기도 많이 주도하는 편이었다. 특히 나이가 어린 친구들은 그 선배를 매우 따르는 편이었다.


그런 그 선배와 다른 부서원들, 그리고 나까지 해서 회식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그 선배 덕분에 다른 부서원들과 많이 친해졌었다. 내가 그 부서원들보다 나이는 많고 회사 경력은 짧은 그런 케이스였는데, 당시 자리에 있던 친구들이 평소보다 더 쉽게 다가와 줬었다. 그 선배 없이 나랑 그들만 있는 자리였다면 경직된 자리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런 부분에서 그 선배가 매우 고마웠다. 다른 고마운 부분도 많지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부분이다.


그런 선배를 잠시 복도에 있는 의자에 앉힌 후 말을 꺼냈다.


"다른 거 아니고, A(퇴사 예정 후배)랑 같은 얘긴데요... 저 퇴사하려고요..."


선배는 얘길 듣고 말없이 두 손으로 얼굴을 한번 쓸어 올렸다 내렸다. 영화 '친구'에서 동수(장동건)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그가 바로 했던 말은


"겁나 부럽다."


였다. 왜냐고 묻기보다 부럽다는 말을 먼저 했다. 선배가 '왜'냐고 묻지 않았던 건 본인도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부럽다는 말을 한 뒤 앞으로 뭘 할 것인지, 이미 퇴사한 동기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등등,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 대화를 나눴다. 전체적으로 대화는 나가서 뭘 할지에 대해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실제로 그 선배도 회사 나가서 어떤 것을 할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었던 흔적이 보였다.


어쨌든, 2016년 1월 말이 된 시점에 난 부서 내의 2명에게 확고한 퇴사 의사를 전달했다. '퇴사 가능성'을 전달했던 책임을 포함하면 총 3명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한 일주일 정도면 3의 제곱의 제곱, 81명 정도가 알 수 있을 거라고. 즉, 부서원의 70%는 곧 알게 될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한 명씩, 한 명씩... 내 퇴사를 알아가는 사람이 늘어가면서 알 수 없는 떨림을 느꼈다. 퇴사 후 세계에 대한 설렘에 의한 떨림보단, 두려움에 의한 떨림이었다. 두려움을 느낀 이유는 그저 불안했기 때문일 것이다. 퇴사한다는 사실 자체가 남들에겐 쿨내 진동하는 것처럼 멋있게 보였을 수도 있지만, 퇴사 의사를 다른 한 명 한 명에게 말할 때조차 수십 번의 고민을 했을 정도로 난 쿨하지 못했다. 그리고 난 메타세콰이어처럼 우직한 나무 같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래서 2016년의 1월과 2월은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 같은 마음으로 하루하루 회사생활을 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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