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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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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lee Sep 04. 2016

퇴사 일기 7. 부모님의 반응

나홀로 케세라 세라

1. 엄마의 반응

엄마에겐 이미 퇴사 의지가 생겨났던 2015년 8월에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6일 혹은 7일간의 야간 근무를 마치고 오전에 서울 집으로 돌아오는, 흙빛의 얼굴을 한 내 모습을 보며 가장 가슴 아파했을 사람이기에 '안돼!'라는 반응은 절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찬성표를 던지진 않았지만.

그렇게 툭 던져놓은 퇴사 이야기를 엄마는 얼마나 가슴에 품고 있었을까. 2015년 12월에 아이슬란드를 막 다녀온 내게 했던,

"그래도 회사 덕분에 그렇게 좋은 데도 갈 수 있고 그런 거지..."


이 말 한마디는 엄마의 당시 심정을 충분히 표현하고도 남았다. 엄마의 뜻은 바로 눈치챘지만, 일단 난 모른 척...

2015년 12월 말의 어느 날, 동네에 있는 장어집에서 저녁을 먹다 퇴사 이야기를 다시 하게 됐다. 대장 관련 문제로 병원에서 진찰을 마친 후 갖게 된 '난 아직 젊은 나이다.'라는 생각이 퇴사의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고, 엄마는 내 말에 동의를 했다. 그러면서 술도 안 먹는 내가 지방간 판정을 받았다는 데에 쇼크를 받았었다고, 내가 그냥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2016년 1월의 어느 날, 엄마와 송추에 있는 갈빗집에서 고기를 먹고 나오는 길이었다. 그때 난 다시 퇴사 이야기를 했다.

"설까지만 버티고 때려치워야지."


엄마는 말했다.


"진짜 그만둘 거야?
"응. 그만둬야지."


역시나 엄마는 내 퇴사를 동의한 적이 없었나 보다. 그렇다고 퇴사를 만류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몇 마디 주고받다가 엄마는 이내 수긍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라, 실업급여는 받을 수 있는 거냐, 기숙사에서 짐 빼면 서울 집으로 올 거냐, 누나 있는 미국으로 가봐라 등등. 내가 이미 퇴사한 사람이라도 된 듯, 엄마는 날 위해서 할 수 있는 말은 모조리 다 하고 있었다.

당시 엄마는 목감기에 걸려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상태였다. 쉬어버린 목소리와 중간중간에 섞이는 기침 소리, 그리고 내 앞날만을 생각하는 내용의 이야기... 듣다 보니 새삼스레 엄마의 나이를 다시 실감하게 되었고, 순간 울컥했다. 난 말을 많이 하다간 자칫 목소리의 떨림이 전해질 것 같아 말문을 닫아버렸다.

결론적으로, 엄마의 반응은 '반대는 하지 않으나 동의도 하지 않는, 그러나 내심 회사에 남았으면'하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2. 아빠의 반응

아빠에겐 고민을 털어놓기보단, 이미 다 결정한 상태에서 '통보'식으로 이야기했다. 아마 2월의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3월 중순쯤에 회사 때려치우려고..."
"왜? 잘렸냐?"


참 아빠스러운 반응이었다. 국가대표 축구대항전이 있는 날이면 집에 들어오자마자 "졌냐?"라고 묻던, 그 모습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욱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아들을 결국 해고당하는 수준의 사람으로만 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담담하게 퇴사 이야기를 꺼냈던 난 어느새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럼 아빠는 왜 퇴직했었냐고 말하며, 퇴직하고 맨날 집에서 되지도 않는 주식만 하지 않았냐며, 진짜 아빠의 속 사정은 아직도 전혀 모르는, 지난날의 이야기들을 꺼내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라도 해서 아빠의 입을 막으면 내가 아빠를 설득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땐 그랬다.

그렇게 차가운 몇 마디가 오간 후, 아빠는 내게 물었다.


"그래. 그럼 나와서 뭘 할 건데? 뭔가 아이디어가 있어?"
"뭐라도 하겠지. 뭐."
"요즘 같은 때에... 쉽지 않아."


난 계속 날카로운 상태였다. 아니, 아빠에겐 이전에도 항상 날이 선 태도를 취했다. 엄마에겐 무뚝뚝하다가도 까부는 아들이었지만, 아빠에겐 무뚝뚝하다가 날카로운 아들이었다.

더 이상 이야기하기가 싫었다. 엄마와 대화할 땐 울컥한 마음에 말을 줄였지만, 아빠와 대화할 땐 욱하는 마음에 말문을 닫았다.

어쩌면, 답변이 준비되지 않은 질문을 받은 내가 되려 신경질을 낸 것일 수도 있다. 잘못을 저지른 남자가 여자 친구에게 정곡을 찔렸을 때 오히려 화를 내는 것처럼. 뭘 할 거냐는 물음에 짜증이 났고 괜한 참견으로 느껴졌다. 이전에도 난 아무 도움 없이 취업했었다는 듯한 태도를 취하면서 말이다.

결론적으로 아빠는 나의 퇴사에 반대표를 확실히 던졌고, 그 반응이 미워서 난 더 예민해졌다.

반응하는 방식이 달랐을 뿐, 두 분의 생각은 어떻게 보면 같았다. 그리고 각각 다른 감정에 의한 것이었지만, 난 양쪽 앞에서 모두 말문을 닫아 버렸다.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은 것도 아닌데, 그저 난 말을 잇기 싫었다. 말보단 생각하기가 싫었을 수도...

점점 난 '케세라 세라'식 태도를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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