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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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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lee Sep 05. 2016

퇴사 일기 8. 비공식적인 공식화

비밀은 없어

회사의 부서 내에서는 사실상 비밀이란 게 없다. '너만 알고 있어.'라는 말을 덧붙이며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해도 어느 순간 많은 사람이 알게 되기 마련이다. 누군가에게 '너만 알고 있어'라고 하며 뭔가를 이야기하면, 그 '너'란 사람은 또 다른 '너'에게 '너만 알고 있어'라는 말을 하며 비밀을 이야기하곤 한다. 이렇게 되면 어느덧 3명이 알고 있는 비밀이 된다. 이때부턴 비밀이란 단어를 갖다 붙이기에 민망한 상태이다.

내가 퇴사한다는 걸 두 사람(퇴사하는 후배, 처음 이야기한 선배)에게 최초로 이야기할 때, 비밀로 해달란 요청은 하지 않았다. 즉, '너만 알고 있어', '비밀로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란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다. 어차피 다 알게 될 것 같았고 뭔가 잘못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며칠 후, 옆자리를 쓰던 책임 선배는 나에게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넌지시 내 퇴사 이야기를 흘렸다. 충분히 알 수 있을 법한 사람이란 것은 알았지만, 막상 내가 퇴사 의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지 않았던 사람의 입을 통해 나에게 전달이 되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아는 사람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했고, 멋쩍은 웃음으로 넘겼다.

부서를 잠시 떠난 누군가도 어느 날 나와 마주치자마자 "뭔 소리예요?"라는 말부터 꺼냈다. 그 '뭔 소리'에 대한 내용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무엇을 뜻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사내 메신저를 통해 퇴사 이야기를 물어오는 사람들 또한 많았다. '진짜예요?', '뭐할 건데?', '멋있다.' 이 세 가지의 말이 그 당시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었다. 살면서 '멋있다'라는 말은 엄마한테만 들어왔던 것 같은데, 그렇게 많은 사람이 멋있다고 할 줄은 몰랐다. 내가 멋있는 사람인 줄 처음 알았거나, 멋있는 짓을 처음으로 했다거나. 물론 후자일 테지만.

언젠가는 다 알게 될 사실이지만, 이상하게도 물어올 땐 쉬쉬하는 듯한 뉘앙스로 질문들을 던졌다. 하긴, 나도 예전에 퇴사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얘기했던 것 같지만, 그게 왜 쉬쉬할 일이 돼야만 했는지는 참 이상하다. 해고될 위기에 놓인 것도, 사람들이 손가락질할만한 사고를 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쉬쉬하는 분위기 덕에, 나의 퇴사는 비공식적으로 '공식화'되고 있었다. 스포츠 이적시장에 나오는 [오피셜]만 없었을 뿐, [지피셜]들은 가득했다. 그리고 만약 번복하게 되면 '멋있다' 소리가 아닌 '그럼 그렇지', '쪽팔리겠네' 같은 비아냥을 감수해야만 할 상황이 만들어졌다. 퇴사한다고 마음먹으면 마냥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나의 퇴사를 알아가는 사람이 늘어가는 만큼 마음의 부담도 커져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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