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그림책 록산느의 "할아버지는 바람 속에 있단다(2013)"
할아버지는 바람 속에 있단다
J'ai laissé mon âme au vent
작년 오늘, 할아버지 나무를 심었다. 할아버지 나무는 사계절 언제나 푸르다. 오늘 4월 5일은 식목일이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어느덧 1년째 되는 날. 정말 가까운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것이 처음이었는데, 이제부터가 시작이겠지.
누구보다 더 가까이 할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보냈기에 할아버지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질 사촌동생들에게 오늘 저녁 읽어주고 싶은 이 책을 오늘 이 공간에도 기록을 남기고 싶다.
바로 이전, 다섯 번째 책이 <바람은 보이지 않아>였는데, 오늘도 바람과 관련이 있다. 바람은 많은 문학, 예술인에게 영감이 되나 보다. 책에서 뿐만 아니라 노래에서 특히 '바람'을 많이 발견한다.
<할아버지는 바람 속에 있단다>의 저자 록산느 마리 갈리에즈는 프랑스 시인이자 작가다. 2013년 불어 원제인 'J'ai laissé mon âme au vent'를 출판했다.'나의 영혼을 바람 속에 두었어' 정도로 직역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옮겨진 건 2015년인데, 제목을 정말 잘 지은 것 같다.
이 책은 바람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언제나 그 존재가 느껴지는 것처럼, 기억 속에 늘 함께할 것임을 손자에게 전하는 할아버지의 작별인사를 담고 있다. 이 책의 그림을 그린 에릭 퓌바레는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했는데, 작품 속 그림이 정말 동화 같아서 애니메이션으로 나와도 너무 좋을 것 같다. 할아버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들을 손자에게 들려준다.
Life goes on ; 삶은 계속되기에
계절은 계속해서 변화하며 같은 시간에 존재한다.
4월은 언제 왔었냐는 듯 덥다며 내일 6월의 여름을 맞이하고 있을 내가 벌써 눈에 선하다.
정원은 돌보는 사람이 있는 이상
늘 꽃이 피어있을 것이고,
언제나 떠 있을 구름은 때론 비도 내릴 테지.
사탕 과자를 주는 사람은 더 이상 할아버지가 아닐지라도, 할아버지와 함께한 우리의 달콤한 시간은 계속해서 곱씹으며 추억할 수 있다.
이제 바람 속에 존재하는 할아버지는 몸이 가벼워져 어디든 존재할 수 있다. 여행은 떠났다 다시 돌아오기 때문에 그 시간이 더 값지고 아까운 것.
바람 속의 할아버지를 더 이상 붙잡을 수도,
붙들어 둘 수도 없지만,
눈을 감으면 언제든지 느낄 수 있다.
이제 더는 그 손을 붙잡을 수도,
안아드리고 뽀뽀해드릴 수도 없지만,
바람 속의 할아버지는 어느 곳에나 존재하기 때문에 무엇이든 또 할 수 있다.
우리가 펑펑 우는 것보단 할아버지의 웃는 모습을 떠올리며 즐거워하기를 바라는 마음.
바람이 느껴질 때면 할아버지를 떠올린다.
나를 너무도 사랑한 우리 할아버지를.
모래 언덕 위에서 할아버지를 마주하는 소년의 모습은 슬프면서도 뭉클하다.
할아버지는 바람 속에 있으니까.
내 머리카락을 간지럽히던 산들바람이 어느새 배 한 척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그 존재가 커졌다.
계절도, 정원도, 구름도 할아버지가 떠나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할아버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더라도 손자에게 남아있게 될 것들을 이야기한다.
할아버지가 영혼을 바람 속에 놓아두었기에 할아버지는 늘 어느 곳에나 존재할 것이다. 바람이 있는 모든 곳에서 할아버지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바람이 없다 느껴질 때에도 바람은 사라지지 않고 참새의 날갯짓 속에 존재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
*번외
할아버지를 떠올리면 어쩜 웃는 할아버지 모습밖에 떠오르지 않는지. 책 속에서 할아버지의 부탁은 두 개다. 펑펑 울지 않기. 그리고 할아버지의 웃음을 생각하기. 할아버지가 떠나고 남은 그 자리에는 온전히 그 사랑만이 남아있다.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한 모든 시간에 후회가 없다.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온전하게는 아니지만, 진실되게 사랑했으니. 이렇게만 사람을 사랑하면 후회 없음을 깨닫게 해 준 할아버지께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