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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뒤셀도르프

by 자행가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시인 하이네가 찬미하던 고향 뒤셀도르프는 독일 북서부 노트라인-베스트팔렌 주(Nordrhein-Westfalen)의 주도이다. 인구 60만으로 이웃하는 쾰른과는 경쟁관계에 있다. 경쟁의 역사도 깊고 치열해 뒤셀도르프 사람과 쾰른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비난한다. 서로를 조롱하는 유머도 많다.


독일인들은 자신의 살고 있는 곳을 벗어나 다른 도시로 삶의 터전을 잘 바꾸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가 살고 있는 고장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독일에서는 중요 도시 간의 경쟁은 흔히 볼 수 있다. 경쟁관계에 있는 도시 간의 축구경기는 보다 열기가 뜨겁다.


뒤셀도르프는 문화예술분야가 특히 발달한 도시이다. 독일 내에서 손꼽히는 부자도시로 문화예술분야에 대한 지원이 다른 도시에 비해 월등히 많다. 예술 관련 교육기관이 많고 크고 작은 문화예술단체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패션산업이 발달하여 로레토 지역(Loretto-Viertel)에는 젊은 디자이너들의 가게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시내 중심 쾨니히 거리(Königsallee)에는 각종 명품숍이 청담동 로데오 거리처럼 늘어서 있다. 거리는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다.

csm_touristik_entdecken_koenigsallee_stage_1960_3ab3e598f6.jpg 쾨니히거리(Königsallee)

뒤셀도르프에는 일본의 날이 있을 정도로 일본인과 일본 기업들이 많다. 재팬 타운에 가면 라멘집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본이나 한국 맛집에 줄 서서 먹는 모습과 흡사하다.


뒤셀도르프에서 가장 핫한 곳은 미디어하펜 (Medienhafen)이다. 도시재생사업에 의해 재탄생한 곳이다. 각종 물자가 오고 가던 항구였다.


1970년대 이후철강 석탄산업이 쇠퇴함에 따라 부분적으로 폐허가 되었다. 예전의 영화를 보여주는 크레인과 철도 레일을 볼 수 있다. 현재는 방송통신 타워, 시의회, 방송미디어 기업들이 입주해 있다. 요트 선착장도 눈에 띈다.


한국도 중국 등 신흥국의 도전에 직면해 어려운 굴뚝산업도시들이 많다. 변신에 성공한 산업도시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

csm_touristik_entdecken_slideshow_05_medienhafen_architektur_1960_48e84b7c7f.jpg 미디어하펜 (Medienhafen)

1980년대 후반 뒤셀도르프 시는 이 지역을 다시 개발하기로 하였다. 그 일환으로 세계적 건축가들- 스티븐 홀(Steven Holl), 클라우드 바스코니(Claude Vasconi), 프랭크 게리(Frank Gehry), 윌 알솝(Will Alsop)-을 참여시켜 건물을 짓게 하였다. 이후 새로운 개념의 건물들이 지어지면서 새로운 사무공간으로 탈바꿈되었다.


프랭크 게리의 노이에 졸호프(der Neue Zollhof) 건물들이 특히 유명하다. 프랭크 게리는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한 당사자로 도시재생에 일가견이 있는 건축가이다. 특유의 비대칭적인 외관과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미디어하펜에 세련된 모던함을 주었다. 특히 노이에 졸호프 가운데 건물은 벽면을 특수소재로 만들어 양쪽의 건물들이 거울에 비친 듯한 효과를 만들어 냈다.

csm_touristik_entdecken_slideshow_07_Gehrybauten_2880_51fd98b838.jpg 졸호프(der Neue Zollhof)


csm_touristik_entdecken_slideshow_04_altstadtfront_2880_8ad3e08cb8.jpg 라인강가(Rheinufer)

라인 강가(Rheinufer) 부르크 광장(Burgplatz)에 성탑(Schlossturm)이 서있다. 현재 선박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이곳에는 밤마다 <하얀 여인(die Weiße Frau)>라는 유령이 나타난다고 한다.


16세기 야코베 폰 바덴(Jakobe von Baden)이라는 아름답고 신앙심이 깊은 귀족 집안의 처녀가 있었다. 그녀는 많은 사람의 축복 속에 공작의 아들인 요한 빌헬름(Johann Wilhelm)과 결혼하였다. 불행하게도 남편은 정신병이 앓았다. 누군가 자신을 쫓고 있다며 밤마다 무장을 하고 성을 뛰어다녔다. 이로 인해 때때로 남편은 감금당하곤 하였다.


1592년 공작이 죽자 정신병이 있는 남편은 야코베에게 통치권을 위임하였다. 신하들은 이 상황이 불리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들은 시누이인 주빌레(Sybille)와 짜고 야코베를 비난했다. 야코베가 주빌레를 모함한다는 둥, 다른 남자와 간통한다는 둥, 남편 정신병의 원인이라는 둥 가짜 뉴스를 퍼뜨렸다. 그리고 이를 모아 황제에게 상소하였다.


주위에 우군이 없던 야코베는 황제가 심판을 하는 동안 성탑에 갇혀 있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싸늘한 시체로 발견이 되었다. 전날 밤까지 그녀는 건강했다고 한다. 그녀의 죽음은 현재까지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사람들은 원한을 품은 야코베가 밤마다 성탑에 나타난다고 믿고 있다.


뒤셀도르프 외곽에 후기 바로크 양식의 벤라트 궁전(Schloss Benrath)이 있다. 18세기 선제후 카를 데오도르(Karl Theodor von Pfalz)는 호수와 공원이 있는 별장을 짓고자 하였다. 그 래서 그는 63헥타르에 달하는 땅에 궁전을 지었다. 그는 뒤셀도르프 예술학교(Kinstakademie) 설립자이기도 하다.

csm_touristik_entdecken_slideshow_10_Schloss_Benrath_2880_e027494a76.jpg 벤라트 궁전(Schloss Benrath)


현재 궁전은 벤라트 재단(Schloss und Park Benrath)에 속해 있다. 재단은 궁전 주변에 건축박물관, 자연사박물관, 유럽 조경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매년 음악제(Schloss Benrath Musikfestival)도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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