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울브론(Maulbronn)은 슈투트가르트와 카를스루에 중간에 위치한 인구가 만 명이 채 안 되는 소도시이다. 그러나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수도원이 있고 세계적인 문호 헤르만 헤세의 추억과 작품의 모티브가 된 곳이다.
1147년 시토 수도회(Zisterzienser)는 마울브론 수도원(Kloster Maulbronn)을 짓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었다. 증축하면서 독일어권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고딕 양식을 적용하였다. 이후 북부와 중부 유럽 고딕 양식 건축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고딕 양식은 프랑스에서 처음 시작한 건축 양식이다. 파리 생드니(Saint Denis) 수도원 원장인 쉬제르(Suger)가 성당을 개축할 때 개발한 신공법이다. 고딕이라는 단어는 이후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건축가인 조르조 바사리(Giorgio Basari)가 알프스 이북에서 개발된 이 양식을 무시하며 한 말에서 유래한다. 그는 새로운 양식을 북방의 야만족인 고트족의 양식이라고 하였다.
로마제국 후반기 이탈리아는 게르만족의 일원인 고트족에게 침략을 당해 많은 고통을 받았다. 1000년이 지난 후에도 폭력과 약탈에 대한 원한이 없어지지 않았던 듯하다. 시저가 갈리아를 정복하면서 게르만과 싸웠던 역사는 야만인을 개화시킨 영광의 역사이고 고트족에게 당한 것은 야만인에게 당한 치욕의 역사로 생각하는 것이 인지상정인 것 같다. 내가 하면 스캔들, 남이 하면 불륜은 누가 말했는지 참 현실적인 표현인 거 같다.
마울브론 수도원도 종교개혁의 파도를 피할 수 없었다. 신교도였던 영주가 1556년 수도원에 신교 신학교를 세운다. 30년 전쟁이 한창이던 1630년 막시밀리안(Maximilian) 황제는 다시 수도원을 시토 수도회에 돌려준다. 그러나 전쟁 후 다시 신교 소유가 되었다. 19세기 초 뷔르템베르크 영주 프리드리히 1세가 교회재산을 세속화하고 수도원은 다시 신교 신학교가 되었다.
독일에서는 가톨릭 성당이나 수도회가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토지를 이용한 임대사업 등 사업을 통해 성당 자금으로 쓰고 있다. 독일은 가톨릭과 신교도 합하여 총인구의 60퍼센트가 기독교인이다. 학교 정규과정에 종교시간이 있는데 학생들은 가톨릭 수업, 신교 수업 그리고 윤리 수업 중에 선택하여 공부한다. 윤리 수업이 없는 경우에는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거나 종교가 없는 학생은 수업을 빠질 수 있다. 그리고 직장에서 기독교인임을 밝히면 월급에서 자동적으로 종교세가 빠져나간다.
전쟁의 피해에서 벗어나 있던 수도원 건물은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초창기 시토 수도회 시기와 신교 소속이 되면서 생긴 변화를 모두 갖고 있다. 2층으로 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중앙홀과 직사각형 예배당은 수도원 초창기 모습이다. 예배당, 강당, 식당, 지하 저장고, 숙소, 제분소, 진료소, 대장간까지 갖춘 자급자족형 수도원이다. 자급자족은 시토 수도회의 제1원칙이다.
중세시대 수도원은 요즘으로 보면 대학과 연구소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마울브론 수도원에는 수도사들이 만든 정교한 용수관리시스템이 잘 보존되어 있다. 배수 시설, 관개 수로, 물 저장 시설을 만들어 생활용수, 농사. 수도원 안 방앗간을 돌리는 데 사용하였다.
1424년에 천장을 고딕 양식의 아치형 천장으로 개조하였다. 수도원 별채에는 석조건물과 목조건물이 있다. 목조건물은 16세기에서 18세기에 신교 소속이 되었을 때 지은 건물이다. 르네상스 양식의 회반죽 건물은 영주의 사냥용 오두막과 마구간이다.
신학교는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문학가 프리드리히 횔덜린 (Friedrich Hölderlin) 등의 졸업생을 배출한 수재들만 다니던 곳이다. 이 학교를 다니면 튀빙겐 대학 입학이 보장되고 학비가 무료인 모두가 선망하는 명문 학교였다. 헤르만 헤세의 외할아버지도 이 학교 출신으로 목사였다.
아버지도 목사인 종교 집안에서 자란 헤세는 이 학교를 들어가기 위해 초등학교 시절 놀고 싶은 것도 참으면서 정말 열심히 공부하였다. 그래도 불안했던지 입학이 쉬운 라틴어 학교에 들어가 1년을 더 준비한 후 14세에 신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1년도 안되어 신경쇠약에 시달리다 자퇴를 한다. 자신의 경험이 온전히 녹아든 작품이 바로 <수레바퀴 밑에서(Unterm Rad)>이다. 주인공 한스와 해르만 하이르너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투영하고 있다.
헤세는 시계 수습공을 거쳐 서점 점원으로 일하면서 작가로 거듭난다. <수레바퀴 밑에서> 외에도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Narziss und Goldmund)>와 <유리알 유희 (Das Glasperlenspiel)>가 마울브론에서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