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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행가 Jan 05. 2019

신생도시 카를스루에

카를스루에(Karlsruhe)는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Baden-Württemberg)에 위치하며 서쪽으로 라인강이 흐르고 있다. 자동차로 30분 정도 서쪽으로 가면 프랑스 알자스 지역이다. 인구는 약 31만 명으로, 주도 슈투트가르트에 이은 제2의 도시이다. 


카를스루에는 유럽 도시로는 300년 갓 넘은 1715년 세워진 신생도시이다. 카를스루에는 도시를 세운 바덴주 영주였던 카를 빌헬름(Markgraf Karl Wilhelm) 후작의 이름 <카를>과 평화, 안식처, 휴식, 수면이라는 뜻의 독일어 <루에>가 합쳐진 말이다. 


카를은 기존의 좁은 길의 폐쇄적 도시 대신 개방된 새로운 도시를 만들고 싶었다.  어느 날 자신의 영지에서 사냥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그는 아름다운 궁전을 중심으로 햇살이 퍼져 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잠이 깨고 나서 그는 꿈을 바탕으로 바로크 양식의 방사형 도시를 설계하였다. 북쪽에 숲을 등지고 궁전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부채모양으로 뻗어 나가는 도시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사실관계를 떠나서 절대주의 시대 영주의 도시계획과 건설과정을 다소 미화하는 느낌이 든다. 동서양을 떠나서 꿈은 아주 중요한 이야기 소재인 것 같다.


여행 중 주로 볼 수 있는 유럽의 중세도시는 도시 방어를 위한 성벽으로 우선 둘러 쌓여 있다. 그 안에 광장을 중심으로 교회와 공공시설 그리고 주거시설이 있는 폐쇄적인 구조이다. 이와 반대로 카를스루에는 바로크 양식의 궁전과 탑을 중심으로 도로와 녹지가 부채꼴로 뻗어 나가는 개방적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러한 도시계획은 신개념으로 이후 생겨난 미국의 수도 워싱턴을 비롯하여 많은 계획도시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카를스루에 궁전은 항상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궁전은 지금은 박물관으로 각종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그리고 식물원과 미술 박물관, 정원과 숲 그리고 광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시의 휴식공간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 산책하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 삼삼오오 모여 담소하고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카를스루에 궁전과 카를 영주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데 도시 전체에 자전거 전용도로가 잘되어 있다. 전용도로가 없는 경우 도로에서 자동차와 같이 다니는데 자동차 운전자는 자전거에게 양보를 하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당연하다고 듯 지나간다. 자전거가 앞에 있을 때는 차들이 자전거 속도에 맞춰 따라간다. 한국도 자전거와 자동차와 같은 교통수단으로 되어있는 걸로 알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자전거를 그냥 탈 기구나 운동 기구로 생각해서 그렇지 한국에서도 일방통행 길이면 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   


카를스루에는 세계 최초의 현대식 자전거가 발명된 곳이다.  산림관으로 근무하던 카를 드라이스(Karl Drais)는 산림을 관찰하기 위해서 두 개의 바퀴로 달리는 자전거를 발명하였다. 1813년 그는 두 개의 나무바퀴를 직선으로 배열한  자전거(Laufmaschine)를 제작하였다. 페달 없이 발로 땅을 박차고 달리는데 시속 10킬로미터로 달릴 수 있었고 방향을 바꿀 수 있었다. 독일 아이들이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사용하는 자전거와 비슷하다. 독일은 아이들도 3살만 되면 페달 없는 자전거를 탄다. 그래서 그런지 남녀노소 모두 자전거를 잘 탄다. 나이 든 백발의 할머니가 좌회전할 때 왼쪽 깜빡이 키듯이 손을 왼쪽으로 뻗고 좌회전하는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 싶다


궁전 우측에는 1951년에 생긴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der Bundesverfassungsgericht)가 있다.  2차 세계 대전 이전 바덴주의 주도였던 카를스루에는 뷔르템베르크 주와의 통합으로 주도의 위치는 슈투트가르트에게 넘어갔지만 많은 국가 기관이 위치해 위상은 남다르다. 1950년 이래로 독일 연방대법원(der Bundesgerichtshof)과 독일 연방검찰청(der Generalbundesanwalts)이 헌법재판소와 소재하고 있어 카를스루에를 ‘법의 수도(Residenz des Rechts)라 불르기도 한다. 이외에도 많은 공공기관과 연구소가 있다.


궁전 좌측에는 카를스루에 공대(KIT)가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자동차를 발명한 카를 벤츠(Karl Benz)와 헤르츠 단위를 고안한 하인리히 헤르츠(Heinrich Hertz)를 배출한 대학이다. 또한 1984년 독일 최초로 이메일을 받는 실험을 수행하였다. 자연적으로 도시 주변으로 전자 통신 IT 기계산업이 발달하였다. 카를스루는 카를스루에 공대(KIT)를 비롯 9개의 대학이 있는 교육도시이다.


전쟁 이후 카를스루에는 과학기술 공업 중심에서 과학기술 교육 행정 문화예술 환경도시로의 복합적 균형발전을 추구하였다. 그중 문화예술발전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곳이 미디어 예술박물관인 ZKM(Das Zentrum für Kunst und Medien)이다

미디어 예술 박물관 ZKM(Das Zentrum für Kunst und Medien)


ZKM은 원래 1차 2차 세계대전 때 무기공장이었다. 카를스루에는 19세기 이래  과학기술도시로서 위상을 확립하였다. 따라서 전쟁 때 무기 개발과 군수물자의 생산이 활발하였다. 또한 지정학적 위치에 따라 수송체계가 발달하여 병참기지로서 기능하였다. 자연히 연합군의 공격 대상이 되었고 폭격으로 도시 상당 부분이 파괴되고 많은 사람이 전쟁의 고통에 시달렸다. 


전쟁 후 탄약공장은 제철소로 사용되다가 1970년 문을 닫으면서 흉물로 남겨졌다. 그러던 중 1985년 카를스루에 시는 미디어센터 건설계획을 발표한다. 이후 시민과 전문가와의 수많은 공론화 과정을 통해 탄약공장을 재활용하여 미디어센터로 탈바꿈시키기로 하였다. 


1997년 드디어 거대한 공장 건물은 미디어 예술 박물관 ZKM(Das Zentrum für Kunst und Medien), 현대미술 박물관(Die Städtische Galerie Karlsruhe)과 조형예술대학 (Hochschule für Gestaltung)으로 재탄생하였다. 그리고 광장을 사이에 두고 영화관 콤플렉스를 유치하여 시민들의 문화예술의 장뿐만 아니라 상업적 효과까지 얻었다. 광장에는 각종 미디어 예술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공연장으로 쓸 수 있게끔 되어 있다.


공장 건물은 300미터 길이와 5층 높이의 직육면체 모양의 기능성이 강조된 건물이었다. 새롭게 개조된 건물은 단순한 형태의 공장 건물의 입구 공간을 파란색 투명 유리로 만들어 시각적인 효과를 주었다. 내부는 중앙이 뻥 뚫린 공간에 각종 작품들이 전시된 진열공간과 창작활동 공간 등으로 나누어져 있고 복도와 벽의 계단을 통해 이동할 수 있게끔 되어 있다. 안에는 많은 현대 설치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백남준의 작품이 크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안에서 볼 때와는 다르게 밖에 나와서 한국 작가들이 만든 작품을 보면 왠지 모를 뭉클함이 솟아난다.


도시 남서쪽부터 검은 숲(Schwarzwald)이 시작한다. 도시를 돌아다니다 보면 숲과 하천이 잘 보존되고 정비되어 있다. 특히 놀라운 것은 축사 근처를 지나가는데 심한 악취가 없다는 것이다. 축사 안을 들여다보면 정말 깨끗하다. 보이지 않는 곳에까지 노력을 들여 정리하고 환경보호에 힘쓰는 모습은 참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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