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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jin Park Mar 10. 2019

3월, 커피의 쌉쌀한 맛이 나는 책

<사랑의 기초-한 남자> <여수> 외

사랑이라는 낭만적 신화 너머 <사랑의 기초-한 남자>


사랑은 가장 달콤하고도 가장 쓴 주제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랑 중에는 물론 비릿하거나 얼얼한 경우도 있겠지만, 거기까지는 가지 않도록 하죠.

이 소설은 시시콜콜한 일상사를 한 뼘 다른 시선으로 술술 풀어내는 재주를 지닌 이야기꾼 알랭 드 보통이 40대에 이르러 썼습니다. '사랑'이라는 제목이 무색하게 사랑에 대한 낭만적 신화를 자근자근 흩어놓는 이야기지요. 한때 서로가 운명이라고 믿었고, 결혼은 그 운명의 '결말'이라고 생각했던 주인공 커플은 각자의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아이를 기르는 일상 속에서 무디어지고 고단하며, 자신의 선택 자꾸 되묻게 됩니다.

만약 당신이 아직 사랑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는 중이라면 적절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 너머 삶을 이해해보려고 하는 중이라면 이 책은 적당히 쌉쌀한 동료가 되어줄 겁니다.

쓴 맛 단계 **



내면을 조용하고도 차갑게 얼려버리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한껏 태엽을 감았는데도 고작 두세 걸음 걷고 멈춰버리는 장난감처럼, 기대는 어김없이 배반 당합니다. 문장은 담백하다 못해 서늘합니다. 사람들은 심각한데 상황은 우스꽝스러워서, 피에로의 웃음을 볼 때처럼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모르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쉽게 읽히지만, 문득 깊이 베인 상처를 뒤늦게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은 가끔 남들에게 내보일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 된 내면을 조용하고도 차갑게 얼려버리고 싶을 때 안성맞춤입니다.

쓴 맛 단계 ***



이리도 쓸쓸하고 가여운, 사람 사는 일 <여수>


유난히 신산한 날이어서, 사소한 것에 서러워지는 날이어서, 따뜻하고 다정한 커피 한 잔으로 마음을 눅이러 들어오셨다면 이 시집을 곁들일 것을 권해드립니다.

제목인 ‘여수’에 이어 ‘곡성’, ‘강릉’, ‘구로’, ‘영광’ 등등의 지명마다 펼쳐지는 삶의 장면들에는 딱히 예쁠 것이 없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버렸고, 추억도 되지 못한 채 떠도는 말들이 웅성거리는데 그 종횡무진한 지리를 하염없이 누비다 보면 사람 사는 일이 이리도 쓸쓸하고 가여워 가슴이 지잉, 알람처럼 울리기도 하고, 이상하게도 그런 순간이 위로가 되더군요.

쓴 맛 단계 **



고독한 운명의 얼룩 <스토너>


세상에는 유난히 고독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이 있고, 당신도 그 중 한 명일지 모릅니다.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을 때 이 남자의 이야기를 읽어보세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업을 공부하러 대학에 갔다가 그만 문학의 세계에 눈을 뜬 대가로 평생을 고독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 남자입니다.

부모를 떠나 고된 과정을 거쳐 교수가 되었고, 상류층 여자와 가정을 꾸렸으나 세속적 야망이나 사교성이 없는 그는 좀처럼 새로운 세계에 어울리지 못합니다. 문학을 향한 순박한 ‘사랑’은 삶을 꾸려나가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그를 지하실처럼 외롭게 만듭니다.

꼭 그 남자처럼 담담하고 충실하게 쓰인 문장들이 당신의 삶에도 잊기 어려운 얼룩을 남길 테고, 그 얼룩을 발견할 때마다 당신은 운명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겁니다.

쓴 맛 단계 ****

*이 매거진에서 소개하는 책은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위치한 동네 카페 '다-용도실'@da_yongdosil 내 공유 서가 '멈포드의 서재'@mumford_salon 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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