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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jin Park Mar 24. 2019

3월, 맥주의 씁쓸한 맛이 나는 책

<생폴리앵에 지다> <그림자 박물관> 외 

처연함 없이 냉정한 인간사의 쓴 맛 <생폴리앵에 지다>


저는 혼자 술을 마실 때 종종 추리소설을 곁들이곤 합니다. 추리소설 특유의 긴박한 전개와 냉정한 필체는 특히 쓴 맛이 강한 술에 잘 어울리죠. 인간의 어두운 면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까지 더해진 소설이라면 더할 나위 없고, 처연함 없이 무심해 뒷맛마저 깔끔하면 최고입니다. 

벨기에 작가 조르주 심농이 탄생시킨 메그레 반장이 주인공인 '메그레 시리즈'는 그런 면에서 완벽한 안주입니다. 루이스 세풀베다가 이미 "겨울에는 꼬냑 한 통, 그리고 심농 소설과 지내는 게 최고"라고 증언했듯이 말입니다.

쓴 맛 단계**


영영 사라진 것들에 대한 꿈 같은 그리움 <그림자 박물관>


만약 당신이 혼자 술을 마시고 있다면 당신은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중인지도, 그 그리움을 아무도 몰라주어 외로워하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런 당신에게 술동무가 되어드리는 대신, 이 책을 건네드리고 싶습니다. 

시간의 파도에 밀려 영영 사라진 것들을 기억 속에서 겨우 더듬어 짜내려간 이 이야기들은 여름 햇볕 아래 포도알처럼 아련하게 빛납니다. 당신이 겪고 있는 그리움이란 당신만이 가질 수 있는 이토록 오래되고 아름다운 감정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쓴 맛 단계 ***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 <회색 영혼>


전쟁의 참담함은 즐비한 시체 사진이 아니라 전쟁 통에 살아남은 사람들의 뒤틀린 마음에 대한 서술에서 더 쓰디쓰게 느껴집니다. 전쟁의 포화는 피했으나, 그 언저리에서 공포와 죄의식에 얼룩진 한 마을의 비밀을 둘러싼 이 이야기가 바로 그렇습니다. 

사람들마다의 사랑과 슬픔, 욕망과 분노, 생존 본능이 은밀하게 다투는 풍경은 죽음이 짙게 드리워져 있기에 종종 누추하고 끝내 공허하며, 묘사는 진한 초콜릿처럼 섬세하고 여운이 강합니다. 

쓴 맛 단계 *****


미묘하게 어긋난 어른의 세계 <에드워드 호퍼>


볕이 환하게 내리쬐고 있는 풍경에서조차, 사람들은 창백합니다. 다양한 색이 쓰인 배경에서조차, 그 표정은 쓸쓸하죠. 사람들의 사이는 미묘하게 어긋나 있고, 누구도 진심을 내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혹은 모두가 진심이라는 것을 체념한 세계일지도요. 

아주 어른스럽고, 세련되게 정돈되어 있고, 기묘하게 고요한 이 그림들 앞에 골똘히 머무르다 보면 쥐꼬리만큼의 애틋함이 엿보이거나 작고 낮은 탄식이 들려오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당신은 드디어 그럴듯하게 취한 겁니다.

쓴 맛 단계 *


*이 매거진에서 소개하는 책은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위치한 동네 카페 '다-용도실'@da_yongdosil 내 공유 서가 '멈포드의 서재'@mumford_salon 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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