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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진우 Aug 30. 2022

22. 블랙 기업의 장점 2가지

다섯 번째 회사 : 광고회사 E사(2)

 전 글에서 E사의 나쁜 점만 빼곡히 썼는데 좋은 점도 물론 있었다. (생각을 좀 오래 해야 하지만.) 이번 글에서는 E사에 다니면서 느꼈던 장점 가지를 꼽아보고 서술하고자 한다.


 먼저 첫 번째 장점으로는 나만의 명함이 생겼다. 한 손으로도 집을 수 있는, 그 작은 종이 쪼가리가 가진 위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오히려 명함을 처음 받았던 순간에는 시큰둥하게 굴었다. ‘아, 정규직으로 입사하니 나왔나 보네.’ 이 정도의 감상을 가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명함 속에 내포된 많은 뜻과 힘을 눈치채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명함을 가진다는 건, 즉 내게 공식적인 소속이 생겼다는 걸 의미했다. 늘 선 바깥에서 서성였던 내가 드디어 선 안의 인간이 된 것이다. 지금껏 경험 못 한 소속감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더군다나 명함을 내미는 것만으로 나를 잘 모르는 이에게 손쉽게 업계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더는 미팅할 때 ‘저는 명함이 없어서요.’라고 말하며 내 소개를 어물쩍 넘겨버리거나 ‘그건 제가 결정할 권한은 없어서요. 담당자한테 물어볼래요?’라고 말하며 머쓱하게 웃을 필요가 없단 이야기다. 나는 보다 적극적이고도 당당하게 업무에 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장점으로는 공감력이 증대했다. 회사 생활, 그중에서 특히 상사라는 존재에 관해서 말이다.

예전에는 나를 다그치거나 일을 많이 주는 상사가 그저 원망스럽기만 했는데 지금은 원망만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아예 느끼지 않는다고는 말 못하겠다.) 어느 순간 상사의 단면이 아니라 여러 면이 보였기에 존경, 감탄, 연민 등의 감정들도 함께 가지게 되었다.


아무리 신입이라 할지라도 정규직이 되고 나니 요구되는 역량이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업무를 보조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닌, 프로젝트의 일정 부분을 책임지고 이끌어야 하는 위치에 놓이게 된 것이다. 정규직이란 그런 책임과 권한이 요해지는 자리임을 알고 있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취업하고 나서야 제대로 그 무게를 실감할 수 있었다.


B사 때는 아이디어를 내놓기만 했다면, E사에서는 아이디어가 TV 광고로 나올 때까지 정교하게 다듬고 또 다듬어야 했다. B사 때는 포스터 시안만 작업했다면, E사 때는 포스터가 실제로 전광판에 올라갈 때까지 완벽히 작업해야 했다. 내 손을 거치는 작업물이 과정작이 아니라 결과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업무 난이도가 훌쩍 올라갔다.


비주얼 작업만이 아니라 디렉터 역할 또한 잘 수행해야 했다. 외주자나 협력사와 소통을 하며 결과물을 산출해야 하는 업무를 종종 맡았는데 그게 꽤 어려웠다. 상대방에게 어쩔 때는 귀찮을 정도로 세세한 피드백을 줘야 했고, 어떨 때는 굽신거리면서 부탁해야 했고, 또 어떨 때는 회사의 입장을 고수하며 단호하게 나가야 했다. 그 과정에서 내 피드백대로 따라오지 않는 외주자 때문에 화를 삼킨 적도 있었고, 원하는 방향으로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는 바람에 골머리를 썩인 적도 있었다.


그래서 이 모든 일을 능숙하게 해내는 E사의 상사들이 대단하게 보였고 한편으로는 힘들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신입인 주제에 업계 베테랑인 그들의 노고를 감히 공감하는 것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전 회사 상사들에게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기까지 했다.


왜 그렇게 B사 사람들이 예민하게 내 실수를 받아들이고 지적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예전에는 이성적으로 그 사정을 이해하려 들었다면 이번에는 감정적으로까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루하루 바빠 죽겠고, 일은 많아 죽겠고. 그런 상황에 부닥쳐 있는데 어떻게 여유를 가질 수 있겠는가. 언제까지 친절하게 실수를 눈감아 줄 수 있을까. 해리 아트님처럼 굉장한 포용력의 소유자가 아닌 이상 힘들 것이다. 내가 내 말을 듣지 않는 외주자나 협력사한테 마냥 답답함을 느끼듯이 B사 사람들도 자신의 말을 잘 안 듣는 내가 퍽 답답했으리라.


그리고 퇴사 날, 내 모든 면을 지적했던 C사 팀장님의 입장도 이해가 됐다. 나는 고작 프로젝트 일부를 담당했을 뿐인데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았는가. 그런데 프로젝트 하나가 아니라 팀 전체를 이끄는 C사 팀장님은 과연 어땠을까. 아마 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고로움을 들이지 않았을까?


전 회사 사람들의 태도를 좋게 본 것도, 그들로 인해 받은 내 상처가 받을 만했다고 합리화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들의 어깨에 올려진 짐과 그 무게만큼은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때 저만 힘든 줄 알았는데 당신들도 힘들었던 거군요.’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시야가 조금은 넓어진 기분이었다.


 아무튼 E사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그러니까 나는 나를 혹사시키는 E사의 상사들이 미우면서도 결국 완전히 미워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미우나 고우나 그들은 나의 동료였다. 우리는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나아가는 한 배에 탄 셈이었다. 내가 선원이라면 그들은 선장이었다.


상사들은 배 선미에 나가 향로를 정하고 키를 잡았다. 배 후미에서 노를 열심히 젓고 있는 나의 분투도 대단한 것이지만 그 무거운 배를 이끌며 길을 찾는 그들의 분투는 더욱 대단한 것이었다. 아마도 상사들은 나보다 열 배 이상의 일을 했을 것이다. 철야 작업을 하다가 깜빡 잠이 들어 고개를 연신 꾸벅이는 ‘마’ 팀장님을 볼 때 느꼈던 그 기분이란. 과로로 눈 주위가 퀭해진 내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팀장님이 무척 짠해 보였다.


 팀 회식을 했던 어느 날, 술에 취한 팀장님이 내게 두서없이 이런 말을 꺼낸 적이 있었다.


 “네가 지금 처리하는 자잘한 일들, 누군가는 별 거 아니라고 볼 수 있지만 사실 우리 팀의 무사에는 네 일조가 커. 그 자잘한 일들이 은근히 중요한 법이야.”


 내용이 길었지만 결국 내게 고생이 많다고 말하고 싶은 걸 알아챘다. 나의 수고로움을 이해해주는 팀장님에게 감사했다. 나 역시 그의 수고로움을 이해하기에 혀끝까지 올라온 E사에 대한 불만을 잠자코 삼켰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이런 장점들이 있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회사에 대한 불만을 억누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날이 갈수록 가혹해지는 근무 환경에 나는 지쳐버렸다. 얼마나 지쳤느냐면 퇴근 이후 손 하나 까닥하기 힘들 지경에 이르렀다.


지하철이나 택시를 타고 내가 사는 동네에 내리고 나면 나는 곧장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적어도 10분간을 역사 벤치나 공원 화단에 가만히 앉아 힘을 보충했다. 집으로 걸어가는 그 사소한 행위조차 버거웠다. 심각한 무기력 증세였다.


집은 그냥 방치했다. 먹고 싸고 씻고 자고, 자취방에서는 이 네 가지 일만 했던 것 같다. 청소하지 않았고 빨래하지 않았고 설거지하지 않았다. 그래도 매일 출근해야 하니 자주 있는 옷은 종종 빨긴 했지만 그게 내가 하는 집안일의  전부였다.


 어느 새벽, 그 날도 늦게까지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출근 전까지 두세 시간만 잘 수 있던 나는 옷을 휙 벗어 던지고 침대로 직행했다. 그러다 발에 무언가가 걸려 도중에 걸음을 멈췄다. 바닥을 내려 보았다. 여러 옷가지가 널려 있었다. 고개를 들어 자취방 전경을 훑어보았다. 방바닥은 엉망이었고 개수대에는 편의점 빈 도시락이 쌓여 있었다. 가스레인지는 쓴 흔적이 없었으며 냉장고에는 유통기한 지난 음식들만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 엉망인 집안 꼴을 새삼스레 눈에 담았다.


잘 살기 위해 회사에 들어갔건만 언제부터인가 주객전도가 되어버렸다. 회사에 다니기 위해 잘 사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다.


포기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작가라는 꿈도 포기한 상태였다. 글을 쓸 시간이 전혀 없었다.


E사에 입사하고 나서도 어떻게든 연재를 이어가 보려고 했다. 잠을 줄여가며 적어도 하루에 30분은 글을 쓰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 노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우선 너무 피로했다.


글을 쓰면서 갖는 충족감보다 잠을 자지 못해 오는 노곤함이 훨씬 컸다. 그로 인해 30분을 쓰든, 그보다 더 시간을 내서 쓰든 글의 퀄리티가 올라갈 수 없었다. 한두 줄 쓰는 게 고작인 나날이 이어졌고 끝내 연재를 중단했다. 한글 프로그램도 더는 켜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그리 생각하며 E사 생활을 이어갔다. 경쟁 PT는 어느새 마무리 단계에 왔고 나는 다시금 희망을 품어보았다. 이제 좀 쉴 수 있겠지? 상황이 나아지겠지? 그런데 웬걸. 일이 또 들어오고 말았다. 이번에도 경쟁 PT 건이었다. 야근이 끝날 기미가 도통 안 보였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가을이 찾아와 있었다.


회사 복도의 창 너머로 청명한 날씨를 멍하게 보다가 화장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평소처럼 잠시 눈을 붙일 요량으로 간 건 아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울컥 치미는 감정을 다스리기 위함이었다. 내 일그러진 표정을 동료들에게 들킬까 봐 걱정됐다.


 화장실에는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나는 칸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마른세수를 거칠게 했다. 그럼에도 쉽사리 추슬러지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상사에게 딱히 혼이 나지도 않았고, 번거로운 작업이 많지도 않았으며, 아직 오후 4시라 야근을 하고 있지도 않았다. 이토록 무탈한 날인데 왜 자꾸 마음이 붕 떠오르는 걸까.


 ‘어차피 오늘 저녁에도 야근하겠지?’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이러는 걸까? 아니면 연일 몰려오는 업무가 새삼 버거워서?


 정확한 이유를 알기 어려웠지만 점점 내 등은 굽어졌다. 정신 차리기 위해 사무실을 벗어나 여기에 온 건데 도리어 주변에 아무도 없다 보니 내 이성은 더욱 빠르게 무너졌다. 얼굴을 감싼 손바닥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회사에서 이러지 말자. 제발.


 이성 끄트머리를 붙잡고 나 자신에게 애원해봤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울컥거림이 기어이 목구멍이 타고 올라와 바깥으로 터졌다. 몸을 웅크린 채 실컷 토해냈다. E사 건물은 전체적으로 방음이 좋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들릴지 모르겠단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떨구어지는 눈물을 멈출 재간은 없었다. 끝내 자리를 오랫동안 비울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나는 완전히 지쳐버린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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