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우진우 Aug 31. 2022

23. 회사를 그만두는 엉성한 방법들

다섯 번째 회사 : 광고회사 E사(3)

 뚜렷한 이유 없이 오열한 뒤로도 나는 종종 예기치 못한 순간에 눈물을 흘렸다. 눈물샘의 어딘가가 고장이 난 듯했다. 더는 이렇게 질질 짜면서 살 수는 없었다. 그래서 E사 동료들에게 묻고 다녔다. 왜 E사에 계속 다니느냐고. 돌파구를 어떻게든 찾고 싶었다. 언뜻 무례해 보일 수 있는 질문을 그들은 성실히 답해주었다.


 “경력을 위해서요. 힘들긴 한데 공부가 많이 돼요.”


 ‘진’은 그렇게 답했다.


 “웬만하면 다른 광고회사로 가고 싶죠. 근데 이직할 시간도 없는데 어쩌겠어요.”


 ‘강’의 답은 다소 달랐다.


 “전 일 많이 하는 거 좋아해요.”


 ‘이’의 답은 그저 놀라웠다. 나는 다 알아들었으면서도 도저히 믿기지 않아 되물어보았다. “뭐라고요? 다시 말해줄래요?” 그러자 이는 비슷하지만 조금 더 진심을 담은 답을 내놓았다. “광고 일하는 거 재밌어요.”


각양각색의 답변이 나왔으나 뚜렷한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 모두가 광고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 광고인으로 살아갈 다짐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만이 E사에 온 목적이 달랐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고 싶은데 여건상 그건 불가능했고, 그래서 적절한 줄타기를 할 수 있는 수단으로써 E사를 선택한 것뿐이었다. 광고에 대한 애정도 그들만큼 아니었고, 게다가 이쪽에 별 재능도 없었다. 이 사실들을 몰랐던 것도 아니었다. B사에서 인턴으로 지냈을  이미 한번 깨우쳤던 것이다. 그런데 왜 또 광고 업계에 발을 들였던 걸까. 학습 능력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동료들의 답변을 참고삼아 E사를 보다 잘 다니려 했으나 도리어 다른 결심이 섰다. 나는 E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동료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들과 다르구나. 그렇다면 내 행보 또한 그들과는 달라야 하겠지.


정규직 자리는 확실히 달콤했다. 보는 것도, 배우는 점도, 보람을 느끼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이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내 일상을 헌신하면서까지 일하는 건 도저히 내 취향에 맞지 않았다. 너무 애 같은 발상인가? 안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지금 나는 행복하지 않는데. 그것만으로 E사를 떠날 이유가 충분히 됐다.


나는 E사를 나가기 전 로드맵을 그려보았다. 그 결과, 세 가지 계획안이 나왔다.


1안 – 이직하기.

2안 – 작가 데뷔하기.

3안 – 다시 프리랜서 일감 찾기.


세 안 모두 쉬운 길은 아니었다.


1안 ‘이직하기’는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헤아리기 어려웠다. E사에 오래 있지 않아 경력직으로 옮기는 건 무리였다. 그렇다면 신입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건데, 과연 누가 나를 뽑아줄까? 대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들을 이길 수 있는 나만의 경쟁력이 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나마 다섯 개의 회사에 다녀본 경험이려나? 오히려 끈기없다고 싫어하지 않을까? (대체로, 내 의지로 퇴사한 건 아니었지만.) 그보다도 E사를 재직하면서 이직 준비를 할 시간이 있긴 할까 싶었다.


2안 ‘작가 데뷔하기’는 더더욱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였다. 몇 개월간 글을 아예 안 쓰고 있었다. 지난 번 프리랜서를 하면서 틈틈이 써둔 글이 많긴 한데 데뷔할 만큼 정교하고 뛰어나지 못했다. 출판사에 투고하려면 많은 부분을 뜯어고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1안과 비슷한 고민이 2안에서도 들게 된다. 내가 E사를 다니면서 글을 고칠 시간이 있을까? 음, 절대 없으리라. 이건 확신할 수 있었다.


3안 ‘다시 프리랜서 일감 찾기’는 셋 중 제일 가능성 있는 안이었다. 하지만 장담하기는 어려웠다. 전에 내게 일감을 물어다 준 여러 회사와 또 함께 일할 수 있을지가 미지수였기 때문이다. E사에 입사했을 때 나는 E사의 겸업 금지 조항에 따라 계약했던 모든 외주 일을 취소했다. 계약 해지를 강행한 내 행동은 도의적으로 옮지 못했다. 이런 내게 또 일감을 줄까? 사정사정하며 일을 다시 달라고 부탁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회사를 찾아 일감을 받거나. 둘 중 하나였다.


세 안 까다롭지만 실행 기간을 대략 3개월로 잡았다. 그 기간 동안 저 세 가지 안 중 한 가지 안을 성사시키고자 했다. 왜 굳이 3개월이냐 묻는다면 그 이상이면 내가 과로로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E사를 더 오래 다닐 자신이 없었다.


E사 재직 중 다른 길을 모색하는 거냐고, 또 다른 질문을 혹여 던진다면 이건 단순히 내 기호에 의한 것이리고 답하겠다. 어떤 결론이라도 내리고서 퇴사하고 싶었다. 사직서를 내미는 손이 당당해야 할 것이 아닌가. 앞날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달달 떨리는 건 좀 꼴사나웠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 앞에서도 당당해지고 싶었다. E사를 소개해준 라 선배님한테도, 정규직이 되어 기뻐하는 엄마한테도 말이다. ‘그냥 퇴사했어요.’라는 말보다는 ‘저 퇴사했는데 그다음에 이런 일을 하려고 해요.’라는 말이 더 신뢰가 가지 않는가. 이렇게 뽐내듯이 퇴사 통보를 한다면 주위 사람들, 그중에서 특히 엄마가 환한 얼굴을 보일 것이다. ‘넌 다 계획이 있었구나!’라면서.


하지만 알고 있었다. 내가 지나치게 큰 희망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아무것도 못 성사시킬 가능성이 컸다. 솔직히 체면을 세우기는커녕 창피만 당할 수도 있었다. 벌써 약하게 굴고 싶지는 않았지만 자꾸만 내가 실패한 이후를 상정하게 되었다. 내 퇴사를 가장 안타깝게 생각할 이는 누구일까. 이 또한 당연히 엄마일 것이다. 엄마는 또다시 가라앉은 목소리로 여러 질문을 내게 던지겠지.


 ‘왜 그랬어. 정규직인데 왜 떠났어. 조금만 더 참아보지. 이제 뭐 하고 살 거야. 또 취업 준비할 거야? 아니면 또 프리랜서 일 구할 거야?’


 무엇도 이룩하지 못한 나는 어떠한 명답도, 변명도 꺼내지 못하리라. 고해성사하듯이 답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미안해요. 또 실패했어요. 다섯 번째 회사인데도, 정규직으로서는 첫 직장인데도 나가게 됐어요. 퇴사하기 전에 여러 가지 시도도 해봤는데, 다 잘 안 됐어요. 아무래도 저는 글러 먹은 놈인가 봐요.’


 나는 나의 못남을 솔직히 시인할 테다. 그러면서도 이 말을 꼭 덧붙일 것이다.


 ‘하지만 계속 노력할 거예요.’


 나만의 중심을 잡기 위해 갖은 애를 써보겠노라고, 모든 것이 불안정하여 앞날이 안개가 낀 것처럼 불투명하더라도 그 속에서 나의 길, 나의 행복을 집요하게 찾아보겠노라고. 그리 답할 것이다. 그 대답은 진심이기에 나는 실패한 이후를 너무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우선은 E사 퇴사 전에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볼 생각이었다. 그다음에 고해성사를 하는 건 늦지 않을 것이다.

이전 22화 22. 블랙 기업의 장점 2가지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6번의 퇴사와 7번의 입사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