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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진우 Sep 01. 2022

24. 우당탕 이직 준비기

다섯 번째 회사 : 광고회사 E사(4)

 이직하려는 회사는 두 군데로 좁혔다. 두 회사 다 내가 평소 관심을 많이 둔 회사였다. 그리고 대행사가 아닌 브랜드사였다. 일의 강도를 고려해 선택한 방향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이 이유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상성 문제도 있었다. B사를 다녔을 때부터 느꼈던 건데, 광고대행사와 나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묘하게 겉도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워라벨이 좋다는 곳이 있다고 해도 지원 대상에서 아예 대행사는 제외했다.


 E사 업무로 너무 바빠서 한꺼번에 여러 회사에 지원할 여유가 없었다. 두 회사 중에서 제일 가고 싶은 회사부터 지원하기로 했다.


해당 회사는 F사로, 채용 전형이 다소 빡빡한 곳이었다. 서류 – 과제 - 1차 면접 - 2차 면접 - 3차 면접, 무려 5차 전형이 있었다. 과제도 해야 하고 면접도 세 번이나 봐야 한다니. 도저히 내가 소화할 수 없는 일정이었다. 골머리가 아팠지만 일단 서류부터 냅다 접수했다. 나중 일은 나중의 내가 알아서 해결해주겠지, 라는 믿음을 무책임하게 가져보면서 말이다.


그 믿음은 접수한 지 이틀 만에 내게 고스란히 돌아왔다. 생각보다 서류 발표가 빨리 나왔다. 그래서 합격 메일을 받았음에도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합격을 축하한다는 문구 바로 밑에 과제 전형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F사의 과제 전형은 조금 독특했다. 바로 과제를 내주는 게 아니라, 내가 요일을 정하면 해당 날에 구체적인 과제 내용을 알려주는 것이다. 마감 기한은 24시간. 그러니까 하루 이내로 과제를 완성해서 F사에 보내야 했다. 이른바 시간제한이 걸려 있는 실기 시험이었다.


F사 인사팀과의 조율 끝에 이번 주 토요일 오후 1시에 과제 내용을 받기로 했다. 다행히 E사에서는 주말 출근을 하란 소리가 없었다. 주말 내내 과제에 매진하면 될 것 같았다. 편안한 마음으로 금요일 날 퇴근했다.




 드디어 토요일 아침이 밝았다. 나는 오전 내내 마음을 가다듬었다. 책상 주위를 깨끗이 하고, 그래픽 프로그램을 미리 켜서 연습 삼아 다루고. 그러면서 F사 과제 메일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돌연 E사 메신저 알람이 떴다. 상사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O건으로 내일 오전에 출근해야 해. 다들 내일 보자.]


 머리가 멍했다. 내일 출근하라고? 이렇게 갑자기?


사실 이렇게 일정이 변동되는 경우는 광고업계 특성상 흔했다. 느닷없이 전날 저녁에 주말 출근을 통보받거나 당일 날 철야 작업하기를 요청받거나 해왔다. 그러니 새삼 놀랄 일도 아니었으나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내일까지 내내 과제에만 매진하려던 내 계획에 이상이 생겨버렸다.


 어쩌지, 휴가를 낼까? (근데 주말인데 연차를 낼 수 있나?) 아프다고 할까? (그럼 병원 갔다 오고 나서 출근하라고 하지 않을까?) 도저히 빠질 수 없는 약속이 있다고 할까? (이 경우도 약속한 일 끝내고 나서 출근하라 할 거 같은데...)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상사에게 알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멍하게 앉아만 있는 사이, 시간은 흘러갔고 약속한 1시가 됐다. F사 과제 메일이 도착했다. 나는 아연한 느낌을 뒤로 하며 메일 전문을 꼼꼼히 읽었다.


과제 내용에 따라 작업을 시작했다. 점심과 저녁 시간대에는 어젯밤 미리 편의점에서 사둔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그렇게 시간의 낭비를 줄이며 오로지 작업에 매진했다. 내일 아침만 생각하면 다시 패닉에 빠질 것 같았으나 그럴 때마다 B사 때의 일을 떠올렸다.


B사 인턴생활 중에도 다른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고, 그때도 갑작스러운 일정 변동이 일어나 혼란스러워하지 않았는가. 끝까지 정신 못 차리고 채용 전형에 임했다가 귀중한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이번에는 그런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작업 도중에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걱정을 차분히 가라앉히려 들었다. 휩쓸리지 않고 하나하나 답을 내리며 해결해나갔다.


 내일 오전에 작업을 못 하게 되어서 걱정이라고?

 그럼 최대한 빨리 하자. 밤을 새우면 남들보다 부족한 시간을 상쇄할 수 있겠지.


 밤을 새우면 내일 출근은 어쩌게? E사 업무에 집중을 하나도 못할 텐데?

 어차피 밤을 새우지 않더라도 집중을 못 할 거야. F사 과제를 대충하고 내버렸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 테니까. 뭘 해도 E사 업무에 집중을 못 할 거면, 그냥 지금은 F 과제에 충실히 하자.


 어르고 달래듯이 자문자답하며 밤을 새웠다. 마침내 새벽녘에 두 개의 시안은 완성할 수 있었고 시간 내에 F사에 제출할 수 있었다. E사 출근할 시간이 다가오자 부랴부랴 얼굴만 씻고 지하철에 탔다.


 밤을 꼴딱 새운 상태였으니 당연히 E사 업무에 집중을 못 했다. 사무실에 도착하고 나서도 자꾸만 눈꺼풀이 내려앉고 고개가 까닥 움직여졌다. 주위 상사나 동료한테 눈치가 보였고 미안했다. 한편,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뭐, 어쩌라고. 지금 일요일인데! 내가 출근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게 여겨!


 퇴사를 결심한 이후, 나는 전보다 많이 뻔뻔해졌다.


 주말을 지나고 나서 며칠 뒤, F사에서 메일이 왔다. 과제 합격을 축하한다는 내용의 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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