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에서 7시 반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전하는 그와 그녀들의 이야기를 담아요.[브런치 스토리 연재글 "유연한 정체"]
"말도 안 하고 부쉈어요."
"같이 놀기 싫은데, 들어왔어요."
"엄마 아빠 언니 오빠 써 주세요."
"쉬, 쉬, 쉬아. 마려워요."
"부수지 않아."
"물어보고 사과하기."
"나눠서 함께 놀기."
3시에서 7시 반 어린이집 연장 보육 시간이다. 블록을 세우다 보면 너도나도 블록이 모자라고 함께도 놀고 싶고 색칠을 하려니 편지가 되고 싶고 삼십 분 안에 화장실을 세 번 가고 싶고 부수고 나서 부수지 않아 하는 선생님 말을 따라 하며 복기하고 같이 놀고 싶으면 참여 의사를 밝히라고 물어보고 사과하기 복기하고 놀잇감으로 함께 시간을 갖는 시간이니까 나눠서 함께 놀기라고 다시 선생님 말을 알아서 따라 하는 작지만 큰 주장이 될 작은 이야기.
작은 목소리로 표정을 한껏 담는 3세는 그래서 큰 주장으로 다가온다.
원안의 그것과도 같은 표정을 우리는 언제부터 지웠는가 아니면 지워졌는가 싶게
그 표정과 제스처가 큰 주장이다.
4세만 되어도 그 표정과 제스처가 강도가 다르다.
손 모아 표정모아 제스처를 만들어 쉬. 쉬. 쉬아 마려워요 하는 3세의 표정이 없이 우리는 살고 있다.
어린이의 세계는 3세까지인가 싶게 다시보기하는 이 아이들의 원류의 모습이 금방 지워지겠구나.
그때는 못 보고 할머니의 심정 같은 이때가 되어서 다시보기가 되는 그러나 책임양육이 100퍼센트인 부모가 또 된다면 이 심장과 그 심장은 심정이 많이 달라야 할 수 있다.
어
렵
다
쉽
지
않
다
하지만, 전쟁 중에도 일을 하러 나간다고 계속 사는 것이라고 했다잖아.
최정훈의 노래로 아, 이렇게 똑 떨어지는 태는 어떻게 만들었는가 생각하며 노래를 오감으로 듣는다.
타고나는 기질과 상호작용하여 생기는 조합들... 이 무서운 무게감의 단어의 조합을 가볍게 해야겠다.
재즈와 악학궤범 60조와 무예인문학과 어쩌다 마주친 발레와 독립영화 인터뷰집으로.
한 군데만 응시하다 보면 시야가 흐릿해지고 관점이 고정되며 가질 상이 고정되어 관상을 읽힌다.
예술 아카이브 목록에서 뽑아온 책들로 다양한 소재와 주제와 책의 형식으로 읽히지 않는 관상으로 살아가고 싶다.
관성의 사고를 지닌 관상으로 대하지 않고 생각하고 대하고 그렇게만 하고 싶다.
우선. 책 속으로 피서 피어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