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
한 번은 병실에서 엄마는 말똥말똥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궁금하다고 묻기에 구글에 검색해 보다가 정보가 시원찮아 국립국어원에 물어보았고, 그마저도 마땅한 대답을 해주지 않아 병실을 비우고 국회도서관에 가서 우리말대사전을 펼쳐 들었었다. 결국 정확한 유래를 찾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어원을 거짓말로 지어내 엄마에게 정성을 다해 설명해주었었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엄마의 마음을 놓치는 일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의 죽음이 덜 슬플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건 아니었다. 어쩜 나는 슬픔에 쉽게 매몰되는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어쩐지 나라면, 혜란이라면 석이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14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길 때마다 항상 돌아오지 못한 길로 들어서고야 마는 것은 나의 정해진 패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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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을 치른 지 이제 3일째가 되었다. 이틀은 죽은 듯, 아니 기절한 듯 잠만 잤고 너무 많이 잤는지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10
당연히 내 안부를 물을 줄 알았던 혜란에게서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석이와 실종이라는 단어 사이의 간극은 멀고도 먼 것이었으므로 한참이나 혜란의 말을 곱씹어야 했다. 석이같이 건실한 사람이 그럴 리 없다. 석이같이 보편적인 행운을 단단히 쥐고 있는 이가 그럴 리 없다. 10
휴대폰에 기록된 마지막 위치는 프놈펜 국제공항이라고 했다. 11
문제에도 층위가 있는 법이다. 어떤 사소한 문제는 나를 완전히 망가뜨릴 수도 있으며 어떤 대단한 문제는 나의 마음에 티끌 하나 묻히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12
불가능할 것 같은 일에 매달리는 것. 출구 없는 불행에 몸을 던지고 보이지 않는 희망에 마음을 내맡기는 것. 그것이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13
책, 영원에 빚을 져서
어제는 이 소설을 읽는 휴가날이다
오늘은 우리가 열 번을 나고 죽을 때를 읽는 날이다
만약 이 스마트폰이 꺼진다면 이 길을 찾아 이 곳에 있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인 위치의 숙소라, 오며 가며 위치를 아니, 표지판과 그 상관관계로 동서남북 방향을 익히다
큰 건물은 많지 않고 해변 이름과 표지판과 방향을 인지해야 한다. 오키나와는 참 자동차와 스마트폰이 반드시 켜져 있을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장담했나 싶을 만큼, 이번에는 혹시 모를 오작동의 사태 등이 걱정돼서.
지하가 넓게 있다는 오픈런 카페 독서로 그 블로그상의 스타벅스에 간다고 갔는데, 정확히 그 지점이 아닌 다른 지점에 도착해, 주차공간도 비어 있고 더 이상 운전대를 잡기 싫고 아침 독서를 오픈런이 아닌 열 시가 다 된 시점이며 휴가지로 명성이 높은 곳이라 사람들이 많이 오는 시간대가 되긴 전이니 사람이 많아지면 나오기로 마음먹고 얼른 들어가 첫째가 휴가 선물로 보내준 스타벅스 라테 스콘 쿠폰으로 핫 밀크티 톨사이즈로 베이글과 주문해 먹으며 책, 영원에 빚을 져서를 다시 보다가 넷플릭스로 이로운 사기를 보다가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생각 없이 노트북에 영원에 빚을 져서의 페이지를 첫 장부터 재독해 필사를 해보다가 돌아보니 사람들이 80퍼센트 테이블에 차서 짐을 빠짐없이 챙기는데 나가실 거예요 하며 눈웃음으로 이야기하는 이의 말에 네하고 웃으며 응수하고 물건을 챙기고 남은 밀크티 한 모금을 마시고 쟁반을 들고 일층으로 내려가 반납대에 분리 반납을 하고 예매한 메가박스 영화를 보며 이게 울 일인가 할까 봐 끝에 나오는 눈물을 도로 집어넣고 커피 그라인더와 필터는 있는데 없는 드리퍼를 사야 해 하고 메가박스를 찾다가 본 다이소에서 산 드리퍼를 설거지 해두고 휴가지에서 두 번째 소설을 낭독해 읽다가 넷플릭스로 이로운 사기를 보다가 길가에서 파는 찐 옥수수 네 개, 떡볶이 밀키트 반 봉지, 맥주 한 캔에 부른 배로 인해 다시 소설책을 들고 왔다 갔다 방을 거닐면서 소설을 읽는다 그야말로 낭독해 탄수화물을 소비해 보다.
수요일은 비가 많이 온대니, 내일은 고향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고 바다를 보고 오늘 찾은 소설은 그전에 다 읽고 내일 그 책방에 2년 만에 다시 가 다른 소설 한 권을 찾을 계획이다.
그러면, 삼일의 휴가동안 세 권의 소설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