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어 치워버리라구."
제이가 패티가 2개나 들어간 두터운 치즈버거를 우걱우걱 씹으면서 말했다.
"그런 일 따위 하지 않아도 되잖아. 차라리 매일 아침 나와 서핑 연습을 하는 편이 확실히 나아 보여."
제이는 연속적으로 입 안을 오물오물거리고 있지만, 입 안에 쑤셔 넣고 있는 버거를 소화하기엔 너무나 부족해 보인다. 아니, 그것은 부족한 운동량 문제가 아니다. 그녀의 입은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수준에서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그저 투입량이 과한 것 뿐이다.
하지만 제이는 그것도 모자라, 바삭하게 튀긴 감자튀김을 들고 케첩을 듬뿍 담가서는 또다시 입 안에 쑤셔넣는다. 제이는 쉬지 않고 자신의 입을 학대하고 있다. 제이가 오물거릴 때마 그녀의 입술이 도와달라고 나에게 속삭이는 것 같다. 나는 그녀가 입에 음식물 넣는 것을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제이, 네 입이 도와달라고 말하고 있어."
제이는 씹던 행위를 멈추고, 멍하니 나를 바라본다.
그녀가 이해하지 못하므로, 나는 좀 더 사실적으로, 평균적인 인간에 가깝게 그러니까 직설적인 방식으로 그녀에게 말한다.
"네 입이 곧 찢어질 것 같다고(외치고 있다고)"
그제야 제이가 웃으며 하이파이브 자세를 취한다.
나는 마지못해 손바닥을 들어 그의 손바닥과 마주친다. 제이가 하늘색 파도와 서퍼가 그려진 맥주, 빅웨이브를 들고 목을 축인다. 빅웨이브가 제이의 목구멍을 넘어갈 때마다 다운 카운트를 세는 심판의 손짓처럼 그녀의 작은 목젖이 꿀렁인다.
'원..투...쓰리...포....'
마시는 동안 잠시 전쟁은 중단되겠지만, 맥주는 곧 윤활유 역할을 할 것이다. 제이는 더욱 폭발적으로 먹고 마시게 될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지금은 잠깐이나마 제이의 입에 휴식이 찾아왔다. 그녀의 입이 오물거리며 고맙다며 나에게 속삭인다.
"그러니까 정리해 보자. 엊그제 너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급작스레 유산 정리를 마치러 한국에 가야 한다?"
내가 고개를 끄덕인다.
"유산이 얼마나 되는데?"
나는 어깨를 으쓱 들어 보이며, 입을 삐쭉인다.
갑자기 제이가 진지한 얼굴로 나에게 말한다.
"지루할 만큼 충분한 재산이 나는 뭔지 알아."
나는 제이가 뜬금없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조금 알 것도 같지만, 명쾌하게 와닿지는 않는다. 제이가 또다시 말을 잇는다. "지루할 만큼이란 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지. 충분하게 재산이 쌓이는 만큼 반대로 의욕도 목적도 고갈되어 버려. 하지만 이건 상대적인 거야. 나는 지루하지만. 내 가족들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제이가 나에게 무엇을 어필하고 싶은 것인지 생각해 본다.
그녀가 말을 잇는다."정말로 인생은 초콜릿 상자 같은 거라니까. 뜯어보기 전까지 무슨 맛일지 모르는... 한번 뿐이니까, 지루하게 살지 마. 매일매일 새롭게 말이야. 푸드 팬트리에 네 인생이 있는 건 아니야. 나오코가 안쓰럽긴 하겠지만, 난 사실 네가 더 안쓰럽거든."
나는 고개를 들어 창 밖으로 펼쳐지는 석양을 바라본다. 관광객들이 해변에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태평양 하늘이 만들어내는 찬란한 쇼를 기다린다. 그들이 사는 곳에도 하늘이 있다. 이 곳의 하늘은 그저 좀 더 진하고, 화려하고,역동적이고, 모든 면에서 극적일 뿐이다. 굳이 다른 점을 찾으라면 아마 하늘과 나의 눈 사이에 가림이 없다는 정도랄까. 하지만, 이 곳의 석양은 확실히 다르다. 누구나 같은 재료로 같은 주제의 그림을 그릴 수 있지만, 월등히 다른 감동을 주는 걸작이 존재하는 것처럼.
구름과 바다, 하늘과 해, 사람과 배, 파도와 야자수, 은은한 조명과 하늘로 울려퍼지는 하와이안 뮤직까지. 매일매일 같지만 다른 장면을 만들어 낸다. 나도, 제이도, 하나의 요소가 되어 오늘의 극적인 장면을 성공적으로 연출 해내고 있다.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극적인 순간을 연기하며 영원히 행복할 것이라 생각한다.
"다녀와. 한국으로."
제이가 무언가 생각난 듯 신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내가 함께 가주지. 블랭핑크의 나라. 한번 가보고 싶었으니까. "
저 멀리서 원주민들의 저녁 공연이 시작된 듯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커진다. 나에게는 익숙한 우쿨렐레 기타의 멜로디가 하늘을 향해 총총 쏘아진다. 하늘에는 차츰 빛이 사라지고, 빈 공간을 공허한 어둠이 빠르게 다가와 채운다. 거리의 가스 횃불등이 일렁거리며 짙은 어둠의 공허함을 가리려 애를 쓴다.
일주일 후, 나는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