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내가 가고 싶은 곳
어릴 적 내 고향에서 서울 가는 방법이라야 기차, 고속버스밖에 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근처에 뚫린 호남고속도로가 겨우 편도 1차선으로 운영되고 있던 그 시절, 고속버스 회사는 세상에 광주고속밖에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어렵사리 올라간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는 여태 보지 못한 수많은 이름의 고속버스가 존재한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 겨우 중앙고속이 몇 대 투입이 되었고 그렇게 겨우 두 회사로 구색을 맞게 되었습니다.
우리 도시가 시골은 시골인가 보다 싶었지만, 버스회사만 탓할 수도 없는 이유는 수익이 나 주어야 여러 회사가 투입하게 될 테고 하다못해 증편도 할 텐데 기껏해야 인구 15만이 조금 넘는 소도시에서 여러 회사가 경쟁하는 건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 분명합니다. 21세기가 되어 약간의 인구 증가가 이루어져 30만을 넘겼다가 다시 인구의 감소를 감수해야 하는 내 고향, 많은 수의 국민이 자차로 움직이는 현세대에서 기존의 고속버스 회사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저도 잘 모릅니다.
요즘 저부터도 차를 가져가기 힘든 상황에서 고향에 갈 일이 생기면 먼저 KTX를 이용합니다. 다행히 역이 있는 곳이다 보니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빠른 거야 두말할 나위가 없고 지연될 걱정이 없습니다. KTX가 문명의 이기(利器) 임은 분명한데 지역의 형평을 맞추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필요한 곳마다 모두 철로를 깔 수도 없는 일이요, 열차를 증편하는 일도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기존의 철로는 비둘기호나 통일호처럼 각각의 역마다 일일이 세워줄 수도 없으니 말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비행기를 타는 일도 상황은 비슷해 보입니다.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제법 먼 거리를 움직인다는 뜻이요, 더 나아가 외국까지 나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외국에 나간다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던 시절, 가보고 싶은 데가 많은 시절을 넘겼지만 이제 형편이 좋아졌다 해서 생각처럼 쉽게 여기저기 나갈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공항도 터미널이나 기차역의 수익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매출이 좋아야 비행기의 출항 횟수도 좋아집니다.
저 같은 경우도 직장에 구애받지 않는 은퇴 시기가 되면 가벼운 마음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을까요? 물론 건강이 허락한다는 전제조건이 해결되어야 하는 만큼 요사이 나름대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유럽도 가고 싶고 남미나 북미도 가고 싶습니다. 아마 모든 형편이 좋다면 못 할 바는 아니지요. 활동적인 사람처럼 순례길도 걷고 야영도 하면 좋을 텐데 솔직히 아직 거기까지는 엄두가 나진 않습니다.
길이 많이 뚫리고 교통수단도 좋아지면서 행동반경은 그만큼 넓어지는 편리함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고 생각을 다듬을 수 있는 한적함은 상대적으로 적어졌습니다. 움직이는 거리는 줄더라도 하나하나 속속들이 내 눈에 담아둘 수 있는 풍경이 많아질수록 내 마음은 훨씬 풍족해지리라는 믿음은 아직 살아있습니다.
목적지가 아주 먼 곳에 있다면 거기까지는 문명의 편리함을 충분히 누릴 것! 도착한 후의 여유로움은 내 발길 닿는 대로 누릴 것! 내가 바라던 바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