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보낼 준비를 합니다.
계절을 맞고 보내는 일은 마치 소풍을 기다리고 보내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지내는 중입니다. 특별히 내가 좋아하는 계절을 맞이하고 보내는 일은 더욱 그러합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이 1월이요, 이쯤 되면 서서히 겨울을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영상이나 사진으로 보는 눈 덮인 산이나 들이며 눈이 펑펑 내리는 풍경이 서서히 어색한 시기라는 말과 같습니다. 소한과 대한이 지날 때쯤부터 우리 마음은 벌써 입춘과 우수, 경칩을 기다립니다.
이렇게 소소한 감정은 어디 겨울뿐이겠습니까? 매계(每季)가 다 그러합니다. 굳이 다른 점이 있다면 기대하느냐? 아니면 단단히 채비하느냐? 차이일 것입니다. 젊은 날, 누군가 지나가는 말로 여름과 겨울의 호불호(好不好)를 물으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겨울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여름은 땀이 많고 꿉꿉해서 싫어! 몸이 비대하다 보니 여름이 싫은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냥 겨울이 되면 옷을 단단히 입으면 될 일이야! 그렇게 나를 학습시키며 젊은 날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싫으냐는 질문에 대한 단순함 때문이지 겨울이 딱히 좋은 건 아니었습니다. 춥디 추운 겨울이 좋을 리가 있겠습니까? 이른 아침 문밖을 나오면 코끝이 약간 쨍한 기분 좋음도 잠시일 뿐, 어릴 적 처마 끝에 줄지어 걸린 고드름을 보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한 그런 계절이지요. 이렇듯 겨울은 열매를 다 거두어들인 마무리, 입었던 푸른 잎마저 다 내주어야 하는 나무들의 허전함을 우리에게 똑같이 강요합니다. 그렇습니다. 느낌으로만 놓고 보아도 겨울은 그다지 통통 튀는 계절은 아닙니다.
동남아를 여행할 적마다 저는 그들의 상하(常夏)에 늘 부러움을 느끼곤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참 복 받은 사람들이로구나 싶을 정도로 요즘은 여름이 정말 좋습니다. 차라리 습하고 끈적거림 정도는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데에는 에어컨의 발달과 보편화 때문이겠지만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해도 이제는 자신 있게 대답합니다. 지금은 겨울보다 여름이 더 좋아!
이쯤 되면 서서히 제 생각이 정돈되기 시작하시지요? 좋아하는 계절도 입추를 넘어가며 아쉽기 시작하고, 달갑지 않은 계절도 입춘을 넘어서면 서서히 기대감으로 차기 시작합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제가 좋다, 싫다고 말하는 그 감정 안에도 아쉬움과 기대감이 늘 공존(共存)합니다. 그러니 내 삶에 100%의 순도(純度)를 나타낼 만한 상황은 아예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만하거나 안주(安住)할 이유도, 완전히 포기하거나 절망할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세월이 흐르고, 작게는 시간이 흐르고 나면 내가 처한 상황이나 감정이 아무것도 아님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지나고 나면 아무 일도 아니요, 지금 누리는 행복도 유한(有限)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산다면 내게 허락된 삶을 가볍게 살 일은 없을 터입니다. 동남아의 기후를 부러워하는 그 뒤에 느끼는 감정은 이러합니다. 저들도 우리네 눈 내리거나 눈 쌓인 풍경이 부러울 테지! 그들도 상하(常夏)의 날씨가 못마땅할 때도 있을 거야!
조금씩 생각의 유연함을 부릴 때마다 마음이 편안한 그런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