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욱곤 Sep 25. 2024

나문네 집? 아니 남훈네 집

어릴 적 구멍가게의 이름

(이미지출처:hao atelier) 딱 이런 느낌이었지요.



어릴 적 살던 집 앞의 골목을 나와 중간길 오른쪽으로 나가면 언뜻 보아도 조그마한 구멍가게가 하나 나옵니다. 내가 태어날 때쯤 되었나? 아니면 그 이전부터였을까? 아무튼 그 동네에 새로 생긴 신작로에 연결된 도로에 자리 잡았으니, 지금으로 치면 편의점 정도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던 셈입니다. 우체통이 있는 곳이니 당연히 우표도 팔았고 담배도 팔았으며 한참 나오기 시작하던 모기향이나 에프킬라도 준비해 놓았으니 잡화점 축소판 정도는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집을 ‘나문네 집’이라 불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변변한 간판도 없는 데다, 가게를 여닫을 때 사용하던 미닫이 방범용 문의 함석판에만 살짝 쓰여 있던 가게 이름조차 페인트가 벗겨져 당최 알 수 없는 지경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초등학교 4, 5학년이 되어서야 알았지만, 우리 동기인 조승연이 가게를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것을 보고 나서야 그 가게가 승연이네 집임을 알게 되었고 때마침 아버지께서 어머니와 대화 중에 “어른들이 나문네 집이라고 하니까 애들도 덩달아 나문네 집이라고 하네? 좋은 이름이 없나?” 그제야 모든 가닥이 잡혔다고나 할까요, 그 집주인이 다름 아닌 조남훈이라는 어르신이었고 승연이 아버지 존함이었으며 그렇게 나문네 집이 아닌, 남훈네 집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번 내 맘에 박힌 남훈네 집이라는 이름은 내 나이 60이 넘어도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추억을 이야기하고 근처의 랜드마크(landmark)를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남훈네 집은 그 역할을 굵직하게 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관념대로 ‘어디, 어린것들이 어른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대느냐?’는 사람도 없었고, 아이들도 죄송스러운 마음을 가진 적도 없을 정도로 고유명사가 되었습니다.
 
 언젠가 고향에 들렀다가 차를 타고 지나면서 근방을 둘러본 적이 있어요. 점빵은 없어진 듯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기능을 편의점이나 다이소가 대신하고 있으니 이 정도의 품목으로 대를 이어할 정도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내 추억과 기억을 위해서는 주인이 바뀌더라도 남아 있는 게 좋습니다만, 어차피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품목이라면 바뀌고 변하는 게 맞는 말입니다.
 


 이렇듯 우리 5천만 백성들의 어린 시절은 다양한 장소와 사람과 시절이라는 기억으로 채색된 그림책 한 권쯤은 만들어져 있겠지요. 그것이 비록 흑백으로만 채색되어 있더라도 절묘하게 명암의 대비만으로도 우리의 어린 시절은 내내 빛이 날지도 모릅니다. 어린 시절 내 그림책에는 어떤 친구가 살아 있고 남아 있을까요? 그 친구들은 지금 무엇을 하며 지낼까요? 걔들 추억에 과연 나도 남아 있을까요?     


내가 살아가는 지금 시간과 순간과 장소도 지나고 나면 또 다른 추억으로 남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지금까지도 전국의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네 집’으로 불리는 추억 보따리에 마음 깊은 데에서 나오는 따스함을 더합니다. 오래오래 남아서 그것을 기억하는 단 한 사람만 남더라도 그의 마음에 온기를 전해주면 좋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