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를 읽다.
노트와 펜을 가지런히 놓고 빈 노트를 가만히 노려보고 있습니다. 그냥 노려만 보아도 눈에서 레이저가 나와 종이에 박힐 일도 아닌데, 마치 제단에 놓인 제물을 바라보듯 그윽하게 바라보면 글이 써지기라도 할 듯한 모양새입니다. 하긴 글을 쓰는 일이 뭔가를 찍어내듯 뚝딱 써지는 일이겠습니까? 생각해야 하고 생각이라는 밭에는 다양한 책과 경험에서 얻은 씨앗을 뿌려야 하며 그것을 쓰기 위해 손을 움직이고 마음을 다듬는 과정을 거쳐야 가능한 일입니다. 요즘 들어 글 쓸 시간이 되었다고 브런치에서 성실하게 알려주곤 하는데 사실은 내 글 창고에는 글이 없어 바닥만 보입니다.
글을 쓴다는 일은 계절로 치면 겨울과 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글을 하나씩 완성할 때마다 꽃이 피어난다고 해도 될 일입니다. 예쁘고 화려하게 피면 피는 대로, 그냥 수수하면 수수한 대로 여름을 맞고 가을을 맞지만 추수하고 과실을 모두 거두고 난 후 소비할 일밖에 없는 겨울 마냥 탈고하고 난 다음의 글 창고는 참 허전하기 그지없는 몰골을 하고 있지요. 이렇게 글을 쓴다는 일이 내게 과제가 되고 숙제가 되는 게 싫어 게으르고 뒤척거리는 일에만 부지런한 요즘입니다.
하긴 저처럼 본업이 따로 있는 이들에게는 일 핑계를 댈 수 있으니, 전업 작가의 시각에서 보면 부러움의 대상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글의 소재를 찾아야 하고 글의 주제를 일관되게 이끌어 가야 하는 일은 그래서 힘들고 어려운 일임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어제는 중고 서적으로 얻은 책 중, 이 기주라는 작가의 “언어의 온도”라는 제목의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책의 목차를 보는 순간, 그 수가 300개를 약간 넘는 것을 보고 약간 숨이 멈추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헉! 이렇게나 많단 말이야? 다행히 바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게 다름 아닌 책의 두께 덕분입니다. 그 말은 하나하나 그다지 길지 않다는 말과 같은 뜻이기 때문입니다. 내용은 참으로 자상했습니다. 일상과 생각을 넘나들면서 그 중간 선상에서 써 내려간 듯한 내용들은 내 마음과 감정들을 미세하게 건들며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말을 주절주절 길게 늘이지 않아도 충분히 감성적이고 친절할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2016년 8월에 초판이 나오고 1년 3개월 후인 2017년 11월에 찍어낸 60쇄 판을 얻었으니, 이 책이 세상에 나온 지 다시 7년이 지난 셈입니다. 그럼에도 그만큼의 세월이 무색하리만큼 잔잔한 감동을 그대로 품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대단하지 않습니까? 궁금증을 참다못해 마치 시험 때 친구 답안지를 훔쳐보는 심정으로 작가의 프로필을 펼쳐보니 언론사 기자 출신이군요. 방금 소개해 드린 책도 밀리언셀러라고 하니 제 입장에는 늦어도 한참 늦게 책과 작가의 진가를 알아본 셈입니다.
내 생각 또는 내 글이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력을 끼칠 것인가? 이 명제나 화두는 내가 사는 동안 늘 내 주위를 감싸고도는 단 하나의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무심코 뱉은 말 한마디와, 별생각 없이 휘갈긴 문장이나 단어 하나가 사람 하나와 대중들에게 큰 파장으로 다가갈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 얼굴을 모르더라도 내 이름을 아는 것, 내 이름을 모르더라도 내 문장이나 글을 아는 것. 살다 보면 이런 일쯤은 언제든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을 것입니다. 며칠 전 제가 사는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안에서 있던 일입니다. 오다가다 자주 인사하던 27층 주민께서 제게 물었습니다. “병원에 근무하시죠?” 그렇다고 답하자, 병원의 안내판에서 제 사진과 소속을 보았노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사는 게 늘 이러합니다. 내가 알려주지 않아도, 내가 말하지 않아도 소소한 행동이나 말 한마디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늘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이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