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해 드려야 할까요?
유명 인사들을 기사로 다루다 보면 거의 빠지지 않고 언급하는 항목 중 하나가 출신학교와 출신 지역일 것입니다. 학연이나 지연, 혈연을 배제하자는 이야기는 상당히 해묵은 사안이지만 실제 대중들의 관심은 케케묵은 학연, 지연에 쏠립니다. 더 나아가 누구누구 집안이라더라, 이런 이슈까지 더해지면 이야깃거리는 점점 넓어집니다. 대개는 최종학력을 언급하기 때문에 학력인플레의 시대인 요즈음에는 대개 출신대학원 내지는 출신 대학을 이야기하며 최종학위까지 얘기하지만, 더 나아가 조금 더 범위를 넓히면 출신고교까지 진도가 나갑니다.
어느 학교 출신이라는 이 꼬리표는 그 사람을 이야기하는데 하나의 중요한 잣대가 됩니다. 그 학교에 입학하기 위하여 평소 얼마만큼의 노력을 기울였으며, 좋은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는 하나의 지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한 사람을 미화시키는 도구로는 출신학교만큼 좋은 도구는 없을 것입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명문고라는 꼬리표가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명문이라는 꼬리표가 달리려면 그다지 거창한 조건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서울대학교 입학생을 몇 명 배출했느냐? 아니면 사회 유력인사를 몇 명 배출했느냐? 정도입니다. 요즘은 하나가 더 붙었다지요? 의대 입학자가 몇 명이냐! 그도 저도 양에 차지 않는다면 치대, 한의대, 나아가 수의대까지 그 범위가 넓어집니다.
제가 졸업한 고등학교도 한때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날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도청소재지의 공립학교에 밀리고, 그렇다고 필요충분조건을 만족할만한 인구수도 아니다 보니 이미 그 기개는 한풀 꺾이고 난 뒤였습니다. 이미 앞서나간 학교들의 탄력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고 있었습니다.
사실 명문고라고 평가할만한 명문화된 지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명문고라는 명성이 객관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평가하느냐? 고민하다가 궁여지책으로 적용한 것이 바로 ‘서울대학교 입학시킨 숫자’가 지표가 되어버린 게지요. 그렇다면 과연 서울대 입학생만 재능이 있단 말인가? 조금만 범위를 더 넓혀, 손가락 안에 드는 Top 10 학교나 의대 입학자만 재능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어떤 답을 내놓을 것인가 고민해야 합니다.
제 모교가 예전에 비해 그다지 명성을 날리지 못한다고 해서 부끄러움을 느낀다든지 반대로 옛날의 명성에 기대어 얼토당토아니한 자부심을 부리지도 않습니다. 설령 다른 사람들이 우리 학교의 이름을 몰라준다 해도 그냥 그뿐입니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해 준 고마운 곳이라고 생각하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지금 나에게 바라는 건 이것입니다. 부디 나의 행동이나 생각으로 인해 나를 길러낸 모교가 피해당하지 않으면 좋겠다. ‘좋은 인재를 길러내셨군요.’라는 형식적인 인사보다, ‘우리 사회에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진중한 사람을 길러내셨군요.’ 그런 덕담을 듣는다면 참 좋겠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조용히 한 구석에서 눈물 흘리며 감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는 졸업생의 입장도 그러하거니와, 내 자식에 대해서도 똑같은 감정을 가집니다. 내 자식을 보며 누군가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재목으로 키우셨군요.’ 이런 칭찬을 한다면 부모로서 귀하디 귀한 칭찬을 들었다며 감격할 것 같습니다. 이렇듯 내 모교는 나를 키워낸 부모와 같은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