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에게는 탁발(托鉢)이라는 두타행이 있다고 합니다. 어려운 말이 아닌 쉬운 말로 표현하자면 그냥 걸식입니다. 이는 일반인인 우리의 관점도 또는 속세의 관점도 아니요 상업적인 활동이나 생산활동을 할 수 없는 현실적 이유일 것입니다. 몇 년 전 강남역에서의 일입니다. 지하철에서 내려 목적지를 향하던 도중 사람이 붐비는 지하도에서 탁발하시는 스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연신 목탁을 두드리시며 불경을 읊조리기도 하고 배(拜)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애쓰는 그 모습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제 눈길이 머무는 동안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사실 요즘처럼 카드나 핸드폰 결제 시스템이 더 보편적인 세대는 주머니에 현금을 가지고 다니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설령 나에게 현금이 있다고 해도 선뜻 보시(시주?)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나에게는 타 종교이긴 하지만 당시 내게 현금이 있었다면 그냥 지나치지는 않았을 겁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수행하는 그 모습이 제게 울림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강남역의 수많은 인파에 비하면 소득은 별로 없었겠구나 싶어서 가는 내내 참 많은 생각을 주었던 에피소드였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I May Be Wrong)이라는 책을 저술한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라는 스웨덴 승려의 책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담히 적어 내려가고 있습니다. (169~172쪽) 할 짓이 없어 빌어먹느냐는 제목입니다. 똑같은 탁발을 나가도 태국의 그것과 영국 미드허스트라는 소도시에서의 탁발은 정반대의 경험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글의 제목은 바로 영국에서 당한 모욕적인 언사였습니다.
탁발이라는 같은 행위를 두고 문화, 종교의 차이라고 담담하고 당당하게 넘겨버리는 내면도 대단했지만 내게는 어떤 사물이나 행위를 바라보는 관점을 반드시 되짚어 보아야 한다는 교훈을 가르친 내용이기도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개신교인입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따르는 교리가 아니고는 당연히 생소하고 잘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불교, 이슬람교 등의 교인이나 성직자를 나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판단하는 일은 거의 하지 않을뿐더러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개신교 내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서로 교파가 다르다고 하여 반목하는 모습에 점점 신물이 나는 중입니다.
저는 젊을 때부터 일종의 신념 같은 게 있습니다. “교리 싸움은 신학자나 성직자가 하십시오. 성도나 교인에게 떠넘기지 말고!”가 그것입니다. 자기 교파에서 안수받은 목사는 타 교파나 이단에 쉽게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냥 일반 성도는 어찌 보면 그런 과정의 피해자일 수도 있습니다. 스님에게 보시하려 했던 제 결심에 분명 돌을 던지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제 마음은 불교로 넘어간다는 의미도 아니요 그저 수행하시는 분에 대한 존경심 정도라는 걸 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마저 이해하기 힘드시다면 나는 그저 앞서 언급한 비욘 나티고 스님같이 나를 스쳐 가도록 하면 될 일입니다.
(이미지 출처: 티스토리 "꾸준히합니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