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해환자가 수술한 날

by 김욱곤

수술실에서의 작은 사건

오늘은 오랜만에 수술환자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27세 여자 환자입니다. 손목의 깊은 상처로 인해 인대도 잇고 혈관도 손상된 부분을 봐주어야 하며 신경, 근육을 아울러 이어주는 수술입니다. 피부의 상처가 반듯한 걸로 보아 자해(自害)입니다.

과거력이 말해주듯 공황장애도 있고 우울증이 심해서 생긴 결과입니다. 안쓰럽기도 하고 그렇다고 활달하게 대해줄 수도 없기에 마취하는 제게는 조금은 답답하긴 합니다. 그저 의례적으로 필요한 말만 주고받는 그 사이사이가 그냥 적막입니다.

이런 분들은 그저 필요한 말만 해주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왜 그랬는지? 무엇 때문인지? 굳이 알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조심성 없이 대하는 것도 안 될 일임은 분명합니다. 그래도 수술 전에는 나름대로 관리도 잘 받고 필요한 약물을 복용하던 중에 생긴 일이라 마음이 좀 더 쓰였습니다.



학부 때의 또 다른 기억

또 다른 기억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본과 3학년 때의 일입니다. 이번에는 법의학 시간이었고 마침 부검해야 하는 일이 생겨 경찰의 허락을 맡아 참관하게 되었습니다. 나이키 운동화를 사 오라고 한 친구를 살해한 사건입니다. 폭력과 욕설, 운동화를 사 오라 다그치는 과정에서 가난한 집 아이가 폭력 아이를 그만 죽이고 만 것입니다.

우리 친구들은 죽은 아이보다, 죽여야 했던 아이의 심정을 헤아렸습니다. 꼭 그래야만 했을까? 그렇지 않고는 해결 방법이 없었단 말인가? 오고 가는 수많은 의견 뒤에는 그냥 돌아오지 못하는 아이와 벌을 받아야 하는 아이만 남아있을 뿐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오늘의 회상입니다.

이 나이쯤 되다 보면 참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무슨 지침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략이나마 이렇게 대해드린다는 지침은 스스로 서 있다고 자부는 합니다. 그런데 의사도 사람이라 나름의 지침이 잘 작동하지 않는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오늘이 그런 날입니다.



이를 계기로 묵상해 봅니다.

오늘 마음이 무거운 이유는 환자로 인함이 아니고, 내 주변에도 마음이 매끄럽고 부드럽지 못한 사람이 분명히 있을 텐데 내가 해줄 만한 배려나 행동이 생각보다 풍요하지 못할 수 있겠구나 싶어서입니다. 내가 가진 배려의 개수는 몇 개이고 무게가 어찌 될까? 세어보고 달아보고 싶어 졌습니다.

나에게서 나가는 위로, 내가 베푸는 따스함으로 타인을 품으면 좋겠는데 아직도 나는 받을 준비만 수십 년째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아린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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