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혈을 아시나요?

by 김욱곤

자주색 양말이라 하면 언뜻 젊을 적 KBS 개그 프로그램에서 하룡이 엉아가 신고 나온 양말이 생각나서 아침에 고민하면서 신었는데, 오늘 색깔 값을 톡톡히 했습니다. 동맥압을 재기 위해 동맥을 잡고 연결하는 동안 꼭 누르고 있어야 하는데 살짝 풀렸나 봅니다. 피 몇 방울이 크록스 신발 위로 좀 흘렀고 그 구멍을 통해 피가 양말에 묻었기 때문입니다. 색감이 비슷해서 별다르게 표시가 나지 않습니다. 다행입니다.

수술해서만 피를 보는 것 같아도 이렇게 모니터링을 위한 과정에서도 피를 봅니다. 중심 정맥을 잡는 과정은 그래도 조금 낫습니다. 이런 과정 과정을 아직 할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한 일이죠. 하지만 마취의 모니터링에 해당하는 모든 과정은 수술에 비하면 작은 과정에 속합니다. 수술의 종류는 정말 다양하고 그 범위 또한 천차만별이기에 그날그날 어느 수술에 배정되느냐에 따라 혈액이나 체액의 양 또한 결정되기도 합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가 인턴 때만 해도 채혈이라도 할라치면 모두 인상을 씁니다. 아픈 것도 그렇거니와 무슨 피를 그리도 많이 빼 가느냐고들 난리이지만 사실 많아야 10CC 정도입니다. 오늘은 책을 읽다가 1960-70년대에 매혈(賣血)하는 기삿거리를 보고 적은 단상을 읽었습니다. 기생충에 대한 기억, 일산화탄소 중독 등등 의사가 되고 나서 그 시절, 그 기사를 보는 느낌은 사뭇 다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시절 어린이 시절, 소년 시절을 견뎌 왔습니다.


헌혈이라는 이름 아래 자발적인 혈액 공급 시스템으로 전환되면서 혈액의 공급은 부침을 거듭합니다. 헌혈하는 인구도 많아졌지만, 수혈이 필요한 인구도 많아졌으며 가끔 폐기되는 혈액 등등 변수가 많은 분야가 혈액 시장입니다. 과연 1990년대 말과 2000년대를 보낸 우리 아이들이 내 나이가 되었을 무렵 어떤 심상으로 이 시절을 기억할까요? 바라는 것은 부디 따스함으로 점철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래도 그 아이들에게 힘든 기억이 분명히 있을 테지만 마음만은 따스하게 지금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의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중한 병을 앓았던 환자이고 지금도 고혈압, 당뇨, 모야모야병을 지니고 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헌혈도 자주 하고 도움을 주면 좋겠는데 형편이 그다지 좋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제게는 신앙이 있기에 내 신앙도 그러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광야 같은 시간을 지나왔다 하더라도 주님 때문에 따스하게 지냈습니다.라고 고백하면 좋겠습니다.


신이 계신다면 이 세상은 늘 평화로워야 맞을 텐데 현실은 늘 고달픔의 연속이지요. 개인도 그렇고 내 주위의 사회가 그렇고 국가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신앙이 있고 의식이 깨어 있으며 변화에 대한 열망을 가진 이들의 기도로 늘 빛을 내며 살아갑니다. 우리 몸의 피가 온몸을 살아가게 하듯 우리의 기도와 사랑이 피가 되어 온 세상을 돌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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