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여행, 행선지는?
육아휴직 1년간의 여행 계획을 3년 동안 고민하게 됐으니 시간적 여유는 많아졌지만, 성격 급한 나는 하루빨리 큰 틀을 잡아놓고 디테일한 계획들을 채워 넣고 싶었다. 하지만 나와 정 반대 성향의 와이프는 뭘 벌써부터 고민하냐며 핀잔만 하니 성격 급한 나는 괜히 마음만 조급해진다.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빠른 의사결정이 이뤄질 텐데, 괜히 재촉하다가 일을 그르치기 싫어 나 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기 시작했다. 그래, 한 손바닥이라도 이라도 계속 흔들다 보면 언젠간 와서 부딪혀주겠지.
Q. 어디로 여행 갈 것인가? 국내? 해외?
2024년쯤 되면 코로나도 잠잠해질 테니 캠핑카를 빌려 국내 일주도 해보고, 방학기간에 맞춰 제주도에서도 한두 달 살아볼까? 아니면 교과과정은 홈스쿨링으로 커버하고 제주도에서 반년정도 살아볼까? 여름엔 더울 테니 태백 쪽으로 옮겨볼까? 생각만 해도 벌써 육아휴직 한 번 하고 온 것처럼 얼굴에 생기가 도는 기분이다.
P 성격의 아내는 절대 이해 못 하지만, J 인 나는 어디로 여행 가던지 관광지와 이동시간은 물론, 배차시간까지 확인해 가며 일정을 짜고, 일정이 완성되면 마지막으로 이동경로를 로드뷰로 확인하며 리뷰함으로 이미 여행을 다녀온 기분을 느끼고, 정작 여행 가선 빼곡하게 계획해 놓은 일정이 착오 없이 진행되는 걸 보며 희열을 느끼는 성격이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위에 계획한 캠핑카 국내일주, 제주도와 태백 쪽 장기간 거주를 위한 대략적인 비용을 계산해 보니, ’아, 생각보다 비싸다.‘
Q. 국내도 비싸다. 차라리 동남아로 가자?
여행지를 국내로 제한했던 건 언어의 문제도 있지만 사실 비용문제가 가장 컸는데, 이 정도 비용이면 차라리 물가 저렴한 필리핀이나 베트남에서 푹 쉬다와도 될 비용이었다. 시선을 해외로 돌리니 선택의 폭이 많아졌고, 이 나라 저 나라 기웃대며 알아보다 보니 긴 시간 동안 해외에 나가서 살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무작정 쉬기보단 비용이 추가되더라도 아이들에게 외국어, 특히 영어를 노출시켜주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를 집중적으로 알아보게 됐다. 그런데, ‘가능하면’ 현지 영어캠프나 튜터 등을 통해 아이들을 영어에 노출시켜 보자는 생각까지 하고 나니 일상 환경까지 오롯이 영어에 노출될 수 있도록 영어권 국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Q. 영어권 국가라면 어디로?
어느새 주객이 전도돼 육아휴직 기간 동안의 여행이 아닌 아이들 단기유학을 알아보는데, 결국 영어권 국가인 캐나다, 미국, 호주, 영국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영국과 미국은 비용이 상당한 데다 특히 미국은 총기사고가(지나고 보니 요새는 마약까지 난리) 걱정돼 일단 패스하게 됐다. 그렇다고 캐나다, 호주가 저렴하단 건 아니지만 말이다.
호주는 캐나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종차별이 좀 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보였지만, 사촌동생이 살고 있어 크고 작은 도움을 기대할 수 있기에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못하고 캐나다와 저울질했는데, 캐나다에선 부모가 스터디퍼밋, 혹은 워크퍼밋만 받아도 자녀의 학비가 무상으로 지원된다는 상당한 메리트가 있는 데다, 여차하면 차량으로 미국까지 여행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크게 와닿았다.
동남아 국가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와 비용차이가 크지 않고 여러 단점도 있었지만, 일상생활에서도 영어에 노출될 수 있는 환경에 끌려 캐나다로 점찍고 나니 와이프를 어떻게 설득할지가 가장 걱정이었다.
이렇게 몇 주간 찾아보고 정리한 생각을 갑자기 와이프한테 얘기하자니, 소소하게 국내로 여행 다니자며 나눴던 계획이 하루아침에 아이들의 캐나다 유학으로 바뀌었을 때 얼마나 황당하고 어이없을지 알기에 긴 시간 공을 들여 매일 조금씩 풀어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가끔은 내 의견을 얘기하기도 하고, 가끔은 답이 정해진 질문을 던져 와이프 스스로 고민해 보도록 말이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부부의 의견이 캐나다행으로 정리됐는데, 매사에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와이프도 동의한 걸 보면 최선의 결정이었을까?
나중에 내 의견에 동의해 준 결정적 이유를 물어봤을 때 와이프의 대답은,
‘이민병은 직접 가서 살아보기 전 까진 못 고친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