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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욱이 Feb 05. 2024

좌충우돌 캐나다 코인빨래방 사용기

feat. 세탁기 고장

 갑자기 웬 코인빨래방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필자도 딱히 궁금하진 않았고 알고 싶지도 않았던 곳이었다.

 한국에서도 이사할 때 단 한번 가본 것 외엔 가본 적 없는 낯선 곳인데, 갑자기 세탁기가 고장 나 어쩔 수 없이 방문해 본 경험을 적어보고자 한다.



 필자가 거주하는 캐나다 동부 온타리오주에선 가족단위로 거주할 크기의 집을 렌트할 경우 냉장고, 식기세척기, 세탁기, 건조기가 기본으로 포함돼 있다.


 제품의 컨디션이 어떻든 참고 써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필자처럼 단기로 거주할 계획인 데다 최대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경우엔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등의 굵직한 지출을 절감할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어 위에 단점은 애교로 받아들이게 된다.



 필자가 집을 구한 작년 5월경, 렌트매물의 실종으로 겨우 구한 집은 10년 가까이 된 구축 콘도라 가전들의 연식도 상당했는데,


 다른 제품들은 그냥저냥 쓰더라도, 이불 하나도 꽉꽉 눌러야 겨우 들어가는 작은 용량에 날이 지날수록 아이들의 흰 양말 바닥이 점점 회색이 돼가는, 세척력이 의심되는 세탁기는 정말 맘에 들지 않았었다.

용량도 작고 세탁력도 의심되는 월풀 세탁기


 그래도 명색이 세탁기에 돌렸으니 깨끗해진 거라고 자기 최면을 걸며 플라시보효과로 사용해 온지 반년이 지난 1월 중순 경, 갑자기 세탁기가 작동을 멈추더니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지난 크리스마스 직전엔 식기세척기가 고장 났었고, 집주인이 바로 새 걸 사줘서 우리 부부에게 가장 큰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고맙다고 감사인사를 했었는데,

캐나다에서 느끼는 한국의 향기, 집주인이 직접 들고와 설치까지 해준 삼성 식기세척기


 1달도 채 지나지 않아 세탁기마저 고장 났다고 말하기가 민망해서 작동여부를 하루정도 지켜보고 난 뒤에야 겨우 연락할 수 있었고, 우려와는 달리 집주인은 바로 쿨내 나는 답장을 보내줬다.



 집주인이 새 제품을 구입해 준다니 남은 건 새 제품이 배송될 1주일 동안 빨래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할 차례였다.


 건조기라도 잘 작동하니 앞으로 1주일간 손빨래를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이 나라도 코인빨래방이 있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다운타운에 있는 코인빨래방(Coin Laundry)을 구글맵에서 찾을 수 있었고,


 한국에서 방문했던 코인빨래방은 카드결제가 가능했었고, 캐나다에서도 지난 반년동안 카드 결제가 안 되는 곳이 없었기에 빨래가 가득 담긴 카트와 카드 한 장을 들고 코인빨래방으로 달려갔다.

카트에 가득 담은 빨래들


  골목 안에 있는 코인빨래방에 도착해 보니 외관의 포스가 상당해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차에서 내리는데 마저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는데,

범죄영화의 클리셰가 잘 어울릴법한 코인빨래방 외관


 막상 카트를 끌고 들어가 보니, 다행히 내부는 깔끔한 편이라 안심할 수 있었다.

코인빨래방 내부 모습


 내부를 둘러보며 가격과 이용방법을 찾아보는데 벽엔 동전교환기가, 세탁기엔 카드로 결제할 수 있는 단말기 대신 동전 투입구만 있었는데,

동전교환기와 세탁기의 동전투입구


 혹시나 해서 물어본 직원에게, 카드 사용은 안되고 무조건 현금(코인)만 이용가능하다는 안내를 듣고 나서야 코인빨래방(Coin Laundry)이란 직관적인 네이밍에서 왜 진작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자책하며 주변의 은행을 찾아 수 km를 달려갔다 온 뒤에서야 빨래를 시작할 수 있었다.


 40리터는 돼 보이는 중간크기 세탁기의 이용요금이 9불이었는데,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니 비싼 건지 따질 필요는 없었다.

탈수까지 포함한 전체 세탁시간은 38분


 세탁 후 건조기를 돌리려는데 요금이 25? 건조기 요금이 설마 25센트(250원)는 아닐 테고 25불이라면 2만 5천 원이라는 건데,

건조기 요금이 25


 세탁하고 난 젖은 빨래를 볼모 삼아 건조기 이용료를 엄청 비싸게 받는다는 생각을 하던 중, 세탁기는 고장 났어도 그 위에 건조기는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게 생각났다.


 25불을 아껴야겠다는 판단에 빨래를 카트에 담아와서 집에 있는 건조기로 말렸는데, 며칠 뒤, 다른 곳도 가보자며 방문한 다른 코인빨래방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또 다른 코인빨래방 방문. 빨래 접어주는 서비스까지 있다


 이 코인빨래방엔 요금에 단위까지 적혀있었는데, 건조기 요금이 25불이 아닌 단돈 25센트였던 것이었다.

건조기를 이용하는데 단돈 25센트


 이날도 역시 건조는 집에서 할 요량으로 1시간 정도 짬이 났을 때 방문한 거라 25센트인걸 알고 나서도 건조기를 이용해 볼 수 없었지만, 지난번에 25불을 아꼈다는 뿌듯함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배송된 새 세탁기는 와이프와 적잖게 기대했었는데, 당연히 새 제품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보통 사용하는 월풀(기존 세탁기도 월풀 제품) 제품보다 2배가량 비싼 LG워시타워였기 때문이다.

흔히 쓰는 월풀 제품의 두배 가격인 LG워시타워


 주요 가전제품까지 임대하는 임대차조건 덕분에 고장 시 사용자 과실이 아닌 이상 임대인이 책임지는 게 맞지만, 악덕 집주인인 경우 임차인에게 책임을 미뤄 수리해 주는 걸 미루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들었는데,


 고장 나자마자 선뜻 새 제품으로 바꿔준 것도 모자라 기꺼이 두 배 가까이 비싼 제품으로 바꿔준 이 집주인을 만날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던 1주였다.

세탁기 설치 시 함께 지켜봐주는 집주인과 아이들 양말을 다시 하얗게 세탁해준 세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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