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이 되고 나니 도서관이나 마트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Lunar New Year를 축하하기 위한 붉은 장식 등으로 한껏 꾸며진다.
하지만, 현지 캐내디언들에겐 ‘너희 동양인은 Lunar New Year를 기념하지? 한번 더 새해 복 많이 받어’ 정도의 느낌이고, 실제로는 발렌타인데이를 신경쓰는 분위기다.
그런데, 달콤한 초콜릿을 선물하는 이 발렌타인데이의 개념이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데,
우리나라에선 보통 발렌타인데이엔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고, 화이트데이엔 남자가 여자에게 사탕을 주는 걸로 인식돼 있는 반면,
캐나다엔 화이트데이가 없이 발렌타인데이에 남녀가 서로 초콜릿(+선물)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남녀가 함께 주고받는 날엔 남자가 좀 더 많이 신경 써야 하는 건 만국 공통인 듯 하지만 말이다.)
이 사실을 전혀 몰랐던 필자는 ESL수업에서 발렌타인데이 준비를 많이 했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초콜릿 받을 마음의 준비가 됐냐는 건가?’ 하는 생각에 ‘와이프한테 초콜릿 받을 준비는 이미 돼있다.’고 대답했더니,
‘OMG!!’를 외치며 놀란 선생님은 클래스의 청일점인 필자를 위해 긴급히 미니게임까지 만들어 여러 나라의 학생들에게 발렌타인데이에 대해 조언받는 시간까지 마련해 주셨다.
이런 발렌타인데이는 어른들 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손꼽아 기다리는 날인데, 평소엔 식품 알레르기 때문에 조그마한 간식 하나라도 나눠먹는 게 절대 금지된 학교에서 반 친구들에게 간식을 선물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너무 짜거나 너무 달거나 둘 중 하나인 이 나라 간식만 맛봤을 반 친구들에게 한국 과자의 맛을 드디어 알려줄 수 있게 됐다며 신난 두 아이들을 데리고 발렌타인데이 전날 한인마트로 달려가 간식을 잔뜩 사 왔다.
G3와 SK 두 아이의 반 친구들과 선생님들 몫까지 총 44개를 포장했는데, 모자라보이면 어쩔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나름 풍성한 모양새다.
아이들에겐 친구들에게 나눠줄 발렌타인 카드를 쓰라고 한 뒤, 혹시나 낯선 외국을 꺼려할 부모님들을 위해 마이쮸, 말랑카우, 찹쌀선과의 원재료 목록을 출력해서 동봉하려고 찾아보는데,
날벼락같은 “PEANUT!!!”
청천벽력 같은 저 한 단어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는데, ‘마이쮸에 땅콩이 들어있”을수도” 있다고? 그냥 경고로 적어놓은 거 아닌가?’, ‘들어있는 것도 아니고 취급하는 제품과 같은 생산시설에서 생산된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닌가?’ 라며 자기 합리화를 해보다가
식품 관련 알레르기 중 땅콩 알레르기는 특히 치명적이라 냄새만 맡아도 위험할 수 있다고 한 얘기가 떠올랐고, 책임질 수 없는 일말의 여지도 남기고 싶지 않아서 결국 한국 간식을 모두 다 꺼냈더니 선물포장이 영 볼품없는 모양새다.
그러던 중, 언젠가 친구들에게 나눠줄 용도로 챙겨뒀던 독도지우개가 생각나 아쉬운 대로 지우개라도 하나씩 넣고 포장을 완료해서 학교로 보냈다.
하루 더 시간이 있었다면 다른 간식을 좀 더 사서 넣었겠지만 말이다.
정성이 중요하지 내용물이 중요한가,
결론적으로 두 딸아이에겐 친구들에게 나눠줄 정성 어린 간식 한 보따리와 편지, 추가로 본인들이 먹을 간식거리까지 잔뜩 생긴 해피엔딩이 된 하루였다.